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이야기 / 에세이
한숲에서 살면서 의아해한 것 중의 하나는 무지개를 자주 보는 것이다. 비 온 후, 하늘이 개면서 항상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무지개를 자주 본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것도 쌍무지개를 보는 날이면 왠지 로또를 맞은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이른 저녁에 산책해도 해를 볼 수 있다. 적은 비가 내려도 혹시나 해서 우산도 쓰지 않고 산책하러 나간다. 비가 멎으면서 가끔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을 띠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무지개에 다른 색을 첨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라고 했다, 무지개가 모든 기상현상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물과 빛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웅대한 리듬은 현란하고, 순간순간 바뀌는 변화가 오묘하다. 복잡하면서 단순한 색채의 현란함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현상은 한숲 주변의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지개는 하늘과 지상 사이의 경계선에 걸쳐져서 나타나서 신과의 통신을 나타내는 특별한 상징으로 생각했다. 올림포스 산에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꽃을 뜻하는 무지개의 신이 ‘이리스’ 여신이었다. 그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식의 전달이다. 이리스 여신이 한숲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한숲에 살면서 우편함은 외부로부터 소식을 받는 주요한 통로이다. 하루에 한 번 우체부가 다녀가는 시간이 되면 우체통이 궁금해진다. 어떤 날은 그곳이 꽉 차서 모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텅 비어 있는 날은 마음도 텅 빈 느낌을 받는다. 주로 우편물의 대부분이 고지서나 서적들이지만, 가끔 관공서에서 날아오는 우편물을 받을 때는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뛸 때도 있다. 특히, 등기우편물을 받을 때는 긴장하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가끔 가는 곳이 우체국이다. 평생 살면서 다녔던 우체국보다 이곳에 살면서 다닌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우편물을 받다가 누군가에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서 가깝지 않은 우체국을 가는 날은 또 다른 설렘이 생긴다. 전자 우편이나 택배로 모든 것이 전달되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동네 분들의 모습은 항상 밝아 보인다. 마음은 이미 다른 세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래전에 울산에 있는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돌아가는 길에 바다 구경하러 갔다가 멀리 보이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대형 우체통을 보았다. ‘간절곶소망우체통’이라고 쓰인 빨간색의 우체통을 돌아보며, 그 안에는 많은 사연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한숲에도 이런 대형 우체통이 있어서 그 속에 아이들의 많은 희망들을 넣어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본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그들에게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한숲 주변에는 저수지가 많이 있다. 지형적으로 산이 많아서인지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들이다. 물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저수지는 쌀농사를 주로 하는 이곳에서 물이 많이 필요해서 오래전부터 산등성이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산의 위치와 논의 넓이에 따라 저수지의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주변과 어우러져 있다. 그곳을 산책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대형 저수지에는 낚시터가 있고, 주변에 많은 음식점이 있어서인지 조금 번잡스럽다. 가볍게 나들이하기에는 좋지만, 내 집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인지 정이 가지는 않는다. 차들의 소음도 들리고, 주위가 어수선해서 오래 있고 싶은 생각도 없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한 번씩 간다. 도시에서 온 그들은 이렇게 좋은 곳이 있냐며 즐거워한다. 오히려 그들이 흥미로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아파트 뒤로 돌아 산 쪽으로 올라가면 두 개의 저수지가 있다. 한 곳은 전형적인 저수지 역할을 한다. 다른 한 곳은 최근에 수중 산책로를 만들어 편안하게 산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저수지 옆에는 2층 한옥으로 만든 멋있는 집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마사(馬舍)가 있는 넓은 캠프장이 있다. 저수지는 날씨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저 멀리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이는 풍경이 이 저수지의 최고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