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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22. 2023

아름다운 어른들의 놀이터

행복한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퀴어 아이’는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이다.

게이 5인방이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라이프 인테리어, 패션 스타일, 마인드, 요리 습관, 헤어, 메이크업까지 변신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일주일 동안 주인공들은 변화를 겪어내고 놀랍게도 자신감이 충족된 상태로 재 등장한다.

그 프로그램에는 하나같이 주변은 도우면서 자신은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을 돌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삶을 돕는 데에도 에너지를 많이 쓰니 나에게 쓸 게 더 이상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옷도 이리저리 방에 널려 있고 곰팡이 핀 음식이 냉장고 속에 숨어있다. 머리도 며칠 만에 감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돌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나의 삶을 잘 살아야 지치지 않고 누군갈 다시 도우며 살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해요.”




주인공들은 진심 어린 조언에 눈물을 뚝뚝 흘린다.




메이크 오버라 함은 사람을 또 다른 사람으로 완전히 변신시켜 준다 생각 들지만 퀴어 아이는 좀 다르다. 누구나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그걸 내면에서 외면으로 끌어내는데 도움 주는 역할을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소갯말처럼 주인공의 집에 처 들어가(그들의 처음 방문할 때 행동을 보면 아무래도 처 들어간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옷을 입고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대화를 나누며 파악하는데 시간을 들인다.

왕따를 당한 사람, 노숙자였던 시기를 겪었던 사람, 약에 취했던 사람, 커밍아웃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오래 외면을 당한 사람 등 아픈 과거사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남을 돕는 것이다. 자신을 돌볼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워요. 지금 모습 그대로도 너무 아름다워요.”





멋쟁이 5인방은 지금은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게이로 살며 소외받았던 시간과 노숙자로 지냈던 날들, 부모님과 연을 끊고 산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눈물을 흘린다.

누구보다 고립된 삶을 살았기에 주인공들의 마음을 더 잘 어루만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나눈 주인공들은 5인방의 도움을 받아 삶이 변화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5인방은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고 주인공들이 원하고 꿈꾸는 삶을 사려 깊게 배려해 그들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잠재력을 끌어내어 더욱 화끈한 인생을 꿈꿀 수 있게 변화를 이끈다.


Unsplash의Michele Wales



나는 그 어떤 말보다 헝클어진 채로 자신을 비난하는 주인공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지금 모습 그대로도 너무 아름답다고 외치는 장면 들에서 진심을 느꼈다. 지금의 모습을 판단하고 비난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꿈꾸도록 그들의 내면에 집중하는 5인방의 모습에서 사랑이 넘치는 프로의 향기가  났다.


퀴어 아이를 보면서 나도 나에게 잠재력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잠재력은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면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게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더 적극적으로 패션으로 나를 표현해 내는데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편에게 매번 단정하고 똑같은 모습의 스타일을 보였다면 비록 촌스럽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꽃무늬가 넘쳐나는 옷도 입었다. 한쪽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예전이라면 절대 입지 않을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남편의 반응에 기대하고 실망하기보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나는 남편에게 조차 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숨기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Unsplash의Diane Picchiottino






아름다운 가게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힌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 때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기에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남다르게 화려한 옷들을  탈의실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골라 입는 나를 보며 잘 어울린다 외치는 어머님도 계셨다. 내가 고르는 게 마음에 드셨는지 나에게 옷을 보이며 ‘이거 괜찮아요?’ 하고 묻기도 하셨다.


 


까만 티셔츠에 기본적이고 루즈한 스타일의 옷을 고르셨기에 어머님 몸매가 더 드러나는 옷을 입으시면 더 예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그렇게 못 입어요.’하고 말하셨지만 내 눈엔 그분의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목에 셔링이 길게 늘어진 드레스 한 검은 셔츠를 입으셔도 참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퀴어 아이를 보면서 몸매가 어떤 사이즈든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눈으로 익혔기에 나는 그 어머님이 조금 더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고르시길 바랐다.



내가 고른 것들을 다 마음에 들어 하시기에

“저도 매일 어둡고 스포티한 거만 입다가 화사한 거 입기 시작했어요. 저처럼 자주 오면 보여요. 어머님도 숨어 있는 거 잘 고르시면 예쁜 거 발견하실 수 있어요.”하고 말씀드렸다.


매장 봉사자님은 내가 너무 자주 오는 걸 아시는 듯 우리말을 듣고 웃으시는데 그 순간 참 기분 좋았다. 작은 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던 까닭이다. 이렇게 소통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발그레 졌다. 내가 조금만 더 옷 고르는 안목이 있고 활달하다면 그분께 어울리는 옷들을 작정하고 골라드려도 참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소심한 나는 그만하고 말았다.

매번 구닥다리 옷이라며 사놓고선 집에 와서 속상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채색의 옷만 튀지 않게 입고 다니던 내 모습도 떠오르면서 말을 건넸던 순간.




아직도 내 옷장은 스타일에 대한 방황 속에서 채워지는 중이지만 삶의 많은 부분을 여기 아름다운 가게에서 배웠다. 스타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보는 것. 실패하고 안목을 기르는 것.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쓸쓸했던 시간 속에 놀이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  은인 같은 공간.


아름다운 가게에 사랑을 전한다.

누구든지 여기 들려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시길.



행복한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기를 바란다.




Unsplash의Vika Strawberr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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