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이야기 / 에세이
주말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밖에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토바이 소리다. 한숲으로 이사 와서 처음에는 적막강산(寂寞江山)이었다. 이사 오는 차량으로 분주해 보이기는 했지만, 입주율이 높지 않아 밤이 되면 하늘의 떠 있는 별들과 하염없이 이야기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 단지 내 많은 음식점이 입주하면서부터 어디선가 오토바이 부대가 나타났다. 7,000세대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점령한 군대 같았다.
저녁에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들은 달리고 있다. 그들은 시간과의 전쟁을 치르듯 오토바이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누비고 다닌다. 그들의 역동적(力動的)인 모습을 볼 때마다 산책하다가도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살아온 과정과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 이유가 다르겠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웠던 젊은 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런 추억들이 지금의 삶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가끔 초인종을 누르면 아파트 지인들이 보낸 음식을 배달하는 분들을 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많은 모습이 지나가지만, 확실한 것은 삶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산책하면서 자주 보면서,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은 오히려 행복해 보일 때도 많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땀에 젖은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그들은 이제 한숲의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
20여 년 전 신재생에너지 사업 중의 하나인 LED를 개발하여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LED 소자(素子)는 일본에서 수입해서 가격 경쟁력이 없었지만,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제품 경쟁력으로 마케팅한 기억이 난다. 교통신호등이 LED로 바뀐 지는 이미 오래전이고, 램프와 형광등도 싸고, 쉽게 어디서나 살 수 있다. LED의 수명은 반영구적이고, 전기 효율도 좋아서 이제는 어디서나 LED 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낮에는 별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밤에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파란불과 빨간불이 신호등에 따라 바뀌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횡단보도 앞에서 공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보수 공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완공된 후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학교 근처에 설치한 LED 횡단보도 통행 표시는 아이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아이는 불빛에 따라 춤을 추며 신나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용인시가 반도체 클러스터로 정부에서 발표하면서 한숲은 꿈의 아파트 단지가 되어 가고 있다. 아직은 집값도 오르지 않고, 교통 인프라도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얼마 전 국가산단으로 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해 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LED가 처음 개발되고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듯이, 한숲의 미래도 조만간 현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한숲의 꿈은 LED 횡단보도 불빛처럼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산책하다가 한숲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처인성 역사교육관에서 용인 처인성 전투 승리를 이끈 김윤후 승장 추모 다례재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다례재는 대몽항쟁에서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 승장과 처인부곡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처음에는 처인성에서 열렸으나, 몇 년 전 처인성 역사교육관이 건립되면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한숲 주민들도 아이들과 많이 참석해서 이제는 한숲 역사의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다.
산책 코스에 속해있는 처인성 둘레길로 다녔지만, 얼마 전부터 처인성에 올라 한 바퀴 돌면서 멀리 보이는 풍경들을 보며 한숲의 평안을 빌고 있다. 그곳은 공원화 작업을 해서 주말에는 한숲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넓은 잔디는 아이들과 반려견들의 뛰어노는 놀이 장소로 변했다. 그들의 표정은 한숲에서 보는 모습과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처인성 옆에 있는 처인성 역사교육관 앞 넓은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보이는 산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역사교육관 내에는 한숲이 왜 처인성 옆에 자리 잡았는지를 볼 수 있는 많은 자료가 있다. 처인구가 미래의 도시, 세계의 도시로 변해가는 용인시의 중심에 있고, 그 중심에 한숲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수 있다. 앞으로 10년 내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이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통신의 첨단과 함께 반도체 중심지로 거듭날 것이다. 처인성 역사교육관은 지금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