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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Aug 22. 2023

더죽뜨

더워 죽어도 뜨거운 차를 마시는 대책없는 그런 날

폭염주의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차 한 잔을 비운다.




땀 흘리며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내고 개운하게 씻고 나오니 온 집안에 바람이 가득하다. 평소 같으면 바로 에어컨을 켜고 완전한 쾌적함으로 오후의 게으름모드에 들어갈 타이밍이지만 이 바람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일단 에어컨 리모컨을 내려둔다. 거실에 큰 타월을 깔고 대자로 눕는다.


창가에 매달아 둔 풍경이 간만에 마음껏 아름다운 음색을 울리고, 초록이들이 햇살과 바람에 더없이 행복한 몸짓이다. 매미 소리와 함께 나른한 더위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있으니 '이 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싶다.


최근 들어 더 세상소식을 듣고 싶지 않은 상황들에 마음이 아프고 어수선해서였을까? 아무런 자극 없이 그냥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는 이기적인 본능에서 다시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있어본다.


점점 더워진다. 약간 숨이 차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는 에어컨을 켜야 할 타이밍이다 싶어 앉아서 주변을 살피는데, 끊임없이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에도 너무 행복하게 반짝이는 초록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 한 명 시원하자고 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켤 수가 없다.


샤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우나 더 더우나 뭔 차이가 있겠나 싶어 느릿느릿 일어나 포트에 물을 올린다. 홍차가 딱인 시각이지만 어제 선물 받은 녹차맛이 궁금하다. 고민도 아닌 고민을 하며 처음부터 정해진 답으로 결론을 내리고 찻자리를 준비한다. 포트의 뜨거운 김조차 두렵지 않다. 어차피 더운 거다.


초록이들이 잘 보이는 식탁에 찻자리를 옮기고 더위에 식을 기미가 없는 찻잔을 들어 조심스레 마셔본다. 그냥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무난한 녹차맛이다. 지금의 내 기분과 딱 어울린다. 힘듦을 참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고 상대의 행복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사랑인가 한다.




그냥 그럴 때가 있는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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