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타르의 하얀 십자가

단편소설

by 김창수

세르비아 민병대가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은 브랑코가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을 때였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조용하던 동네는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냈다. 그는 가족들과 집 앞에 있는 도로로 끌려 나왔다. 세르비아 민병대들은 가가호호를 뒤지면서 크로아티아인들과 보스니아인들을 분리하였다. 브랑코는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길 건너 야스나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집은 이미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발코니에 있던 꽃들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산산조각이 난 화분 하나가 길에 떨어져 있었다. 세르비아 민병대들은 도망치는 주민들을 향해서 총을 쏘아댔다.

브랑코는 다음날 오전에 신원 확인 후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밤 보았던 광경들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밤을 새운 그의 가족도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지난밤에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인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가족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야스나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 무리의 민병대가 여러 명의 보스니아계 청년들을 어디론가 끌고 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떤 아이가 총소리에 놀라서 울부짖자 그 옆에 있던 어머니가 그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두움 속에서 끌려가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하늘에 떠 있던 달이 구름 사이로 들어가면서 암흑으로 바뀌었다.

날이 밝자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어젯밤에 벌어진 일들이 하나씩 들려왔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남자들과 부녀자들을 어린아이들과 함께 별도로 수용하고, 남자들 일부는 동네 뒤에 있는 훔(Hum) 산으로 끌고 가 처형시켰다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흉흉한 소문들이 돌면서 모두들 조심하며 서로 눈치들을 살폈다.

“옆집 아저씨도 어디론가 끌려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브랑코가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잘 알고 있는 동네 슈퍼 가게 아저씨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말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이번에는 이슬람계의 씨를 말린다고 하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러워요.”

브랑코는 같은 마을에서 친하게 지낸 이웃의 얼굴들을 차례차례 떠올렸다. 한 순간 그들에게 불어 닥칠 엄청난 고통을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져 왔다. 아버지가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애야! 내가 배편을 알아볼 테니 삼촌이 있는 바리로 피신할 준비를 해라.”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보스니아인들의 남자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아버지 얼굴에는 근심과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버지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웃의 보스니아인 친구들이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랑코는 가족과 함께 있겠다고 고집했지만, 아버지의 완강함을 이길 수 없었다. 가족도 상황을 봐서 크로아티아로 갈 예정이었다. 브랑코는 야스나와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가슴이 아팠지만, 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믿고 아버지 말대로 당분간 피신하기로 했다.


브랑코는 이탈리아 바리(Bari)에서 새벽 비행기를 탔다. 멀리 태양이 떠오르자 비행기 밑으로 아드리아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아드리아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파란색으로 변해갔다. 저 멀리서 아직도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알프스 산맥이 다가오고 있었다. 곧 모스타르(Mostar)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끝나자 기체가 급강하했다. 엔진 소리가 심하게 들리면서 기체가 요동쳤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이는 승무원들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통로를 따라 승객들에게 안전벨트 착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모스타르 시내가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브랑코의 가슴이 조금씩 조여 왔다. 브랑코는 트랩을 내려가면서 저 멀리 훔(Hum) 산을 바라보았다.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공항 게이트를 나와서 택시를 타고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오래된 다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와 본 도시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을 거라는 그의 확신은 곧 사라졌다. 모스타르의 구시가 중심인 브라체 페지카(Brace Fejica)의 골목길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카페와 상점들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강 너머로 보이는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Mehmed Pasha`s Mosque)도 건재하였다. 그의 시선은 스타리 모스트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고 있었다. 겨울 동안 얼어있던 알프스의 눈이 녹으면서 유량이 늘어나 유속이 빨라 보였다. 강물에 비친 푸른 하늘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그곳의 기억을 잡으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스타리 모스트를 건너 조금 지나자 모스타르의 중심대로가 나타났다. 수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잠시 신호등 밑에서 건너편 빨간불을 바라보며 화염에 덥혔던 도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길을 건너자 그가 어려서부터 다녔던 프란치스코(Francesco) 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당이 가까워지면서 그의 걸음도 빨라졌다. 크로아티아계인 부모의 영향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성당을 다녔다. 모스타르에는 같은 슬라브족이 네레트바(Neretva)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가톨릭교의 크로아티아인들이, 남쪽에는 이슬람교의 보스니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다리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였지만, 때로는 종파적 갈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 성당에서 영세를 받아 주일 미사에 참석했고, 금육과 단식을 지켰으며, 고해성사를 어김없이 받았다. 그가 지켰던 성당은 이제 전쟁으로 파괴되어 과거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본당은 복구 작업으로 인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임시 성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는 뒤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며 평화로웠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성당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예전에 살던 동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길을 오르던 그가 잠시 시선을 한 집에 멈추었다. 빨간 지붕 처마 밑으로 발코니에는 꽃들이 덮여 있었던, 그에게는 익숙한 집이었다.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허름해진 난간을 타고 빛바랜 햇살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떠들썩했던 동네가 담장의 높이만큼이나 스산해 보이면서 그 역시 낯선 이방인이 되어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아는 낯익은 이웃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집은 리모델링을 해서 이제는 옛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가족은 크로아티아로 이주한 지 오래되었다. 산에서 날아오던 새가 그녀의 집 발코니 위로 내려앉아 잠시 그곳에 머물더니, 그가 가는 방향으로 날갯짓을 치며 날아갔다. 브랑코는 빠른 걸음으로 산을 향해 그 새를 따라갔다.


