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이야기 / 에세이
한숲 일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부담이 있었다. 지명이 나타나면 한숲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과 개인적인 일기를 공개한다는 불편함 또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생각들은 한숲에서 살면서 찾아오는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조금씩 지워졌다. 마음의 편안함과 글로써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소박한 애정의 표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렵게 시작한 한숲 일기가 이제 끝을 맺으면서 뭔지 모를 소회(所懷)가 밀려온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하는 망설임이 솔직함으로 바뀌었다. 자전적(自傳的)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솔직함이 더 나가서 진솔함으로 바뀌면서 한숲의 주민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글은 생각나는 대로 꾸밈없이 써야 한다’라는 명제를 생각하며 머릿속에 있는 나 자신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을 불러왔다. 한숲 일기는 지금을 사는 이야기이지만, 과거의 치환(置換) 일지도(置換) 모른다고 생각했다.
용인에 오기 시작한 것은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중학교 친구의 고향이 용인으로 그는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고향에 자주 들렀다. 어느 날 용인 집에 같이 놀러 가자는 제안을 받고 친구와의 우정으로 기꺼이 도시 생활의 탈출을 시작했다. 그 당시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용인 터미널에 5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다. 행정상으로 용인군이었지만, 용인읍이 거의 전부였고, 지금의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으로 막 개장할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도시 생활로 나약해진 나를 어릴 적부터 방학이 되면 시골 친척 집이나 지인에게 보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이야 농촌이 오히려 도시보다 더 좋은 환경이지만, 아파트 생활을 쭉 해온 나로서는 모든 것이 불편했다. 재래식 화장실, 여름에 벌레들과의 싸움, 그리고 겨울에 난방은 혹독한 고통이었다. 농촌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의 즐거움이 뇌리에 쌓이기 시작했고, 방학이 되면 고향 같은 시골로 갔다.
용인은 초기의 농촌 생활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경외감(敬畏感) 가지게 했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켜 줬다. 용인은 지대가 높아서 산이 많다. 농사 지역도 넓어서 저수지가 여러 곳에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하고 시원했다. 그곳에서 여름방학에는 낚시를 하기도 하고, 수영도 했다. 겨울방학에는 눈 덮인 산속에 있는 어덕배기에서 썰매를 타기도 했다. 그런 쌓였던 기억들로 30여 년의 회사생활을 마감하면서 용인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용인에서 소설에 입문하면서 본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잠시 펜을 놓았다. 바쁜 시간에도 가끔 펜을 잡았지만, 글이 제대로 써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와 종합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보러 갔던 날은 내 인생의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검진 결과 폐에 커다란 암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과 함께 즉시 입원하라는 암울한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간 병실에 자리가 나면 입원할 준비를 한 가방을 들고 출근하였다.
생에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으로부터 저주받은 느낌이 들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하필 내가 왜?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뭘 해야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지?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병원에서 의사와 면담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PET CT를 보니 X-ray에 있던 하얀 부분은 폐렴으로 완치가 되었는지 아무런 증상이 없이 깨끗합니다.’ 의사의 말은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해프닝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용인시청에서 조금 떨어진 주변 환경이 어릴 적 다녔던 용인의 모습과 유사한 용인 한숲시티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쓰지 못했던 글쓰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곳은 용인의 역사적 중심지인 처인성(處仁城) 바로 옆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 생활과 농촌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집 앞에 있는 논, 창문 밖으로 펼쳐진 산과 멀리 보이는 하천의 많은 새들이 한숲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준다.
아파트 단지 둘레를 산책하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흩어진 단어가 문장이 되어 기억 속에 잠재되었던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농부들의 바쁜 일손, 텃밭의 많은 사람의 움직임, 반려견들과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 어린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과 스포츠 센터를 보면서 한숲의 생동감을 볼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한숲 주민들의 광경을 보며 밤이 깊어 가면서,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른다.
많은 이야기가 한숲 일기로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 정부에서 용인 한숲시티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육성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많은 아이를 볼 수 있고, 아파트 단지에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어 미래가 밝다. 향후 10년 후면 세계적인 반도체의 중심으로 발전할 이곳에서 '한숲 일기'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