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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e무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단,

by 하루사리

잔잔한 일상의 무료함에 무뎌져 가벼운 Yes의 잔요동이 해일이 되어 있는 것도 몰랐다.




현생도 덕생도 분주했던 주중과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뜬다. 그 어떤 청각적 자극도 정신적 흐림도 없는 맑음에 가볍게 이불 밖으로 나간다. 최근 날씨보다 포근한 기온에 기분까지 몽글몽글 거린다.


환기를 위해 모두 열어둔 창문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공기가 찹찹하니 딱이라서 모닝티는 보이차로 정한다. 지난주 퇴근 하면서 들른 아지트(티룸)에서 소포장이지만 후덜덜한 가격에 놀라며 구입했던 '1993송빙호 보이생차'를 꺼내 계량을 하고 다하에 담는다. 어울리는 다구를 한참 동안 고민하며 챙겨서 좌식찻상에 앉는다. 다시 훅 와닿는 찬 기운에 소파에서 담요도 챙겨 와서 두르니 완벽하다. 포트에 물을 올린다.


온전함이다.


포근한 담요에 쌓여 찹찹한 공기의 상쾌함을 느껴본다. 모락모락 감싸는 뜨거운 김이 흐르는 다구들을 보며 차를 한 모금 넘긴다. 뜨거운 안락함이 식도를 타고 흘러 온몸으로 전달되는 평온함에 뭉클한다. 최근 들어 대문자 T는 어디 가고 대문자 F 가 튀어나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eMUtion(emotion) 찻자리가 너무 좋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재즈를 브금으로 하고 차를 마시며 크리스마스트리를 본다. 정신 없던 주중 저녁에 뜬금없이 트리를 꾸미고 싶어서 순식간에 창고에서 꺼내서 창가에 설치를 해뒀던 상태다. 아직 한달이 넘게 남은 크리스마스이건만 몇 년동안 귀찮아서 꺼내지도 않았던 트리이건만 하려는 의지가 생기니 눈깜짝할 사이에 떡하니 창가에 자리를 잡게 된다. 마음이 벌써 아티의 단콘이 있는 크리스마스다.

중심과 중도를 잃은 것 같은 요즘,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미 담궈버린 영역에 명분 없이 단순변심으로 상황을 물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도 아닌데, yes라는 말의 무게에 책임을 지는 것은 명확한 도리다. 그러니 어쩌다 와닿은 발길에는 이 또한 '아모르파티'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니 가봐야지 싶다. 선택도 운명이고 그 운명의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삶으로 나를 이끌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삶은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가 아니겠는가 하면서.


11월에 12월의 감성을 가불해서 즐기는 찻자리가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정리해야겠다.




해일을 마주한 우두커니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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