브랑코가 모스타르에 온 것은 야스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5년 만이었다. 아드리아해 건너편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지낸 세월들이 그렇게 흘렀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올 거리를 그는 5년이란 시간을 돌아서 왔다. 그는 어수선했던 그 당시에 그녀에게 떠난다는 말도 못 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도망치듯이 친척이 살고 있던 이탈리아로 피신했었다. 그 후 1년간 지속되었던 그녀와 연락은 어느 순간 끊겼다.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는 날에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1년 전 바리에서 우연히 만난, 야스나에게 편지 전달을 부탁했던 그녀의 친구로부터 들은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친구 이야기 속에서 야스나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날 밤을 괴로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야스나를 처음 만났던 것은 스타리 모스트에서였다. 아침 일찍 강 건너에 있는 학교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뭔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뒤를 돌아다보니 한 여자가 헛도는 자전거 바퀴 옆에 쓰러져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누워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색의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목까지 올라오는 블라우스의 허리 부분 끝단이 조금 풀어헤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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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그는 정신없이 달려가 그녀가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말을 건넸다.

“다리가 조금 아픈데 참을 만해요.”

히잡 안으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하얀 피부에 검은 눈썹 밑으로 커다란 눈을 가진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다리 난간에 세웠다. 그녀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나서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했다.

“바쁘지 않으면 몸을 좀 추리고 가시죠?”

그는 당장에라도 그 자리를 피하려는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잠시 돌아보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갔다.

며칠이 지난날 아침, 집을 나서던 브랑코는 발걸음을 잠시 멈칫했다. 길 건너 빨간 지붕의 집에서 하얀 히잡을 쓴 여자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에 다리에서 봤던 그녀였다. 그녀가 자전거에 올라타 막 페달을 밟으려 할 때 다급하게 그가 그녀를 불렀다.

“저기 잠시만요!”

그녀는 움찔하면서 페달에서 발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급하게 길을 건너 그녀에게 달려갔다.

“혹시 얼마 전 다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지 않았나요?”

그녀는 자전거에서 내려 멈칫거리는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저번에 당황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어요. 늦었지만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아침의 햇살을 받은 그녀의 얼굴은 그때보다 더욱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 건너에 있는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신입생이었다. 크지 않은 학교였지만, 모스타르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학교였다. 그들에게는 종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변에 둘러싸인 나라들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같은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인정해주고 살고 있었다. 유고연방 해체 전까지 지역적인 종교 분쟁은 없었으나, 그들이 만났을 때는 세르비아계의 주도로 주변국들과의 종교 갈등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 국경에서 가끔씩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같은 슬라브 인종이었기에 보스니아인들은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스타르의 봄은 알프스 산맥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얼어붙은 네레트바 강이 서서히 녹으면서 강가에는 수많은 꽃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사람들이 두꺼운 겉옷을 벗어던지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브랑코는 같은 대학으로 진학한 야스나와 항상 집 근처에서 만나 대학 도서관으로 갔다. 그들의 일상은 그렇게 시작했다. 방송에서 연일 세르비아의 동향에 대해서 보도를 하고 있었다. 히잡을 쓴 그녀의 모습에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들에게는 봄 향기만큼이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있을 무렵이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처음 만났던 스타리 모스트가 보이는 강변에서 그들의 앞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는 그들의 사랑도 변함없이 그렇게 지속되리라 믿고 있었다.


