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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16. 2023

미인(美人)은 어떤 사람일까


계란형 얼굴, 맑은 피부.

긴 속눈썹에 눈꼬리도 길지만 눈을 떴을 때 또렷한 그 눈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선이 뚜렷한 입술. 긴 목. 포니테일 머리를 했을 때 드러나는 이목구비가 아름답던 그 사람. 군살 없는 몸매에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자태가 고운 그분. 보드랍고 풍성한 볼륨의 머릿 결은 대체 어떤 샴푸를 썼는지 묻고 싶었던 그 사람.




이제 막 마흔에 이른 나는 대학가를 지나칠 때 싱그러운 학생들을 보며 그렇게 느낀다. 참 아름답다고. 나는 이제 영양분이 끝까지 가지 않아서 기를 수도 없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데. 저 들은 어쩜 하나같이 풍성한 머리를 어깨너머로 길러서 예쁜 모습을 뽐내고 다닐까. 나도 저 시절에 저렇게 예뻤을까. 지난 시절의 추억에 잠시 머무르기도 해 본다.





Unsplash의jcob nasyr


지금 거울 속의 나는 어떨까.

이제 눈 밑도 자주 붓기 시작한다. 미소 짓지 않으면 팔자주름이 꼼짝없이 나 여기 있소 하고 손을 든다. 눈가엔 기미가 자잔해 져 컨실러로 가리지 않으면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머리숱은 정수리 숱이 가늘어져 이쪽저쪽 숨기느라 어느 쪽으로 가르마를 타는 게 좋을까 고민한다 야단이다.



마흔은 요즘 세상에 젊은 나이라지만 그래도 세월은 속일 수 없다. 탱탱하던 볼살이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걸 거울로 확인하는 순간,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 모습보다 더 나이 들어갈 텐데. 그런 모습으로 더 많은 세월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아찔하기도 하다.


“누나 팔자 주름 어쩔 건데. 시술로 확 좀 당겨 올리는 거 없나.”


얄미운 녀석. 너도 네 나이 되어 봐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관리를 잘한 사람들은 피부도 남달랐다. 물광이 어떤 건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동안이 깃든 얼굴을 뽐내는 그 언니는 참 부러웠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녀는 맨 얼굴도 세련되었다. 타고난 얼굴을 뜯어고치는 게 어디 쉬울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받는 그 언니 곁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예뻐지고 싶었다. 아이참이라는 쌍꺼풀 테이프를 나는 초딩 때부터 알았다. 귀걸이가 달린 머리띠를 끼고 학교에 꾸미고 갔지만 엄청나게 예쁜 그 애 옆에서 나는 또 움츠러들었다. 세상엔 왜 그렇게 예쁜 애들이 많을까. 나도 한 번쯤 그렇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이가 들면 다 똑같아질 거라며 혼자 위로하던 시절도 오래전이다. 그래도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더라.




사랑도 인간관계도 일하는 법도 육아마저도 책으로 배운 나는 예뻐지고 싶은 욕망도 버릴 수가 없어 책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옷을 잘 입는 방법과 헤어나 메이크업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거였는데.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옷으로 표현하세요.’

‘아름다워지고 싶다면 발성과 움직이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세요.’



예뻐지고 싶은 내게 나를 표현하고 싶은 옷을 입어라 말한다. 걷는 자세나 앉고 말하는 태도를 바꾸라는 그 말이 신박했다. 과연 그 말 대로 한다고 내가 예뻐지려나.


속는 셈 치고 어깨를 펴고 걷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고’하며 말하는 문장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는 습관이 내게 있다는 걸 알았다. 책의 내용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발음을 한 땀, 한 땀 메꾼다는 느낌으로 하라는 그 말이 퍽이나 인상 깊었는데 상대방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하라는 그 말도 놓치지 않고 따라 했다.



걸음은 펌프스 구두를 신으니 달라졌다. 운동화로 편하게 일상을 걷던 내가 약간 굽 있는 신발을 신으니 어깨도 펴지고 다소곳하게 걸어지는 게 아닌가. 설레는 옷을 입고 길을 나설 때 혼자 머물던 카페에서도 우아하게 행동해졌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러블리한 블라우스를 입고 마구잡이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베이글을 집어 먹을 때도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우아하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아무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었으면서도 나를 향해 지키는 매너가 왠지 기분 좋게 느껴졌다.











퍼스널 컬러 강의를 듣던 날, 강의실에 40대로 보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모둠으로 활동하는데 함께 했던 친구들은 이십 대 중 후반이라 소개했다. 그날 나는 어깨에 셔링이 잡힌 보라색 티와 가벼운 갈색 재킷을 입고 갔었다. 나를 꾸미는 걸 즐기는 중이었던 참이라 옷차림에 자신감이 실렸었다. 생기 있게 보이려 핑크립도 발랐던 날.


띠동갑 정도 되는 친구들과 자리에 앉아서 퍼스널 컬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 자리가 생각보다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그분들과 눈을 맞추고, 서로 순서를 지켜가며 어떤 컬러가 어울리는지 천을 대어 보며 실습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다른 세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가볍게 나눴던 그 자리가 너무 특별했다. 거의 나 또래의 아이 엄마들만 만나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겠다며 새로움을 배우는 그런 자리는 특히나 세대가 다른 분 들과의 만남은 또 처음이었기에 긴장도 되었지만 설렘도 가득했다.



매일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고, 나 스스로에게 친절과 예의를 다하던 시간들의 힘 또한 가볍지 않았다. 누군갈 배려할 여유와 마음자세가 내게서 풍겨 난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기죽지 않고, 단풍처럼 무르익은 세월의 흔적을 나 스스로가 즐긴 자리였다. 길에서만 만나던 싱그러운 사람들을 직접 대한 것도 너무 좋았다. 그들의 젊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내 마음의 건강함이 감사했다. 이십 대의 그 사람들처럼 미인은 될 수 없을지라도 나답게 아름다워 지려 노력하는 사람은 될 수 있겠다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더 이상 내 팔자주름이 그렇게 밉지 만은 않았다.





내가 즐겨보는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 ‘퀴어아이’에서는 노화를 숨기려 과하게 자주 태닝하고 힙한 패션만 즐겨 있는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이를 들어가는 것은 특권이에요.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에요.’


동안이 되어 예뻐지고 싶다는 꿈만 꿨을 때 그 말을 들었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모는 눈을 사로잡지만 태도는 영혼을 사로잡는다'는 그 문장을 책에서 읽었을 때 나는 영혼을 사로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어차피 외모는 안되니까라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아닌 내가 가진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취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들이 정말 내 것이 되었을 때 남이 되기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이를 하나 둘 먹는 것이 전보다 덜 두렵게 되었다. 나이가 드는 게 끝장나는 것이라 생각했던 어제에서 무르익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시 새로운 관점에서 미인(美人)을 꿈꾸게 되었다.  



Unsplash의Alisa A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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