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현 Jul 17. 2023

사포 단편 2 (Sappho fr2)

단편 2



제게로 오소서, 크레테를 떠나와 신성한 사원으로

여기 당신의 달콤한 사과 동산,

향유 연기 그득한

제단들로.


시원한 샘물 사과나무 사이로 졸졸 흐르고,

온 사방이 장미꽃으로 그늘지며,

빛으로 떨리는 잎사귀에서

깊은 잠 뚝뚝 듣나이다.


말들이 풀 뜯는 곳, 목초지는

봄꽃들 만발하고 달콤한 바람

살랑대며 부나니 (…)

[                    ]


여기서 퀴프리스여, 가득 채우시어 (…)

희열을 잔뜩 섞은 신주(神酒)를

황금 술잔에 부어

주시옵소서.   



※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the Licensor through PLSclear.

※ Rayor, Diane J., trans. & ed. Sappho: A New Translation of the Complete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 2023. Introduction and notes by André Lardinois.


사포의 단편2가 새겨진 상태로 발견된 도기 파편

(PSI XIII 1300: 3rd–2nd century BC ostrakon from Egypt, preserving four stanzas of Sappho fr. 2 (Voigt). Now in the collection of the Laurentian Library, Florence, Sailko,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note>


단편 2는 위 사진의 도기 파편에서 거의 전문에 가까운 분량이 발견되었다. 신을 부르며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길 청하는 전형적 고대 희랍 찬신가다. 사포가 살던 곳에 실제로 있었던 아프로디테 사원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상상 속의 장소를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몽롱하고도 따스한 분위기의 낙원 같은 사원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빛으로 떨리는 잎사귀"라는 표현은 Anne Carson이 영어로 번역한 "radiant-shaking leaves"를 재번역해본 것이다. 원어로는 aithussomenon이란다. 어린 시절 볕이 뜨거운 여름 날, 어느 공원 나무 그늘 밑에서 머리 위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올려다 볼 때 짙은 나뭇잎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오던 햇살을 보며 느꼈던 그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하다.  



* 퀴프리스 : 아프로디테의 별칭 중 하나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태어난 후 둥둥 떠다니다 퀴테라섬(오늘날의 그리스 키타라)을 거쳐 퀴프로스(오늘날의 사이프러스)에 닿아 비로소 뭍에 올랐다고 한다. 이 신화 덕분에 퀴테라와 퀴프로스에서는 아프로디테 숭배가 널리 퍼졌으며, 아프로디테는 이 지역들의 이름을 따 퀴테레이아, 퀴프리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전 01화 사포 단편 1 (Sappho fr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