야스나는 그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갑자기 집 밖에서 총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면서 총으로 무장한 세르비아 민병대가 들이닥쳤다. 각 방에서 잠을 자던 가족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로 거리로 내몰렸다.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잡고 떨면서 밖으로 그들에게 끌려 나갔다. 여기저기서 온 동네 사람들이 양 떼들처럼 어디론가 그들에게 내몰리고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근처의 학교 강당이었다. 민병대들의 눈초리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보스니아인들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강당 앞에 책상에 앉은 민병대원이 장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굵고 절도 있는 민병대원의 목소리가 강당 안으로 울려 퍼지면서 극도의 공포감이 감돌았다. 군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면서 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야스나는 며칠 전 학교에서 만났던 브랑코를 떠올렸다. 브랑코는 그녀에게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쳐들어올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타깃은 보스니아인들이니 당분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는 크로아티아인들은 가톨릭 신자들이라 세르비아 민병대가 쳐들어와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보스니아계인 야스나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고 분쟁은 종교적인 문제였다. 가톨릭과 세르비아 정교의 교리는 크게 다르지 않기에 결국 이슬람계의 보스니아인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보스니아의 정부군은 대부분 보스니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르비아의 민병대와 국경에서 교전을 벌리고 있었지만, 병력과 화력이 우세한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 정부군을 제압하고 있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 지역을 장악해 나가면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UN군이 일부 지역에 파견되어 있었지만, 세르비아 민병대의 위세에 눌려서 제대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스나의 가족은 다른 보스니아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세르비아 민병대들에 의해 밖으로의 출입을 통제받았다. 물자 공급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에 의해서 일정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보급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화도 그들의 도청으로 함부로 할 수 없는 감옥소 같은 생활이었다. 야스나는 주위의 시선과 혹시 브랑코에게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보스니아인들과 내통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으면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잡혀갈 수 있었다. 야스나는 그가 집 근처로 찾아오지 않을까 가끔씩 발코니에 앉아서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던 훔(Hum) 산은 총성이 멈추고 평온한 일상이 찾아왔다. 산에는 꽃들이 만발했고, 새들은 자유로이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답답한 마음에 보급품을 배급해주는 날에 나가려고 하면 어머니는 문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게 했다. 밖에는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굶주린 늑대들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인적이 끊기고, 회색 어둠으로 뒤덮여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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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산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며칠 동안 폭격 소리와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세르비아 민병대가 철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보스니아 정부군이 가두방송을 통해서 시민들의 안전 수칙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져서 많이 지쳐 보였다. 동네 사람들의 친절하고 상냥했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몇 개월간의 죽음의 공포와 참혹한 생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놨다. 야스나는 매일 알라에게 다섯 번의 기도를 하면서 원망도 많이 했다. 그녀는 집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브랑코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빼꼼히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궁금한 마음에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 집에 살던 분들을 잘 아시나요?”

아주머니는 옆집과 2대째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에 가족들이 크로아티아로 떠난다고 했어요. 그중에 아들은 이미 이탈리아 친척에게 보냈다고 하던데·····”

크로아티아인들은 증명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야스나는 순간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러 가지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지만. 브랑코가 말 한마디 없이 떠난 것이 몹시 서운하고 야속했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에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불안한 동거와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서 그들이 차별화되어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의 빈 집을 한참 바라보았다.

브랑코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야스나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로 갔다. 혹시 브랑코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었다. 산에 위치한 캠퍼스는 황폐해졌다. 일부 시설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사용했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어질러진 건물 내부를 직원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그들의 막사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브랑코와 공부하던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같은 과 친구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야스나! 오랜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생사를 겪고 살아 있는 친구가 반가웠다.

“보다시피 살아 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났네.”

야스나도 친구가 반가웠다.

“많이 힘들었지? 그동안 별일 없었어?”

그녀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이 더욱 선명했다. 그녀는 크로아티아인으로 야스나 보다는 힘들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녀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난다는 듯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내서 야스나에게 건네주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브랑코가 너를 만나면 꼭 전해달라고 했어.”

