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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16)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46. 헤어숍

요즈음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의 역사는 한국의 남성들이 ‘상투 머리’를 자르면서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머리털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는 머리 스타일이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남성이 머리털이 희미하게 보이는 경우는 태어나서, 과거 중고교시절, 군대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사라지는 경우이다.


이사를 하면서 단골을 만드는 곳이 바로 이발소다. 아무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단골 이발소를 이용한다. 이발의 기술은 연륜이다. 아무 말 없어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한숲에 와서 처음에는 이발소가 없고, 이용실이 대부분이어서 차를 타고 멀리 다녔다. 미용실에서 남자도 해줬지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몇 년간 멀리 다니던 이발소는 단지 내 남성 전용 헤어숍이 오픈하면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점주인 여자분이 남성의 머리를 자유자재로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다녔던 이발소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지금은 자동차 대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헤어숍을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데, 워낙 바빠서 앉으면 이제는 단골이라 알아서 다 해주는 편안함을 느낀다. 동네 이발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일은 사라지고, 조용히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며 오늘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이런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한다.


47. 사계(四季)

극한의 폭염, 폭우 그리고 폭풍이 몰아쳤던 여름이 지나가면서,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작고한 저음 가수가 구수하게 불렀던 ‘가을비 우산 속에’가 생각이 난다. 명화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의 영화 주제곡(OST)이 듣고 싶어 진다. 전자기타가 막 유행하던 시절 멜로디를 앞서가면서, 라틴풍의 타악기까지 합세한 재미있는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가을이 오면 왜 현재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회사에 다니면서 바쁜 일상을 보낼 적에는 사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 무감각했는데, 이제는 사계절을 음미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한숲으로 오면서 농사짓는 사계(四季), 창밖으로 보이는 어산의 사계, 그리고 완장천의 사계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자연 친화적인 한숲 생활이 여유가 생긴 이유도 있지만, 이곳을 둘러싼 환경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을비가 그치면 그동안 가 보지 못했던 한숲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이다. 걸으면서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싶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가을비에 젖은 길을 밟으며 생각해 보고 싶다. 가을비가 멎으면 날씨가 차가워지겠지. 그리고 곧 겨울이 올 것이다. 한숲의 사계를 느끼게 해주는 가을비가 창밖에서 아직도 내리고 있다.


48. 한숲 반도체벨리

『용인 300조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14개 첨단산단…尹 "신속 추진"』이라는 헤드라인을 보는 순간 용인의 다른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SK하이닉스가 5년 전 한숲에서 거리가 먼 원삼면에 122조 원을 투자하는 경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 발표를 한 것과 연관이 있는 줄 알았다. 같은 용인시에 살면서 복 터졌다고 부러워했다. 아내가 갑자기 뛰어 들어오더니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들이 들어선다면서 흥분했다.


얼마 전 한숲에서 파랑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한숲에는 파랑새가 보일 거라는 조심스러운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별다방이 이곳에 공사를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이러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우매한 고민도 했다. 한숲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나 라는 기분 좋은 생각도 했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이 샀던 복권은 공중에서 분해된 지도 오래되었다.


한숲아파트 단지에는 경축 플래카드가 나부끼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입은 신나서 이미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담담할까? 오래 지난 후에나 벌어질 일이라고 감흥이 와닿지 않는 것일까? 혹시 산단이 들어오면 자연 훼손이 되는 건 아닐까? 모든 게 기우(杞憂)다. 한숲 주민이 파랑새를 찾으러 이곳으로 와서 ‘한숲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축복받은 한숲에 세계의 반도체벨리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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