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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29. 2024

8화. 베일

이별 이야기 / 콩트

  지중해의 역사를 간직한 섬의 나라, 몰타 여행은 B 수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여행 준비는 항상 즐겁지만, 지난 며칠 동안 착잡한 마음이 더 컸다. 처음 가는 여행지의 설렘보다는 그녀가 마지막 안식년을 고향인 발레타(Valletta)에서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B 수녀에게 내 여름휴가로 몰타 방문을 제안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B 수녀와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텔아비브에서 카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B 수녀를 처음 만났다. 

  “창가 좌석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기내에서 통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내 옆으로 누군가 와서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옆에서 본 얼굴 모습은 수녀복을 입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연상케 했다.

  “수녀님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창가에서 밖의 풍경만 보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살포시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로 대신했다. B 수녀와 헤어지면서 내 명함을 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면서 헤어졌다.      


  B 수녀는 40여 년 동안 여러 나라의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했고, 지금은 이집트 오지마을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B 수녀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학교를 일주일간 여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지요?’라는 부탁이었다. 거기에는 자세한 내역서가 첨부되었다. 

  나는 그녀가 알려준 대로 집 근처 수도원을 방문해서 주임 신부에게 요청한 비용을 전달했다. 얼마 후, 그녀로부터 잘 받았다는 감사의 메일에는 ‘당신과 가족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번 메일에서 B 수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언급에 기도를 부탁했었다.      


  한여름이라 발레타의 바람은 뜨거웠다. 리조트 로비의 온도계는 38도를 찍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수영복 차림으로 풀장으로 내려갔다. 파란 하늘과 물이 어우러져 대형 풀장은 작은 지중해로 변해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주문하고, 풀 속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오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있었다.

  “수녀님! 잘 도착했습니다.”

  그녀에게 전화하자, 반가운 목소리로 벌써 손수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리조트는 그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호텔로 왔을 때, 처음에는 평복을 입은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골목길 풍경이었다. 골목길은 바다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노을이 지면서 바다는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B 수녀의 가족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가 손수 준비한 이탈리아 가정식 백반이 식탁에 가득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마늘을 많이 사용해서인지, 한국 음식과 그 맛의 느낌이 비슷했다.

  “수녀님 사진에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식사 후, 집에 걸린 사진을 보면서 한 말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테레사 수녀와 찍은 사진도 보였다. 사진 속 B 수녀의 앳된 모습이 그녀의 살아온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보면서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는지 가끔 눈을 감기도 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녀 생활이 생각났을 것이다.      


  “수녀님이 쓴 저 하얀 베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수녀가 쓴 베일이 궁금했다. B 수녀는 잠시 사진 속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 수도자들에게 베일(하얀 머릿수건)은 세속과 인연을 끊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투신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거죠. “

  베일이 여인이 보여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수녀가 된 이유를 이야기해 줬다.

  ”나는 처음부터 수녀가 될 생각은 없었죠. “

  B 수녀가 사귀던 남자 친구로부터 신부의 길로 가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서,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의 말을 좇아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많은 방황을 했으나, 40여 년을 오직 한 길만을 보고 꾸준히 걸어왔다는 그녀의 모습에는 여한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B 수녀의 안내로 몰타 여행을 했다.

   ”이곳은 몰타, 고조, 코미노 등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그녀가 태어나서 자라 온 곳이었다. 섬마다 약간의 문화적 특색이 있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건물 양식과 지중해의 음식들이 40만 명도 안 되는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혹했다.

  사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인 해안가에는 수많은 집들이 해변을 따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시내 관광여행은 영국식 빨간 이층 버스가 운행되었고, 섬은 페리가 연결해 줬다. 지중해의 낙원 몰타의 하루는 푸른 바다와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섬이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와 저녁에 같이 간 곳은 발레타에 있는 대통령궁이었다. 1년에 한 번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모여 콘서트를 열었다. 화려하지 않은 궁은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클래식을 통해서 한마음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B 수녀가 입은 평상복이 환속하게 될 세상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대통령궁의 우아한 조명과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첼로와 피아노의 협연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하얀 베일을 쓴 사진 속의 B 수녀를 본 마지막 밤이었다. 그날 밤, 나는 B 수녀와 사라예보에서 만났던 E와는 또 다른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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