친구는 개봉하지 않은 편지를 야스나에게 주면서 브랑코가 이탈리아로 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야스나는 그 친구에게 브랑코의 소식과 이탈리아 주소를 물어봤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녀는 친구와 헤어지고 브랑코와 같이 자주 갔던 도서관 뒤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갔다. 편지 겉봉투에는 급하게 쓴 그녀의 이름과 함께 그 아래에는 브랑코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봉투를 열면 브랑코의 냄새가 날 것 만 같았다.


사랑하는 야스나!!


당신에게 떠난다는 말 한마디 못해서 미안해. 나 역시 갑작스럽게 떠나야 할 상황이었으니 서운하겠지만 이해해주기 바래.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믿어. 평화가 다시 찾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실행해 옮기자. 당분간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희망을 가지고 살자.


어느 날, 내게 꿈을 아느냐고 물었지.

너의 머리는 파란 하늘에 젖어 있었네.


내가 너를 사랑하냐고 물었지.

너의 눈망울에 내 모습이 보였어.


먼 길 오면서 홀로 되어 외로울 적에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지.


이제 너의 뿌리 깊어진 나의 영혼을

너에게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나는 너를 지켜줄 유일한 이웃이 되어

너의 사랑하는 창이 되어 돌아오리라.


1992. 6. 15. 당신을 사랑하는 브랑코.


보스니아군이 주둔했지만 다시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주변 산에서는 세르비아 민병대 스나이퍼(저격수)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총탄으로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때에는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주변을 살핀 후 뛰어다녔다. 가끔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전기, 연료, 상수도, 식량 보급망이 끊어져 거의 모든 것을 입수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였다.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변하였지만 그 틈을 타서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도시는 1년간 포위되어 있었으며, 그들을 보호해 줄 조직적인 군대나 경찰은 없었다. 그들의 생존 수단이란 그저 총을 가지고 자기 집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아사자와 동사자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연료가 부족해서 버려진 집들에서 구한 문, 창문틀을 뜯어서 태웠다. 아스나의 집에 있는 가구들도 전부 난방에 소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어갔다. 대부분 물이 나빠서였고, 그들은 빗물을 받아 마셨으며, 비둘기를 잡아먹었고, 심지어 쥐도 먹었다. 그 상황에서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암시장이 가동하면서 그들은 여러 가지를 바꿔 팔았다. 콘, 비프 캔 하나는 여자를 몇 시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그런 여자 대부분은 그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애 엄마들이었다. 양초, 라이터, 항생제, 연료, 배터리, 총탄과 음식 등이 거래됐으며, 그들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짐승처럼 싸웠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도시는 거리 단위의 집단으로 쪼개진 상태였고, 야스나가 살던 동네는 20여 채의 집이 있었다. 그들은 매일 밤 5명의 무장 남성으로 구성된 협동 순찰조가 돌면서 강도를 막았다. 그들은 같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무엇이든 거래했다. 그녀 동네에서 5마일 떨어진 거리까지 가는 길은 낮 동안에는 저격수 때문에 위험했기 때문에 밤 시간에만 갈 수 있었다. 그들은 물을 천장에서 빗물을 받아다 네 개의 큰 통에 저장해서 정수를 위해 끓여 먹었다. 동네 근처에 강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오염된 상태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묻기 위해서 빈 땅이라면 단 한 치라도 사용했으며, 집 가까운 곳이나 정원에도 묻었다. 도시 내의 공원 두세 개는 공동묘지로 변했다. 집을 둘러싼 벽돌 벽이 있었지만, 출입구에는 모래주머니를 쌓았으며, 그 모래주머니 너머에는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커다란 철판이나, 바위 등등을 놓았다. 집 안 창문 역시 총구를 위해서 약간의 구멍을 뚫어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틀어막았다. 가족 중 남자들은 항상 싸울 준비를 했고, 한 명은 항상 집 밖 거리의 숨은 공간에서 대기했다.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다시 도시를 장악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 1년간 숨 막히는 생활과 식량부족으로 야스나는 가족과 도시 외곽에 있는 친척 집으로 피신을 했다. 그 마을에는 20여 가구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있어서 식량 문제는 피할 수 있었지만, 외곽 지대라 세르비아 민병대에 노출이 되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어차피 죽음의 공포는 어디에서나 상존했으며, 여려 명의 가족이 같이 있으면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는 숨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유사시에는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간간이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인 남자들을 시장 같은 공개 장소에서 처형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야스나를 더욱 불안하게 한 것은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여자들만 별도로 잡아간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포의 손길이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남자들은 교대로 집 근처 산으로 올라가서 세르비아 민병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감시를 했다.

