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한 이도 질문을 받은 나도 서로에게 어리둥절했던 순간이다. 20살이 넘어 인생의 쓴 맛으로 울어본 적이 없다. 울어본 기억이 없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장 많이'라는 표현에 어리둥절하고 상대는 '없는 것 같다.'는 내 대답에 어리둥절하다.
그 일이 있은지 몇 개월 후, 나에게 눈물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이 울 일이 뭐가 있냐던 공감력 제로였던 나는 몇 개월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울고 울었다. 울다 울다 바라본 거울 속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 먹는다고 어른 되는 거 아니라는 말을 내 눈동자를 보는 순간 알게 되었다. 10살 어른도 20살 어른도 있다. 나처럼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어른의 초입에 들어서는 어른도 있다.
그늘 없이 맑고 밝은 사람들이 좋았다. 그냥 웃으면 될 걸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사연 많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생각이 많은 건지 이해하지 못한 체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거리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 사연은 드라마나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라 여겼던 나잇값 못했던 나는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그렇게 그늘진 깊은 눈동자를 싫어했던 나는 우울감 깊은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다.
예전의 나를 닮은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이들을 보면 부러움 가득 예뻐 보이고, 지금의 내 눈동자를 닮은 이들은 아름다워 보인다. 나의 눈동자도 나를 닮은 그들의 눈동자도 가여워 아름다워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 시간을 그냥 흘러버리지 않고 꾹꾹 잘 밟아오며 스며들었기에.
풋내 가득한 갓 어른이 된 나는 점점 더 깊은 어른이 되어진 앞선 어른들의 눈동자를 좋아한다. 지금의 나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깊이가 담겨 있는 그들의 눈동자는 믿어 의심치 않기에 라떼에 눈치 보는 세상 꼰대들의 눈동자를 존경한다. 여전히서론이 긴 라떼에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적응이 되지 않아 싫을 때도 있지만 라떼에 진심인 그들의 세월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존경스럽기에 싫지만은 않다.
그 일이 있은지 6년, 아픔의 마침표를 찍은 지인을 만났다. 그늘 짙었던 그녀의 눈동자는 그늘이 지나간 깊고 여유로운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다. 여전히 감사한 아픔에 우울감 깃든 눈동자를 가진 나도 세월을 꾹꾹 밟으며 잘 견뎌왔는지 순간순간 그늘이 지나간 눈동자와 마주할 때가 있다. 오래오래 감사한 아픔과 함께 할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