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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

귀여움은 함정이다.

by 하루사리

2개월을 남기고 8개월간 공들였던 프로젝트를 엎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가장 공들여서 준비를 했고 시작과 동시에 방향을 잡느라 애를 먹었으나 애쓴 만큼 만족스러웠기에 예상했던 잡음도 이전의 경험처럼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라 자부한다.


오랜만에 적용한 프로젝트지만 기존의 성과에 힘입어 확신했기에 상황과 대상이 다름을 알면서도 의욕과 욕심이 앞섰다. 그래서 예견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여기며 간과한다. 프로젝트가 성공할수록 잡음도 점점 커졌고 어느 순간 잡음이 성과를 덮어버린다.


10월 초, 이 이상의 성과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이상 잡음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놓지를 못하겠다. 내가 설정한 목표와 대상들이 느끼는 만족감과의 괴리가 점점 커진다. 의도한 방향과 다르게 커지는 잡음이지만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은 점점 만족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지켜보며 설계자인 나만 감정적 매몰비용이 급속도로 늘어난다.


물끄러미 하루하루 상황을 지켜보며 그냥 울컥한다. 누구도 나에게 이견을 제시하거나 부정적 피드백이 오는 것도 없는데 스스로 새장 안에 들어가서 열린 문을 보며 바깥세상을 갈망하는 새 같다. 스스로 만든 세계에 갇혀있는 기분에 누가 한 마디만 건네도 왈칵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그만두면 세계가 무너질 것 같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딱 10월 말까지만 지켜보고 애써보자 다짐한다.


11월이 되어도 나의 미련은 상황을 지켜만 보며 뜬금없는 기대로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이어간다. 결국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포기 선언을 한다. 처음 내 입에서 나온 공식적인 '포기'라는 단어에 전달하는 나도 지켜보는 이들도 분위기가 무겁다. 떨리는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며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도 놀라며 한 없이 눈빛들이 흔들림을 느끼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7주가 걸렸다는 나의 고백은 그들의 '왜?'라는 질문을 막았고 아무도 말이 없다. 프로젝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 나만 빼고 만족스러웠고 끝내게 되어 아쉽단다. 아이러니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라며 꿈틀거릴 미련을 아예 밟아버린다.

다음 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선회하여 계획을 수정하고 안내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1단계 성과 후 2단계 성과까지 기대를 했으나 1단계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2단계는 기준 이하였다. 하지만, 1단계의 성과는 차선의 프로젝트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진행해 오던 프로젝트와는 결은 다르지만 기존의 잡음은 순식간에 반이 된다. 나의 차선이 획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한 나에 대한 그들의 암묵적 배려의 성과다.


미련은 7주라는 시간의 매몰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떠났다. 기나긴 미련은 순식간에 마음을 싹둑 끊어내게 했고, 기존의 프로젝트의 단점을 바로 잡는 차선의 프로젝트로 선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포기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던가! 이렇게 질척거리며 미련을 떨 만큼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인가!


천직이라 자만했으나 처음부터 '하얀 꽃가루가 흩날리던 유리색 바다'가 아니었을까?

'날 이곳에 가둔 세계'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찌릿했던 이유가.

'아~아~아~아~'라는 절규를 들을 때마다 가슴에 꽂혔던 이유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붙잡는 이도 없는데 거 참.




스스로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인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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