마을에 사는 크로아티아인 70대 할아버지는 세르비아 민병대에 식량을 공급하면서 그들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줬다.

“민병대원들은 세르비아인들이 살기 위해서 이슬람계 보스니아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했지.”

민병대원들은 그들을‘인종 청소’ 하지 않으면 세르비아인들은 결국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슬람교도로부터는 어떤 값진 것이든 탈취해도 좋고, 이슬람 여자들을 강간해도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강간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세르비아인이 되어, 결국은 세르비아인의 수를 늘려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인종 청소의 방법이라고 했다. 이슬람계 남자들에게 치욕감을 주고 인종을 말살한다는 목적으로 세르비아군과 민병대는 보스니아 전역에서 부녀자들을 집단 강간했다. 강간을 당한 여자들은 낙태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수용소에 감금당했다.

더위가 한창인 7월 초,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마을로 오고 있다고 저 멀리 산 위에서 감시하던 마을 청년이 다급히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양을 치고 있던 야스나가 그 소리를 듣고 마을로 달려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던 여러 명의 여자들과 함께 야스나를 데리고 은신처로 들어갔다. 그곳은 외양간 뒤에 땅을 판 후 그 위에 지푸라기 더미로 출입구를 덮고, 그 안에 양들을 집어넣어서 사육장으로 위장했다. 야스나는 은신처에서 30여 명의 여자들과 숨을 죽이고 있었다. 깊게 판 땅 위의 사육장 나무 벽 사이로 햇볕이 조금 들어왔다. 얼마 후 세르비아 민병대가 들이닥쳤는지 밖이 요란스러웠다. 갑자기 사육장으로 누군가 들어와 지푸라기 더미를 뒤지더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여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5분에 한 명씩 처형을 하겠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여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나이 많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요한 식량을 줄 테니 살려주세요.”

그의 절규는 곧바로 총소리에 덮였다. 그러고는 모여 있던 남자들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중 보스니아인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총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지더니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위에 있던 출입구 문이 열렸다. 야스나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은 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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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민병대는 여자들을 뿔뿔이 흩어 놓았다. 야스나의 어머니도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녀가 간 곳은 모스타르 근교에 있는 한 건물이었다. 음식점을 겸한 여관이었는데, 이슬람 여성들을 수용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그곳에는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방마다 꽉 차 있었고, 몇 명의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1층은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이슬람 여성들이 내려와 민병대의 통제 하에 식사를 했다. 야스나는 처음 며칠 동안 공포 속에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식사 시간 동안에는 아무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여성들의 얼굴은 겁먹은 표정으로 굳어 있었으며, 눈동자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떤 여성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민병대가 그녀를 끌고 나갔다. 야스나가 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해하는 것뿐이었다. 가끔씩 외부에서 민병대들이 다녀가면 빈방들이 생겼고, 그 방은 곧 다른 이슬람 여성들로 채워졌다. 식당에서 눈을 마주치던 여성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으면서 야스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야스나가 있는 방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세르비아 민병대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40대로 보이는 키가 크고, 얼굴이 차가워 보이는 전형적인 세르비아인이었다. 그가 잠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자, 야스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리면서 두 손으로 온몸을 감쌌다. 그는 그녀의 저항에 상관없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옆방에서 가끔씩 들리던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철망으로 막아 놓은 창문을 통해서 찐득거리는 뜨거운 바람이 들어왔다. 브랑코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지금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세르비아 민병대는 거칠게 그녀를 다루었다. 그곳은 굶주린 사자가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서 가리지 않고 육식 동물을 잡아먹는 야생의 동물원이었다.

“나는 수많은 여자를 강간한 후 죽였다. 너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죽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라.”

그의 말에 그녀는 몸이 굳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으로 들어왔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던 그가 그녀에게 며칠 후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방을 나갔다. 복도에서 그곳의 관리자가 그에게 하는 소리가 방문을 타고 들어왔다.

“여자들에 대한 처리는 알아서 해라. 다음에 와서는 일단 여관에서 끌고 나간 후엔 다시 데리고 오지 말고 반드시 죽여라.”

