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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현 Jul 16. 2023

사포 단편 1 (Sappho fr1)

부제 : 아프로디테 송가(Ode to Aphrodite)

단편 1

   


무지갯빛 옥좌에 앉으신 불멸의 아프로디테

계략을 꾸미는 제우스의 따님이여, 청하노니

고통이나 비탄으로 제 영혼을, 오, 여왕이시여,

짓부수지 마옵소서.  


다만 오시옵소서, 이전에도 먼 데로부터

제 목소리 들으시고 귀를 기울이사

당신 아버님의 황금빛 집을 나와

오신 적 있다면,  


사랑스런 참새들 끄는 당신의 수레

당신 싣고 검은 대지 위에서 재빨리

분주한 날갯짓 속에 창공 아래로

대기를 뚫고는  


불현듯 이리로 모셨더랬지요. 축복받은 이여

불멸의 얼굴 위 웃음지으며 당신 물으시나이다

제가 또 무슨 까닭으로 아파하는지, 어찌하여

또 당신을 부르는지  


제 거친 마음속에서 제가 무엇보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무엇인지. “내 이제 또 누구를 홀려

네 사랑 속으로 이끌어야 할꼬? 사포야, 네게

못되게 구는 이 누구냐?  


그녀가 달아난다면, 이제 곧 그녀가 쫓게 되리

선물을 받지 아니한다면, 되려 그녀가 주게 되리

사랑하지 아니한다면, 이제 곧 그녀가 사랑하게 되리

설령 그녀가 원치 않더라도.”  


이제 저에게로 오소서. 이 어려움에서 저를

풀어주시고, 제 마음이 채워지길 바라는 바

전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당신께서 저의

전우가 되어 주소서.        



※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the Licensor through PLSclear.

※ Rayor, Diane J., trans. & ed. Sappho: A New Translation of the Complete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 2023. Introduction and notes by André Lardinois.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하는 사포(Margaritis Georgio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note> 


일명 <아프로디테 송가(Ode to Aphrodite)>라고 불리는 단편이다. 사포의 시 중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단 한 편의 작품이 바로 이 노래다.  


"사포"라는 이름이 시 속 일인칭 화자의 이름으로 명시된 드문 경우다. 또 화자가 갈망하는 여성의 이름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아마 이 노래는 사적인 감정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포 자신, 혹은 사포 역할을 하는 다른 가수가 공공 장소에 모인 청중 앞에서 기도하며 불렀던 노래였으리라.


이 시에서 사포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여신 아프로디테와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대화를 나누는, 마치 호메로스의 서사시 속 영웅과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아프로디테가 하는 말(큰 따옴표 안)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쉽게 생각하면 사포가 어느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달라며 아프로디테에게 간청하고 있고, 사랑의 여신이 이를 들어주어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주겠노라 약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 여인이 쫓게 되는, 선물을 주게 되는, 사랑하게 되는 대상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그 대상은 사포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아프로디테는 "사포 네가 그 여인 때문에 마음 고생하듯 그 여인도 다른 여인 때문에 아파하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사포는 이 시를 통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여성을 향하여 일종의 저주를 하는 것인 셈이다.  


짝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바라봐주는 것이 일차적 바람이겠만, 도저히 가망이 없어 마음이 재처럼 타들어버렸을 땐 그 뜨겁던 사랑이 되려 그만큼의 증오로 변해 너 역시 나처럼 아프길 원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읽는 이 나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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