brunch

뜬금 '감자'다.

초록+오후의 햇살+청년=아름다움

by 하루사리

10월의 어느 날, 하지는 지났지만 어떤가!




my아티의 리허설이 끝나고 본공연까지 2시간 남짓 남았다. 강한 햇살을 받으며 축구장에 깔아 둔 돗자리에서 버티려니 옷을 뚫고 뾰족하게 꽂히는 가을 햇살이 무 아프다.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혹시나 이동하는 my아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괜한 기대도 품으며 공연장으로 향하는 관람객의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길가 울타리 너머 저 멀리서 원바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 눈에 들어온다. 딱 봐도 my아티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실루엣만 봐도 어둠 속 스치는 골격만 봐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면봉처럼 보이는 먼 거리지만 환하게 웃으며 원바를 하는 그 모습에 마음이 환해진다. 주변에 몇 명의 팬들은 휴대폰을 급하게 꺼내 줌으로 그 모습을 담느라 미동도 없는 와중에 혼자 유유히 햇살을 가릴 양우산에 얼굴을 묻고 한 없이 넋을 놓고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한다. 바라만 봐도 풍요롭다.


간혹 멀리서 들리는 웃음소리와 감탄사가 메아리처럼 스쳐간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초록의 잔디밭에서 4~5명의 청년들이 원으로 서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선명하지 않아도 보이는 밝은 표정이 투명한 햇살 아래서 눈부시다. 조금 전 옷을 뚫고 뾰족하게 내리 꽂히던 그 햇살이 아니다. 청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아름다움이다.


25분을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서 청춘을 눈과 가슴에 담고 돌아서는데, 또 다른 가슴 한켠이 일렁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햇살 래에 서 있는 나의 순간을 붙잡아본다. 아름다운 청춘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 속의 그 깊은 곳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공연이 끝나고 차 시동을 켜는데 꽉 막힌 주차장에서 눈치 보며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아예 마지막에 나갈 결심을 한다.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어떤 빛깔의 어떤 감성이 담길까!


소화가 잘 되는 자연식 밥상을 맛있게 먹은 후 양지바른 언덕 어디쯤에 앉아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노곤노곤 적당히 기분 좋은 식곤증을 즐기는,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근육의 긴장도 없는 표정의 갓 찐 포슬포슬 '감자'다.




상당히 뜬금없는 '감자'가 된 하루사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B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