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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22. 2023

너른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

옷을 고르며 삶을 배운 시간

나는 내가 무척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아이가 놀아야 잘 산다는 것을 주장하고

좋은 먹거리를  먹이며 무해하게 살아가는 날들을 꿈꾸고 외쳤던 날들 속에서 말이다.


실제로 지역 놀이터 만드는 일에 얼떨결에 끼어 아이들이 놀 권리를 아주 소심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시각을 또 조용히 하기도 했다.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삶들을 꿈 뀠는데 어쩌면 내 깜냥이 부족했다.

나는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놀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전체를 위한 삶도 중요하지만 내 개인을 잘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런 내게 돈만을 생각하며 살지 말라고, 그렇게 하면 인간관계에 좋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너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니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한 행동들을 멈추기 어려웠다.


 뜻대로 살아보다 자꾸만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들이 생겨서 회피적인 내 성격과 내 욕구를 우선하는 것들이 문제가 아닐까 하고 걸고넘어졌다.

결국 심리상담까지 받게 되었다.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



"정수 씨는 이상이 너무 높은 거 같아요.

지금의 모습과 바라는 삶의 차이가 커요. 그러니 삶이 힘들고 피곤하지요."


그랬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괜찮은 사람이길 바랐다. 그러니 억지로 배려했고, 우겨서 둥근 사람인 척했다.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다는 소리가 듣기 좋았고 나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제가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자신을 그냥 받아들여야죠."


사람을 포용할 그릇도 작고 놀기 좋아하고 예쁜 것을 취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렇게 억지로 우겨입었던 좋은 사람이라는 옷을 벗고 한량처럼 보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해보고 하기 싫은 일들을 다 내버려 두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기존의 모임은 더 이상 나갈 수 었다. 거기 속하려면 나는 다시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선한 사람인 척해야 내 성에 찼으니깐.



아름다운 가게에서 다양한 옷들을 만난 건 신의 한 수였다.

내가 얼마나 끼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예쁘게 입고 세상을 걷고 싶고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날마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진분홍 립스틱을 바르며 화장했다.

만날 사람 하나 없는 날에도  각 잡힌 재킷에 구두를 신고 나섰다.

갈 곳은 도서관이나 카페로 정해져 있었지만

옷을 멋대로 입으며 세상으로 다시 향하고 싶은 나를 표현한다는 건 진심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기에 자주 나 자신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었다.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는데 매번 일어서는 나를 어찌 바라볼까 싶어 끝까지 그 자리를 부여잡았다. 술 취한 그 친구의 집까지 바래다주고

뒤치다꺼리를 자처했다.

돌아오는 찬사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었다.

정작 나는 집에 가서 얼른 두 발 뻗고 쉬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제야 나를 돌보고 나를 위하고 싶은 마음을 채우니 더 이상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옷을 산 것도 환경보호라는 명목보다 싸다는 이유가 백배 컸다.

입다 보니 버려지는 옷도 살리고 그 돈이 기부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에 작은 죄책감이 일렁였는데 어디로 돈이 가는지 알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삶의 작은 목표가 생겼다.

억지로 좋은 날을 만들지 말자고. 자연스러움이 이로움을 이끄는 순간을 살자고.

나답게 살았더니 누군가에게도 도움 되는 선택이란 걸 알았다고.

그렇게 세상과 꾸밈없이 어울리자고

그게 가장 나답다고.


살면서

곁에 함께하는 사람이 가장 적은 날을 살고 있다.

여기저기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던 날 중에 가장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외롭긴 하지만 이런 마음 편한 시간이 될 줄은 몰 랐다.



외로움을 배웠기에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답게 살아도 좋아해 주는 그들의 마음에 뽀뽀를 수만 번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드디어 스스로의 진정한 편이 되었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너른 마음을 가진 내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가게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마흔 날 인생동안

가장 나답게 사는 요즘에 썼던 글.

이제  마침표를  찍는다.



읽어 주신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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