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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11)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31. 집값

지금 사는 아파트는 생에 처음 분양받아서인지 내 집 같은 생각이 들면서 정이 간다. 그동안 남의 집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웃돈 얹어서 산 집이라서 왠지 낯설었다. 주택은행(지금 KB국민은행)에서 아파트 30평대 분양받을 수 있는 주택 청약 통장에 가입하고, 설렌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 당시 이자가 10%였기에 이미 원금을 2배 이상 빼먹었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간직하고 있다. 해외근무를 많이 해서 청약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집을 산 이유는 여윳돈으로 투자해서, 노후에 월세를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규모 아파트의 입주는 전·월세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지금은 마음이 변해서 계속 살고 있다. 그동안 살았던 아파트들과 또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입주했을 때 ‘마이너스피’라고 하는 말이 뭔지 몰랐다. 주변에서 집값이 오르지 않아서 한숨시티라고 할 때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동안 웃돈 얹어주고 샀던 집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항상 좋은 가격으로 팔았다. 집값에 대해서는 그것이 행운이든 아니든 좋아하든 집에서 편안하게 살고 나왔기에 관심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주변에 유명한 커피숍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외진 아파트 단지인 이곳에 들어 올 입지 조건이 아닌 것 같은데, 관심도 없는 집값이 조만간 들썩거리는 행운이 또 오는 건 아닌지 가끔 신경이 쓰인다.


32. 놀이터

아파트의 놀이터 하면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의 코끼리 미끄럼틀이 생각난다. 50년이 훨씬 지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어린이 놀이터란 개념이 없을 때였다. 거대한 코끼리의 등에서 내려오는 미끄럼틀은 아파트 밖에도 소문이 나서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텃세와 어른들의 항의로 경비원들이 나서는 바람에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거대했던 코끼리는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파트가 대단지화 되면서 어린이 놀이터와 주차장 그리고 잘 꾸며진 정원은 아파트의 상징이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자주 다녔던 놀이터는 다양한 대형 놀이시설이 생기면서 조금씩 뜸해졌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놀이터는 새로운 어린 주인들로 바뀌었고, 이제는 손주들 데리고 다니는 곳이 되었다. 주변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 때, 부모들은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먹을 것을 싸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모습이 정겹다.


이곳의 아파트단지별 놀이터는 같은 건설회사가 시공해서인지 비슷하다. 큰 단지는 놀이터도 크지만,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작은 단지는 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오롯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의 추억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도 그들의 추억을 담고 있겠지.


33. 길냥이

개를 키워본 적은 있지만,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기도 하고, 관심도 없었다. 지인들 집에서 여러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개의 적극성에 비해서 고양이는 너무 자기 보호가 강하고, ‘깔끔을 떤다’라는 말이 생각나서인지 정이 가지 않았다. 사람마다 반려동물에 대해서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는 좀 그랬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사 와서 ‘길냥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알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에 1시간가량 산책하는 코스는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앞만 보고 걸었는데, 조금씩 주변을 보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어느 날, 걷고 있는 앞으로 도로를 건너 산 쪽으로 달려가는 고양이를 보았다, 그 고양이가 멈춘 고가 다리 밑에 새끼 고양이들이 보였다. 그곳에 밥그릇과 얇은 이불들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그들이 있을 수 있게 해 준 흔적이 보였다. 그들이 ‘길냥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 카페 방에 가끔 올라오는 길냥이 입양 안내를 보면서 산책에서 보았던 그들이 생각났다. 보통 반려견들과 산책을 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반려묘들과 산책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혹시 그들이 버림받은 고양이들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은 고양이를 잘 모르는 기우(杞憂)였다. ‘길냥이’의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행복한 동네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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