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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Nov 13. 2022

7할의 적당함

8할도 어려운데 7할의 비움이라

'딱 8할만큼만 잔에 따러야지.'




정성으로 내린 차를 빈 찻잔에 따를 때 가끔 고민의 순간이 온다.  맑은 소리로 찻잔에 담기는 차의 온기를 느끼며 8할쯤 채웠을 때, 왠지 조금만 더 따르면 티팟이 비워질 것 같은 느낌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결국 잔을 들기 아슬아슬할 때까지 차를 따르고 나서야 티팟을 내려놓는다. 가득 담긴 차를 조심조심 들어 올리며  또 '아차!' 그냥 8할까지만 채우고 남겨진 홍차는 밀크티로 마실걸 하는 아쉬움을 번번이 한다.


나에게 적당해 보이는 8할이 아닌 조상들의 적당함이 담긴 7할은 어떤 마음일까? 부족함이 느껴질 것 같은 적당함일 것 같은데 말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이쁜 혜수 언니의 한복 자태를 보며 이야기 전개 상황도 모른 채 <슈룹> 9화를 뜬금없이 본다. 심소군의 자존감을 찾아주기 위해 중전은 계영배에 술을 따르며 술잔에 빗대어 따뜻한 위로를 심소군에게 전한다. 끄덕끄덕하며 드라마를 보다 나의 초점이 고귀인과 아들 심소군의 관계에 꽂힌다.


모진 말로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어미

자신의 무능함에 죄책감을 느끼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상처가 되는 사이


서로 아는척하지 않고 아들은 어미 옆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 뒤를 말없이 어미가 따른다. 뒤 따르는 어미의 발자취를 느끼며 미소 짓는 아들과 자신이 뒤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걷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띠며 걷는 어미, 서로의 표정을 알지 못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중전이 하는 말,


"부모 자식 간에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는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기도 하다."


그래도 훗날 언젠가는 서로 마주 보며 소중한 마음을 말로 설명해 주길 바라는 생각이 든다. 짐작 뒤에는 미련이 뒤따르기도 하니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정도가 필요하다. 꽉 채워 여유 없이 줘버린 마음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음의 여유도 틈도 없기에 힘줘 버티다 순간 왈칵 쏟아져 버린다. 주는 이의 그 마음을 알 때는 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흔적을 남긴 채 비워진다. 서로가 가여워 더 저릴 수 있다.


적당함은 서로에게 무겁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줌이 무거워  너의 두 발과 두 손을 묶어버리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너의 줌이 무거워 나의 두 발과 두 손을 묶어놓아 상처로 남지 않기를 하는 마음으로 적당한 부족함이 느껴질 때가 가장 적당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도 말이다.




이 타이밍에 계영배 주문을 끝낸 하루사리의 흡족함은 7할이 부족함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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