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이야기 / 에세이
한숲에 입주했을 때 제일 난감했던 것이 교통 문제였다. 아파트 시공사에서 2년간 용인시청까지 버스를 운행해 준다고 했으나, 한정된 노선, 시간으로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불편했다. 아내는 입주하자마자 차 사달라고 졸라서 그동안 여러 가지 고생시켰는데 이왕이면 좋은 차를 뽑아줬다. 한집에 2명이 살면서 차 2대를 가진다는 것이 교통이 불편한 미국도 아니고, 사치가 아닌가 생각을 해봤지만, 정말 필요했다.
입주가 되면서 아파트 주민들이 교통 문제를 시청에 건의해서 마을버스 노선을 운행하기 시작했으나, 2만 명이 넘는 아파트 인구에 역부족이었다. 특히,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은 새벽 별 보기, 저녁달 보기 운동을 해야만 했다. 입주할 때부터 각오를 단단히 했으나, 체력적으로 바닥이 되어가면서 서울로 직접 가는 광역버스를 시청에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역으로 가는 한 개의 광역버스 노선이 확정되었다.
가끔 광역버스를 집 앞에서 타고 서울을 가다 보면, 노선이 너무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에 고속화도로를 타기는 하지만,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게 어딘가. 편한 버스에서 눈을 붙여도 되고,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견딜 만하지 않을까. 한숲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교통 인프라는 더욱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한숲의 아이들은 미래가 더욱 밝아지겠지.
어릴 적 서울 시내에 살면서 자전거가 위험하다고 부모님이 사주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한 번 얻어 타려고 과자를 사주기도 했고, 뒤에서 밀어주며 아양을 떨었다. 처음으로 개인주택에 이사 가서 먼저 구입한 것이 자전거였다. 주변이 자전거를 타기도 좋았지만, 교통이 불편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편했다. 아파트로 이사 간 후에도 대공원이 옆에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로 공원 일주를 했다.
한숲으로 오면서 자전거를 장만해 천을 따라 안성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주변 동네를 돌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교통이 대로(大路)를 제외하면 아직도 한 적 한 길이 많아서 자전거 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자전거가 고장 나면 고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불편했는데, 언젠가부터 자전거 고치는 아저씨가 정기적으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수리해 준다.. 카페에 들어가면 지금 아저씨가 어디에 있는지 친절한 안내문을 볼 수 있다.
한때는 친구들 또는 동호회에서 라이딩을 하면서 먼 곳까지도 가곤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어진다. 빠르게, 멀리 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자연을 음미하면서 혼자 라이딩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한숲의 가을이 깊어지면 완장천의 새들과 노랗게 익은 벼 이삭 그리고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와 호흡을 맞춰서 가을을 음미해보고 싶다. 자전거는 계속 한숲을 달리고 있다.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라 어릴 적부터 절에 따라다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밤새도록 1,080배를 하며 고통 속에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 앉아 참선을 배웠다. 기독교 학교인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이슬람국가에 근무하면서 가끔 사원에 들어가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많은 관이 사람들에 들려서 마지막 장례 예식을 치르는 광경도 보았다.
한숲에 와서 용인 처인성 전투 승리를 이끈 김윤후 승장 추모 다례재와 백일장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첫 행사였다. 많은 스님, 기관장 그리고 불교 신자들 참석한 행사에서 한숲 주변에 기독교 관련 대학원과 교회들도 있지만, 불교와 연관이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성당이 근처에 없지만,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성될 즈음에 멋있는 성당이 건립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무신론자로서 어느 나라, 어느 동네를 가던 종교와 관계없이 종교 시설이 있으면 그곳에 들어가 묵상을 하고, 나오면서 소박한 헌금을 한다. 종교적으로 자유로워서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의 기본은 사람들의 상호 믿음과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곳의 종교 시설은 결국 그곳의 평화와 안위를 위한 것 아니겠는가. 한숲의 종교 생활이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