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31 저 사내 누구인들 내 보기에 신과 같은 장부로다, 그대 곁에 마주 앉아 가까이서 듣는 저이, 그대의 달콤한 말소리와
매혹적인 웃음소리를. 내 그대를
잠시라도 흘깃 쳐다볼 때마다
내 가슴 속 심장이 퍼덕이네. 나는 말문이 막히누나, 나의 혀는 부러지고 가느다란 불꽃이 살갗 아래로 내달리네. 내 두 눈은 보지 못하고, 두 귀는 웅웅 거리며, 식은땀 이 몸 타고 흘러내리네. 전율에 사로잡혀 나는 풀잎보다 더 퍼렇게 되었다. 내 스스로 보아하니 나는 곧 죽을 지경이로구나. 그래도 모든 것 견딜 수 있으리니, 왜냐면 (…)
※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the Licensor through PLSclear. ※ Rayor, Diane J., trans. & ed. Sappho: A New Translation of the Complete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 2023. Introduction and notes by André Lardinois.
<note> 사포의 여러 노래 중 가히 백미라 할 만한 작품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인들에 의해 인용되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 리메이크되었는데 그중에는 로마의 대표 연애시인 카툴루스(BC 84-54)도 있었다.
고대 학자 롱기누스가 <숭고함에 대하여>(서기 1세기)라는 저서에서 이 시를 인용함으로써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전해 주었는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마지막 연의 첫 행까지만 쓰고 더 이상의 내용은 생략해버리는 바람에 아쉬움과 궁금증을 남겼다. 하나 이처럼 오래된 노래는 오히려 이렇게 빠져있는 부분이 또 그것대로 기나긴 세월의 더께를 느끼게 해주고 신비감을 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포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 시의 화자는, 어떤 근사한 남성과 함께 앉아있는 익명의 여인을 바라보며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격동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혀, 눈, 귀, 피부 등 신체 각 부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열거함으로써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느낌을 훨씬 더 생생히 공유하게 만들었다. 각 지체가 모두 따로 노는 듯하지만 종합하여 보면 결국 몸의 주인인 화자 한 사람의 감정을 읊고 있는 것이다. 롱기누스도 이 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바로 이 점을 극찬했다.
한편 이 시에서는 "식은 땀"이 주는 차가움과 "가느다란 불꽃"이 주는 뜨거움을 동시에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모순적인 부조화가 되려 열렬한 사랑에 빠져버린 이의 설명할 길 없는 복잡한 심정을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사실 사포는 서양문학사에서 "달콤쌉싸름(bittersweet)"하다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창시자이기도 하다(<단편 130>). 사랑이란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것, 이것이 사포가 하고 싶은 말이었나 보다.
전통적으로 이 노래에는 <질투>라는 부제가 으레 따라다녔다. 여성 화자(사포?)의 동성 연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상황에서, 남편과 함께 앉아 있는 옛 연인을 바라보며 느끼는 화자의 격렬한 질투심을 그린 내용으로 이해한 것이다. 여러가지 반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해석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시 속 여성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노래를 보다 일반적인 내용으로 이해한다. 즉, 이 시에서 노래하는 것은 특정 인물을 향한 질투라는 배타적 감정이 아니라,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정서를 일반적인 차원에서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첫 번째 연에 등장하는 남성을 연적(戀敵)으로 보기보다는 화자의 요란하고 격렬한 심리상태와 대비하기 위해 등장시킨 문학적 장치로 본다. 그러고 보면 남성의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남성은 화자와는 달리 훨씬 차분하고 냉정해 보이기도 하다.
한편, 이 노래는 결혼축가의 하나로서 신랑신부를 예찬하는 내용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진 못하는 것 같다.
일단 예술작품이 완성되어 창작자의 손을 떠나고 나면 그에 대한 해석은 창작자만의 독점적 권리가 아니며, 감상하는 이 누구나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 하물며 무려 2600년 전의 작품으로서 시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는커녕 그 삶이 어떠했는지조차 온통 안개 속에 싸여 있고, 게다가 작품 일부가 훼손된 이런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시라면, 산문을 읽을 때와는 달리 작품 속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거나 스토리를 이해하려 들기보단 그저 그 문장 자체가 주는 느낌을 즐기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사포의 작품은 동시대 다른 서정시인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리라 등 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부르기 위한 가사였고, 사포가 살던 아르카이크 시대(기원전 8~6세기) 희랍 음악을 복원하여 직접 연주한 영상도 있다. 아래 영상은 고대 희랍어로 <단편 31>을 복원한 것이다. 고대에 연주되었던 음악의 멜로디와 박자를 온전하게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까마득한 옛날 고대 희랍인들이 느꼈을 정서를 한번 상상해 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