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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Sep 15. 2023

줌바와 나 사이

나를 찾아가는 시간

이십 대. 

한창 병원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날. 방송댄스를 배우며 그걸 풀어내던 적이 있다. 그때도 춤이 즐거웠는데 생각보다 오래 못했다. 내가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따라 하는 데는 버거움이 있단 걸 알았으니까. 막춤은 하도 내 멋대로 추길래 춤에 좀 소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잘한다는 그 한마디 말을 선생님께 듣지 못했다. 일도 못하는데 뭐라도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춤에 희망을 걸었는 데 따라 배울수록 외워지지도 잘 쳐내지도 못하는 방송댄스에 난 실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이 이십 년 넘게 흘러서 나는 다시 줌바라는 춤을 접하게 되었다. 과연 너에게도 나는 무너질 것인가. 

처음 몸풀기 동작은 내가 기대한 게 전혀 아니었다. 이상한 기계체조 같은 동작에 요란하고 소울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방 뛰기만 하는 음악소리에 내가 제대로 온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망하고 있던 찰나, 귓전을 때리는 비트에 과장을 더해 전율을 느꼈다. 허리를 요리조리 흔들며 선생님은 살사음악 같은 소리에 맞춰 리듬 타기 시작했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마스크 사이로 입꼬리가 쭉 올라가는 걸 막을 재간이 없었다. 마스크를 벗은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얼마나 춤에 환장했길래 저렇게 헤벌죽거릴까 싶을 정도로 웃음도 멈추지 않았다. 


한 곡이 끝나면 이내 어색한 멋쩍음에 순간 멈추게 됐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나도 리듬을 탔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조용할 것만 같은 내 또래의 여자들이 노래만 나왔다 하면 거울과 자신을 응시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함께이면서 혼자 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나도 너무 흥분됐다. 

무채색의 튀지 않는 옷을 선호하는 나였지만 줌바를 배울수록 이 신남을 외면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쇼핑몰에 들러 양쪽 어깨가 다 파진 쫙 들러 붓는 옷, 크롭티까지 평상시라면 질색할 옷들을 이리저리 골라내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요가를 배울 때는 티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갔었다. 선생님은 나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입으려면 입고 벗으려면 벗으라’며 의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말에 영향을 잘 받는 나는 바로 쫙 들러붙는 요가 옷을 구매했다. 

처음엔 거울 속 내 모습이 형편없어서 똑바로 바라보기도 어려웠다. 인스타그램의 그녀들 같은 핏이 도무지 내 몸매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민망한 복장이었지만 동작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동작이 막히는지 어디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뒤로 넘겨야 할지 섬세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벗으라 했구나. 그런 찰나의 깨달음을 요가로 배웠다. 

그때를 떠올리며 조금 더 화려하게 내 스타일로 줌바 댄스복을 코디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날로 복장은 화려해졌다.


줌바를 배울 때 의상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갔다면 영향을 크게 받았던 점은 선생님의 텐션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조금 있으신 분이었지만 복장은 화려함의 끝판왕이었다. 텐션 또한 복장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저는 필라테스와 줌바를 가르치는데 춤출 때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으려 해요. 여러분도 여기서만큼 다 잊고 춤추세요. 나가기 전에 안 미치면 안돼.”


선생님의 말이 주문처럼 들렸을까. 나는 정말 줌바댄스를 출 때는 미친 듯이 홀려 들었다. 누군가의 시선, 예의, 곧음 따위의 딱딱한 것들은 다 내려놓았다. 땀이 흥건히 젖을 만큼 온몸을 흔들며 선생님의 손과 발 동작에 눈을 떼지 않았다. 웨이브를 잘 못해도 죽어라 몸을 꼬았다. 방방 뛰는 동작은 죽자고 바닥에서 굴렀다. 음악이 꺼지면 나는 다신 낯을 엄청 가리는 평범한 한 아줌마로 돌아왔지만 음악만 들렸다 하면 변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도 진짜 내가 아닐까?’


자유롭게 나 다움을 찾아가는 시간 속에 일상이 발랄해졌다.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 만족스러우니 내일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마냥 좋은 것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걸까. 

줌바에 빠져들수록 어려움도 돼살아났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서.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도돌이표 되어 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든 것은 그리 오래도 아니었다. 




 UnsplashAnthony T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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