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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pr 26. 2023

수필 배우는 날에

나의 수필 반 이야기

 열 번의 수업이 있다는데 벌써 절반에 도달한 오늘. 수필 반 수업을 듣는 것이 좋아진다 여기면서도 마치고 나선 어깨부터 무거워진다. 선생님은 저번 날부터 사진을 한 장씩 단톡방에 던져 주셨다. 그제는 탱자나무 분재를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작은 조약돌로 만든 돌탑 사진을 올려 주셨다. 아무리 뚫어져라 바라봐도 무엇을 써야 할지 답이 없다. 나는 이걸로 또 어떤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을까.      

 

 수업에 참여하고 딱 두 번 내가 쓴 글을 가져가 내보였다. 오늘은 다른 분들의 글을 가만히 듣고 있겠다며 써간 글을 몰래 숨겨 두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에게 글을 내보인 동기님은 ‘개비리’라는 곳을 글로 알려주셨다. 누렁이가 젖먹이 새끼 개를 먹여 살리려 건넜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개비리(개벼랑) 길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설명하는 글을 잘 쓰시는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자료를 찾아 글로 남기실까. 글로 적으신 신화 같은 이야기는 거의가 처음 듣는 것이라 들을 때마다 신선했다. 이런 이야기의 세계들도 있었다니. 

 어머니를 간병하고 임종을 바라보는 그때 까지를 날짜와 시간별로 기록해 남기셨던 분의 글을 듣고는 눈물이 찰방거렸다. 치매가 있었던 외증조 할머니도 생각났다. 임종을 함께 해드리지 못했던 우리 할머니도 떠올랐다. 어머니를 잃어가는 날에 대한 안타까움 들이 글 속에서 진하게 배어 나올 때마다 내 눈물 줄기가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왔다. 여기저기 콧물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나만 훌쩍인 게 아니었구나 싶어 함께한다는 마음이 더했던 오늘. 

 상담사라 자신을 소개하셨던 선생님의 차례. 그분에 대한 호기심이 일렁였다. 마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상담, 심리학이라면 눈이 번쩍 뜨였기에 어떤 글을 쓰실까 궁금했다. 자신의 글도 알맞게 가지치기해 수형이 잘 갖춰진 분재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하고 싶다던 글이 끝나자마자 다들 큰 박수를 쳤다. 글에 대한 애정과 탱자나무 분재라는 소재가 잘 어우러졌기에 감동을 표현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은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호강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껏 엄마의 삶이라는 테두리 속에 살았다면 수필 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새로운 사회가 펼쳐지는 것만 같다. 다른 나이 대, 서로의 사연에 따른 글쓰기를 하려고 여기로 모여든 사람 들. 그 속은 또 다른 우주가 숨겨져 있었다.

 천으로 만든 검정 필통과 나란히 칼로 반듯하게 깎은 연필을 둔 오늘의 짝꿍은 우리 반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다.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인쇄를 하라며 대가 없이 프린터를 성큼도 가져오셨다. 그 덕에 우리는 편하게 낭독할 글들을 뽑아낸다. 수업 전에 절에 들렀다 온다며 소개하셨던 총무님. 다음 주 야외수업날 김밥을 쌀까 쑥떡을 한 되 지을까 앞장서서 말하셨다. 나는 쑥스러워 그렇게 나서는 것이 쉽지도 않은데. 그런 박력 있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자니 옆에서 작은 것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었다. 자신의 아팠던 시절을 글로 표현하는 다른 글벗님의 진솔함은 또 어떻고. 온라인에서는 잘도 재잘대던 내 내밀한 사정들이 앞에서 낭독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어떤 글로도 내보일 수 없었는데. 그분의 솔직함에 기대어 나 역시 어둠 속의 것들마저 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울리지도 못하고 한마디 거들지도 않은 채 동기님들을 바라만 보며 몇 주를  보내었다. 속한 것만으로도 삶의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기에 말없이도 만족하는 날들이 되어갔다.

 움츠려 들었던 어깨를 펴고자 이 자리에 나섰던 날들에 조금씩 희망도 보이기 시작한다. 글로 결실을 못 맺은 것들이 아쉬운 지난날들이다. 그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스며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사하고 배울 것들이 지천에 널린 요즘,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절로 난다. 놓쳐 보았기에, 잃어 봤기에 주어지는 것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고마운 시간에 깃들다 돌아왔다. 수필 배우는 날에.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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