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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01. 2024

4화. 집

이별 이야기 / 콩트

  오전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면 나는 교정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산 아래 펼쳐진 수많은 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저 많은 집중에 내가 고른 집에서 살고 싶었다. 어느 날, B와 교정 뒷마당으로 갔다.

  “저 아래 보이는 많은 집중에 어느 집이 제일 마음에 드니?”

  그는 언덕 바로 아래 길가 옆에 내가 점찍어 놓은 집을 가리켰다. 

  “저 집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어?”

  “하얀 집이라서 눈에 금방 띄는데,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금방 싫증 날 것 같아.”

  나도 B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깨끗함이 싫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언젠가는 하얀 집이 깨끗해서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B가 반장이 되면서 임원들과 함께 간 야유회에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싶어.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해.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보다는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려고 해” 

  B는 비장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약한 사람들이 억압받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삶의 질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싶다.”

  친구들은 B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말들이었다. B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 ‘탄압’, ‘독재’라는 무거운 단어였다.      


  “김 상병님! 위병소에서 면회 연락이 왔습니다.”

  평일 이른 아침에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마 전 중학교 친구로부터 S 선생님이 미국에서 치료받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때문일까?

  “B가 어제저녁에 병원에서….”

  B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힘들게 한 말이었다. 잔인한 5월이었다. 얼마 전 휴가 때 만났던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걱정하지 마.”

  술에 취한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면서 눈동자가 몽롱해 보이던, B가 무심코 던진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눈동자는 무엇을 응시하며 고정되어 있었다. 예전에 그에게 볼 수 없던 불안감이 느껴졌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하자, 부대의 상황은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문에는 연일 광주사태 기사로 도배하고 있었다. 

  “오늘부로 계엄령이 선포되어 면회 및 외박을 금지한다.”

  중대장의 무거운 한 마디가 있고 난 이후, 폭동진압훈련에 주력했다. TV 시청도 할 수 없어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폭동진압 장비를 갖추고 출동 준비를 하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봄꽃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면회가 허용되면서, B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B와 같이 보았던 그 집을 장만했다. 고교 시절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 그렇게 살고 싶었던 집이네요.” 

  아내는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주말에는 정원을 가꾸며 온 정성을 쏟았다. 어릴 적 보아왔던 집이 더는 빛바랜 집으로 변하기 전에, 내 희망을 갖꾸기 위해서 더욱 멋있는 집을 만들기로 했다. 학창 시절 그렇게 꿈꾸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의 흔적들을 지우듯이 아름답던 주변의 많은 집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밖에서 집이 보이도록 높은 울타리를 걷어냈다. 그렇게 손질을 하면서 내가 오래도록 그려왔던 집으로 만들어갔다. 주변의 개발로 점점 누추해지는 집을 보면서 B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30여 년 다녔던 회사를 퇴직한 후로 요즈음 매사에 싫증이 난다. 싫증은 짜증을 동반하면서 뭔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증상일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마음이 답답해지면 나는 집 주변을 산책한다. 걸어가는 길에 B와 자주 다녔던 제과점을 보면, 그 친구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린다. 

  근처 천변을 걷다가 산 위에 보이는, B와 다니던 고등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학교 주변에 있던 집들은 세월이 흘러 아파트로 변해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못 느꼈던, 가파른 언덕길이 숨이 찼다. 교문 입구의 학교 명판도, 교문을 지나 강당 앞에 ‘교복 단정’이라는 구호가 있던 큰 거울도 그 자리 그대로였다. 거울로 비치는 40여 년이 지난 내 모습은 이제 초로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올라온 운동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 푸른 초원처럼 보였다. 교정 모퉁이를 돌아 동네 집들이 보이는 교사 뒷마당으로 갔다. 아래에 보이던 그 많은 집은 자취를 감추고 몇 개의 집만 남아 있었다. 내 시선이 머문 곳은 지금 사는 그 집이었다. 주변에 높은 빌라와 빌딩으로 둘러싸인 집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하얀 집이 눈에는 금방 띌 수 있지만, 오랫동안 보면 싫증이 날 것 같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B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감싸며 물어보는 듯했다. 

  “아직도 하얀 집이 좋으니?”. 

  나는 돌아보면서 B에게 말했다.

  “아니! 이제 하얀 집이 싫증이 나기 시작하네.” 

  가까이 보이던 B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면서, 하얀 집이 눈물 속에 가려져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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