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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17. 2023

인생은 계절 같은 것

가을과 겨울 같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삶에는 여러 계절이 존재하는 것 같다.


봄처럼 설렘이 가득한 날이 있는 가 하면 여름처럼 싱그러운 순간도 있더라. 늦가을 낙엽처럼 내가 가진 것들이 우수수 떨어지는가 하면 겨울의 앙상한 가지처럼 마음마저 메말라 버릴 때도 있었다. 

인생의 봄과 여름이 찾아오면 나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데 문제는 가을과 겨울 같은 날들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삶은 꼭 계절과 같아서 매번 돌고 돌지만 처음처럼 낯설게 여겨지고 후비듯 아플 때도 있다는 것이다. 


Unsplash의Andrew Ridley




내 인생이 선명했던 순간은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이었다. 

난 꼭 팔딱팔딱 뛰고 있는 물고기처럼 살아 숨 쉬며 그 시간들을 살았더랬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찌 한 가지의 계절만 찾아왔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내 마음속의 산은 여러 번 물들었다 바래지고 다시 새록새록 솟아나며 만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었다. 


둘째가 세 살. 그때 나는 지독하게 우울을 앓았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고립시켰다. 누구에게 만나자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던 그날은 너무너무 외로웠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에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내었다. 그 매개체가 책이었다. 책 읽는 사람이 궁금했고 그들은 고립된 나의 내면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다. 


다음 계절의 변화가 찾아온 날은 코로나시기였다. 

불안이 원래도 심했던 나는 얼마간 집 밖을 나서는 게 두려웠다. 숨 쉬는 공기 마다마다에 코로나가 머무를까 봐 문을 열고 나서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 두려움은 얼마 못 가 깨지고 말았다. 두 아이가 나란히 지독한 장염에 걸렸기 때문이다. 설사를 하고 구토를 하는 상황에서 밖을 나서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상황은 더 나빠져서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코로나 중에 가장 겁내 하던 병원 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병원에서 지낸 일주일은 나쁘지 않았다. 간호사 스테이션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203호라는 병실에서 맞이한 날들은 마을 속 공동체에 들어 차 사는 것 같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복도를 나서면 누구든 마주 할 수 있는. 개인의 삶이 보장되기 어려운 게 함정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 이후로도 코로나 블루를 앓았고, 사람 만나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속 몇 없는 소중한 지인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그 시간을 견뎠다. 

아이가 곁에 있어 좋았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게 감사했던 시간.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친구들의 잔잔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왔던 시간들이 내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Unsplash의Kostiantyn Trundaiev





이번에는 어떤 계절이 돌아왔을까. 

10년, 아이를 키우고 열심히 살면 그 이후의 삶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취업의 맥이 끊긴 주부의 도전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일할 곳이 없다는 것보다 내 두려움이 행동을 막아섰다. 

나는 구인광고를 보고 계속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나 할 수 있을까. 실수하는 거 아닐까. 한 소리 듣는 거 아닐까. 애들 아프면 어쩌지.’


생각보다 두려움이 너무 컸던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코로나로 집 문을 열고 나서는 게 너무 힘든 그때처럼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쉽지 않았다.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다시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운다 책만 보고, 돈 없다고 사람 만날 일도 고르며 내 일상의 폭을 줄이고 살아갈 것 인가.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서 이 문을 열고 세상을 나설 것인가. 


‘나는 할 수 있다. 그도 하고, 그녀도 한다. 근데 나는 왜 못해?!’


이런 말은 두려움이 온몸에 스며든 이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두려움은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회복될 것 같지만 오래 안정적인 일상에 머무른 나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대로 포기하라고. 












내가 어려움을 이겨냈던 시간들이 떠 올랐다. 그 시작은 항상 조그마한 것이었다. 

공원 돌기, 블로그에 글 몇 줄 쓰기. 산책하기. 요리하기.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손쉬운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것. 그런 시간들이 견고하게 쌓이고서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제법 오래 걸렸지만 항상 그 끝에는 어제보다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지금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뭘까. 어떤 일을 해야 취업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답이 나왔다. 




나를 돌보는 일로 일상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쌓아 가는 것이었다. 




공원을 하루 다섯 바퀴씩 돌던 것을 조금 늘려 보기로 했다. 집 근처 외곽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것이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도 다시 나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그럴 에너지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끼고 무조건 나를 안아주는 자연의 품으로 퐁당 뛰어들기로 했다. 바람을 한껏 맞은 나무의 넘실거림을 보며 내 마음을 달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들을수록 반갑다. 쏟아지는 태양아래 내 마음아 녹아내리라며 속으로 외친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닥의 단단함이 무너진 기운을 세워주는 것만 같다. 


Unsplash의Goutham Krishna





자주 샤워하고 화장도 하며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돌보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돈을 버는 곳에서 아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필요한 곳에서 경험을 쌓으리라 생각했다. 노인복지관에 모인 어르신들을 만나 뵈었던 그날, 나도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제일 꾸준히 해온 일. 젖먹이 아이가 잠을 잘 때도 나는 그 옆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었다. 엄마라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싶어서 책 속으로 탈출한 것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지혜와 위안을 얻었던가. 




힘겨운 일상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나는 조금 더 삶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활기찬 어제가 있었다면 잠시 움츠리고 싶은 오늘도 있다는 걸. 그렇게 꼼짝없이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오늘은 어제의 양식을 비축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란 것을.

나는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에 희망을 건다. 

오늘의 꾸준함이 작은 시도가 또 다른 내일을 선물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힘을 내어본다. 



내일아, 기쁘게 너를 기다릴게.

오늘아, 깨달음을 줘서 고맙다. 

어제야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거 잊지 않을게. 



Unsplash의Jan Tinne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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