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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10)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28. 카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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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이 되고 입주가 시작되자, 몇 개의 카페 방이 생겼다. 아파트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단지별 게시판, 동호회들의 모임방, 자유게시판 등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처음 입주해서 불편한 내용을 공유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데도 이 카페 방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끔 올라오는 좋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많은 댓글이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정화작업을 했다.


여러 개의 카페 방은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하나씩 정리되면서 한 카페 방만 이용하고 있다. 2만 명 정도의 멤버가 가입한 대형 카페 방은 앉아서도 아파트 단지가 돌아가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잠들기 전, 카페 방에 들어가서 오늘은 무슨 사건이 있었고, 어떤 이슈가 뜨거웠는지 보면서 잠을 청한다. 가장 많은 내용이 ‘드림’이다. 여유 있는 생활용품이나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의 용품 등 다양한 물품들이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가정에 전달이 된다.


아파트의 생활이 시멘트 냄새가 나는 건조한 생활지역이라는 편견은 카페 방을 보면서 인식이 파괴된다. 환자가 생겨서 약국을 열지 않는 시간에 필요한 약품을 카페에 올리면, 금방 댓글이 올라와 조치가 된다. 잃어버린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유기견이나 유기묘도 보호하면서 카페 방에 올려준다. 수십 년을 아파트에 살면서 처음 이용하는 아파트 카페 방은 아파트 단지의 화합과 함께 시멘트 냄새가 없는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준다.


29. 주차장

옛날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많이 불편했다. 아파트 층수는 올라가고, 자동차 보유 대수도 비례해서 올라가고 있는데, 지하 주차장은 그런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차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고, 6·25 전쟁 보다 더 심각한 전쟁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주차 전쟁은 결국 개인적 감정의 폭발로 이웃 간의 불화로 발전하면서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소개되고 있다.


개인 주택도 마찬가지이지만,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특히 매너를 지켜야 한다. 아파트 주민 자치회가 있어서 아파트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차 빼주세요.’라는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어느 사회에나 ‘개’ 자 들어가는 인간들이 항상 있는 법이고, 그런 많지도 않은 인간들 때문에 시끄러워진다. 주차 질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별거도 아니지만, 이런 미꾸라지 몇 마리가 흙탕물을 만들어 놓는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최근의 아파트들의 건축 구조처럼 지상을 공원화하고, 지하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출입구가 여러 군데 있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지하 주차장의 환풍 시설 등 관리도 잘 되어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주차 질서도 잘 지켜서 대체로 잡음도 없고, 조용한 아파트로 유지되고 있다. 가끔 나타나는 미꾸라지들 때문에 시끄럽기는 하지만, 요즘 미꾸라지가 더위에 힘이 없는지 보이지 않는다.


30. 엘리베이터

오래된 아파트는 5층이 많다. 그곳에는 아직도 걸어서 다니는 불편함이 있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고층 아파트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이제는 하늘을 뚫을 것 같다. 한국의 인구 중 아파트 거주자 비율도 아파트의 높이만큼 올라가고 있다. 그런 고층 아파트의 필수는 엘리베이터다. 하루에 여러 번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지난 폭우로 강남에 사는 친구는 아파트에 물이 들어와 18층을 엘리베이터가 작동 못해서 걸어서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지만, 이곳 아파트는 지대가 높아서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지 않는 이상 그런 불상사는 없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여러 번 아파트를 이사하면서 높은 지대와 옹벽이 없는 아파트를 선호했다. 그리고 항상 아파트의 중간층에서 살았다. 50년 이상 아파트만 살아온 경험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동에 사는 입주민을 만나는 유일한 소통로가 엘리베이터다. 그들과의 말 없는 인사와 가끔 아파트 소식을 듣기도 한다. 오랜 코로나 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얼굴을 잘 알지 못했던 새로 이사 온 분들과의 인사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짧은 시간의 만남이지만, 같은 동에서 산다는 유대감이 느껴진다. 간혹 부담스러운 모습을 하는 이웃도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은 이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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