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회귀 Aug 10. 2021

합리화

노랑: 마음도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노랑이 싫었다.




노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궁금해서 왜?라고 묻고 싶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노랑이 싫으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화를 위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결론은 '그냥'이 가장 적합하다.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되었습니다. 인수자(위탁):문 앞"

 

채널을 돌리다가 사람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화면에서 잠시 멈췄다. 뜻하지 않게 발견한 유익함이다. 끄덕끄덕 거리며 강의를 듣다 잠시 소개된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주문하고 이틀 후 책이 배송된 것이다.


무언가가 내 시선과 마음을 붙들 땐 이유가 있다. 혼자만의 사색이 많아진 요즘 점점 각종 모임과 지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할지 잘라야 할지 고민하는 목마름이 잡아끈 책이다. 갈증을 해소할 시원한 물을 꺼내기 위해 급히 냉장고 문을 열듯 택배 상자를 분주하게 뜯는다.


이 쨍함은 무엇인가. 노란 표지가 보란 듯이 내 앞에 있다. 책을 주문할 때 분명히 봤을 책 표지의 색이건만 기억에 없고, 직접 대면한 책 표지의 노랑이 나를 멈칫하게 한다. 책 속지, 간지 곳곳에 쨍한 노랑이라니 예전 같으면 신중하지 못하게 구입한 책을 보며 후회했으련만, 바로 북커버를 씌워버리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책을 보는 내내 왜 노랑이야 왜 노랑이냐고 했으련만.


좋다. 책 표지를 한참 들여다본다. 앞표지 뒤표지 구석구석 작은 글까지 읽으며 설렌다. 책을 읽으며 노랑의 설렘으로 내용까지 심하게 와닿는다. 줄을 긋기 위해 선택된 노란색 색연필도 오늘따라 참 산뜻하다. 천천히 앞부분을 읽고 책을 덮으며 이런저런 여운의 생각에 잠긴다.


책이 놓여있는 테이블보가 눈에 들어온다. 노랑이다. 둘러본다. 벽에 걸린 액자 속 꽃도 노랑이다. 심지어 내가 만든 것이다. 노란 민들레를 찍은 사진도 서가에 세워져 있다. 내가 찍은 사진이다. 여기저기 노란빛의 색채들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공간이다. 내 삶의 곳곳에 노랑이 들어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노랑이 이렇게 자리 잡는 동안 늘 그렇듯 둔감하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의 결핍이 있는 사람 중에 노랑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왜 그렇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그 말이 지금 떠오르는 것은 마음의 결핍으로 채우고 싶은 따듯함이 고파서인 건 확실하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나면 세상살이가 좀 쉬워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한 탓이다.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점점 어렵고, 내 마음의 실타래도 풀리지 않는데 네 마음의 실타래까지 풀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니 답이 점점 더 미궁 속이다.


관계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짧은 강의 속 간결하게 정리된 이야기는 끄덕여지지만 두고두고 문득문득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기에 한 번의 마중물은 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계에 대한 심리책을 읽는다. 끄덕끄덕거리며 줄을 긋고 생각을 적고 책을 덮고 생각하고 여운을 들여다본다.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에 도돌이표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내지 않았겠지 싶다.


마중물을 자꾸자꾸 퍼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콸콸콸 시원하게 생각이 쏟아지면서 선명해지겠지.




노란 하루살이의 결핍은 '여백의 미'라며 일단 합리화해 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