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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BGM

결국,

by 하루사리

칠흑 같은 어둠이란 이런 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의식적으로 백미러를 보는데 까맣다. 흠칫하며 사이드미러로 눈길을 돌리니 마찬가지로 까맣다. 이렇게 까맣기만 하다면 뒤도, 옆도 보면서 안전하게 주행하기 위해 장착되었을 백미러와 사이드미러의 필요는 무엇일까?


언제부터였을까? 이 고속도로 위에 나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순간 심장이 쿵하며 덜컥 겁이 난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앞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가 주는 공포감에 정신이 번쩍. 잘 보이던 앞쪽 시야도 뭔가 선명하지 않는 것 같고 차선도 너무 가까이만 보인다. 급하게 안개등을 켜본다. 확실히 넓어진 앞쪽 시야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만 역시 옆도, 뒤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섬뜩하다.


자세를 좀 더 고쳐 앉고 두 손에 핸들을 꽉 쥐고 앞만 본다. 급커브 구간이 나오면 보이지 않는 앞쪽에 나보다 속도가 느린 차가 갑자기 나타날까 봐 속도를 낮춰 안전에 더 신경을 쓰고, 앞이 뻥 뚫린 직선 구간에서는 내 속도를 느끼지 못해 과속을 하다 휴대폰 네비의 빨간 불빛과 경고음에 놀라서 속도를 조절한다. 그렇게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가고 있는지 초 단위로 계기판과 휴대폰을 번갈아가며 확인하며 운전을 한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과 뒤에 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면식도 없는 각자 자기 갈 길 가고 있는 차들 이건만 반갑다. 앞 차의 속도에 맞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니 초단위로 바쁘던 눈도 한시름 여유가 생긴다. 뒤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백미러도 사이드미러도 제 역할을 한다. 내가 가는 길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제 갈 길 가는 아무 상관없는 차들이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 멀면 불안해지고, 너무 가까우면 무서워지기도 하면서 내 속도를 조절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간다. 딱 적당하고 안전하게.


어느 구간부터 다시 덩그러니 나만 있다. 갑자기 인식된 어둠이 아니라서 그런지 어깨에 힘을 빼고 조금은 편하게 달려본다.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밝은 가로등을 만나면 대낯처럼 환해지면서 한낮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기분을 잠시 느꼈다가 반사표시등만 있는 구간을 지날 때면 앞, 뒤, 옆 착시처럼 차인지 안내표지판인지 정신을 곧추세우고, 유난히 은은한 조명의 가로등이 켜진 구간에서는 아늑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나아간다.


보조석에 누군가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엄청 피곤하고 빨리 목적지에 가고 싶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며 혼자라는 공포보다 불편함의 공포가 더 크지 않을까 한다. 본심이다. 누군가는 혼자 가는 길에 말벗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반문할 수 있겠으나, 나조차 나에게 그렇게 반문할 수 있겠으나 아무리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면 숨이 막히겠구나 싶다. 이래서 내가 혼자인 건가.


오직 나만의 공간에서 달린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 마음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나와 하등 상관없는 스쳐가는 차들에 위안도 얻으면서 나의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면 다시 온 신경과 눈이 바빠지고 또다시 등장하는 새로운 낯선 차들을 의식해 가면서 혼자 달린다.


음악이 다시 들린다. 왕복 7시간의 운전을 하며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평소에는 페벌셋리 중심으로 들었는데 오늘은 플리에 담긴 모든 음악이 재생되고 있다. 가사에 집중하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BGM이다. 이 적막한 도로 위 혼자인 차 안에서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 이런저런 잡념도 사색도 쉼 없이 계속하면 온전치 않을 것 같다. 산소 같이 온전히 감싸는 음악이 있기에 달려지는 거구나 싶다.


그럼,

내 삶의 BGM은 뭘까? 매 순간 내 곁을 감싸면서 산소가 되어 주는 건 뭘까?


자정이다. 20분 뒤면 집에 도착이다. 마지막 터널을 들어서며 저 멀리 터널 끝을 보는데 처음으로 '이 터널 끝에는 뭐가 있을까? 내 삶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신기한 장면이 펼쳐진다. 정말 큰 하현달이 까만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달이 이렇게 컸던가? 이렇게 큰 하현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차를 마시고 싶다. 한 여름을 닮은 뜨거운 차를 마시며 글이 쓰고 싶다. 그리고 그가 보고 싶다. 또.




결국, 스스로가 설정한 목적지에 처음부터 끝까지 핸들을 잡고 완주한 건 기특한 하루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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