그 관리자는 이슬람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병사의 사기를 올리는 데 아주 좋다고 낄낄대며 웃었다. 야스나는 쓰러진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빨간 노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든 새가 창가에 잠시 머뭇거리다 사라졌다. 그녀는 집 발코니에 있던 흩어진 꽃들이 떠올랐다. 브랑코가 길 건너에서 그녀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대로 영원히 잠을 자고 싶었다. 음습한 바람이 그녀를 덮고 있었다.


야스나의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야스나가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 여성 수용소로 끌려간 후, 그곳을 탈출했다고 했다.

“야스나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왔어요.”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감정을 억제하였다. 그녀 역시 세르비아 민병대에 당했던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가 겪은 고통은 평생 치유될 수 없었다. 이곳으로 이민 온 이유도 그녀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야스나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 보였고, 불러있는 배와 굳어 있는 표정에는 그녀가 그동안 겪었던 고통이 고스란히 보였죠.”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말 못 할 심정을 야스나와 가슴을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을 것이다. 브랑코가 그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종교전쟁도 그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야스나가 다녀간 며칠 후, 그녀가 스타리 모스트에서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죠, 친구가 남긴 쪽지에 쓰여 있던 문구를 비석에 새겨주었습니다.”

흄산은 꽃단장을 하고 있었고, 네레트바 강에는 물새들이 떼 지어 놀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집에서 기다리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가끔씩 먼 곳을 응시하며 거리를 배회하는 그녀를 보면,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보살펴 주었다. 그녀는 정신이 돌아오면 만삭의 몸으로 폭격에 무너진 스타리 모스트로 갔다. 거기에는 그녀의 꿈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하루 종일 강물을 응시하면서 보내다 어둑해지는 저녁에 돌아왔다. 밤이면 그녀는 방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했다. 그녀가 감금되었던 수용소에서 탈출하던 생각이 나면, 온몸에서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쓰러졌다. 밝은 햇살에 눈을 뜨면서 악몽은 사라졌다.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브랑코가 돌아온다는 확신 때문이었다.‘나는 너를 지켜줄 유일한 이웃이 되어, 너의 사랑하는 창이 되어 돌아오리라.’ 그녀가 힘들 때마다 되새기던 말이었다. 그녀는 부서진 스타리 모스트 난간에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면 브랑코가 있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강물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그녀의 마음도 그곳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가슴이 요동치면서 환상 속으로 흘러갔다. 그곳에는 브랑코가 아이와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야스나는 순간적으로 그들을 잡으러 달려갔다. 차가운 느낌이 온몸을 덮으며 그녀의 몸이 강렬한 소용돌이로 빨려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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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는 그가 살던 동네 뒤에 있는 가파른 산을 올랐다. 예전에는 힘들이지 않고 뛰어오르던 산인데, 이제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상에 오르자 그가 그녀와 같이 다녔던 모스타르 대학의 캠퍼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숨을 가다듬은 그는 다시 옆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 길을 따라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웠다. 그 무게는 산의 높이가 아닌 마음의 깊이였다. 조금 지나자 좁은 길이 나타났고, 수많은 하얀 십자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공원묘지였다. 중앙에 큰 탑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곳곳에는 얼마 전 갖다 놓은 꽃다발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큰 원형의 세 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묘지들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야스나의 친구가 알려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원형을 지나 비스듬히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두 번째 단으로 올라서면서 잠시 발을 멈추었다. 저 멀리 그가 찾던 곳을 발견했다. 얼마 되지 않는 그 거리를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야스나 디클리치(Jasna Diklić)

1973. 4. 15 - 1995. 4. 12

당신을 스타리 모스트에서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녀를 찾았다. 그는 하얀 십자가 밑에 새겨진 비석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눈물은 그동안 그가 꾹꾹 참아왔던 지난 세월의 응어리였다. 그는 지금 그녀 앞에서 엎드려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녀로부터 그를 갈라놓은 것은 인간들이 파 놓은 무덤이었다. 죽고 죽이는 전쟁 속에 남는 것은 결국 그들의 상처뿐이었다. 뿌리 깊은 무의미한 전쟁은 그들의 사랑을 송두리째 뺐어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녀의 영혼뿐이었다. 그녀를 그리워했던 것은 종교도 인종도 아닌 오로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브랑코는 그녀가 그를 애타게 부르고 있을 스타리 모스트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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