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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22. 2024

7화. 십자가

이별 이야기 / 콩트

  빈에서 사라예보를 가는 비행기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곳은 새벽에 안개가 많이 끼고, 알프스산맥에서 급강하해서 착륙하는 지역이라 회항(回航)률이 높았다. 승객들은 착륙을 위해서 안전띠를 꽉 조여 매고 눈을 감고 있었다. 기내에는 적막감과 공포감이 느껴졌다. 랜딩기어가 지상과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은 이제 지옥에서 천국에 도착했습니다.”

 기장의 안내방송과 함께 기내에서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사라예보를 방문한 것은 보스니아 내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니아의 경제부총리가 한국을 방문해서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지원을 요청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는 다급함과 함께 절실함이 가득 찬 모습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많은 희생자와 함께 아름다웠던 나라를 황폐하게 했다.      

  3년간의 내전은 사라예보를 수동적인 중세도시로 만들어 놨다. 승객을 맞이하는 공항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배웅 나온 정부 직원이 제일 먼저 한 말은 여기서 절대 웃지 말라(never smile)는 것이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그 직원의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이 내린 것처럼 수많은 하얀 십자가들이 끝없는 들판을 덮고 있었다. 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시커먼 연기로 얼룩져 있었고, 반 조각이 났거나 지붕이 없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내가 묵은 가장 좋은 호텔은 위층이 부서졌고, UN군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호텔 체크인 후, 경제기획부로 방문할 예정입니다.”

  정부 직원은 서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무표정한 모습이 지난 3년간 전쟁으로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제기획부로 가면서 시내에는 보스니아 내전 중에 참혹한 모습들 연상케 하는 많은 파편이 보였다. 부서진 건물 벽에는 총탄 자국들이 즐비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빨간색으로 혈흔을 상징하는 ‘사라예보의 로즈’라고 합니다.”

  정부 직원의 말에 그 당시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었다. 

  한국을 방문했던 부총리가 반갑게 맞이하며, 복구사업을 담당할 직원들을 소개했다. 현장 실사를 위해서 동행할 여직원인 E가 공장 현황과 일정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줬다. 많은 다리가 파괴되어서 길이 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짧은 일정 동안 많은 현장을 다녀야 했기에,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강행군을 했다. 일부 지역은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 도시 자체가 조용했다. 다리를 통과할 때마다, UN군이 정부 차량 패스를 보고 통과시켜 줬다. 


  통역 담당으로 동행한 E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녀는 전쟁이 나자, 해외에서 공부하다 사라예보로 돌아와 가족과 고통스러운 3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경찰로 근무하다, 세르비아군이 점령 시 처형당했고, 어머니는 2년 전 세르비아 저격수(sniper)의 총에 맞아 지금도 의식불명 상태라고 했다. 그들의 만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거나 해외로 떠나서 인구의 절반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E의 걱정은 인력 부족으로 전후 복구사업 지연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파괴된 사회적 간접자본의 복구라고 했다. E는 겉으로는 강인해 보였지만, 가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 내가 군대 있을 때 죽은 친구 B가 생각났다. 나라 걱정하며,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던 친구의 심정이 E와 같았을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전쟁 상황은 죽음의 도시 그 자체였다. 하얀 눈으로 덮인 주변 산에서는 세르비아군 스나이퍼(저격수)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총탄으로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때에는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주변을 살핀 후 뛰어다녔다. 가끔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밤이면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변했고, 그 틈을 타서 많은 사람이 조심스럽게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어머니가 이모 댁에 식량을 구하려고 가다가 총을 맞았습니다. “

  E가 어머니를 구해서 병원으로 갔지만, 의료진과 약품 부족으로 여태껏 의식불명 상태라고 했다. 그들은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 짐승처럼 싸웠고, 대부분 사람이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연료가 부족해서 버려진 집들에서 구한 문, 창문틀을 뜯어서 태웠고, 물을 천장에서 빗물을 받아다 큰 통에 저장해서 정수를 위해 끓여 먹었다. 아사자(餓死者)와 동사자(凍死者)들이 나왔지만, 그들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처형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간신히 집 옆에 있는 동산에 묻었습니다. “

  E가 해외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E의 안내로 사라예보 시내를 돌아보았다. 도시 중심가에는 100여 년간 무슬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터어키인, 유태인들, 또 다른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흔적으로 다양한 건축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이슬람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유고 내전의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무슬림들의 영혼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그곳에서 손과 발, 얼굴을 닦고 들어가서 묵상(黙想)을 했다.  

  며칠간 전국의 주요 시설을 돌아보면서, 그녀가 했던 말들이 하나씩 떠올렸다. 

  ”가족을 갈라놓은 것은 인간들이 파 놓은 무덤이었고, 죽고 죽이는 전쟁 속에 남는 것은 결국 상처뿐이었습니다. “

  뿌리 깊은 무의미한 전쟁은 그들의 나라를 송두리째 빼서 갔고, 남은 것은 수많은 하얀 십자가들의 영혼이었다. 그녀의 눈물이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E와의 이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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