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 콩트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어제 늦게 들어와 잠에 빠진 나를 새벽에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가 깨웠다. 목욕하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임신복을 입고,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늦게 결혼한 내게 축복의 시간이 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옷을 입고, 아내를 조심히 부축해서 차에 앉혔다. 아직 새벽이라 밖은 어두웠다.
차는 브레이크 없이 달렸지만, 새벽 신호등은 왜 이리 빨리 바뀌는지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핸들을 잡은 손에는 땀이 흘러 미끄러질까 봐 꽉 잡았다. 옆에 긴장한 아내는 무슨 생각하는지, 조용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아내를 데리고 병동으로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정신없이 기다렸으나, 진통이 오래갈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정신없이 병원으로 온 장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회사에 출근했다.
"진통이 시작되었으니 빨리 오게. “
장모의 다급한 전화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내 인생의 환희이자, 아내에게는 평생의 한(恨)을 품게 한 날이었다. 아내는 오랜 진통으로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옆에 같이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이 나를 닮았는지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이 날카로워 보였다.
”고생 많이 했어. “
나는 웃는 얼굴로 아내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했다. 그녀는 얼굴을 돌리며, 훌쩍거렸다. 아이가 태어난 날에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장남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좋아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러웠을까? 그때는 아버지가 된다는 뿌듯함에 아내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
회사에서 해외 근무 발령으로 현지 사정상 가족과 동반하지 못했다. 한창 예쁜 모습으로 성장하는 첫 아이, R은 아내가 가끔 보내주는 사진으로 대신했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의 어려움보다는 R의 얼굴이 더 아른거렸다.
”아빠! ‘언제 와? “
가끔 통화를 하면, R의 또렷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휴가를 얻어 집에 갔을 때 R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던 R이 내게 다가오지 않고, 주위에서 맴맴 돌았다. 오랜만에 본 내가 어색해서일까? 딸과 나의 거리는 헤어진 시간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앉아줄까? “
R은 조금씩 내게로 다가왔다. 살포시 잡아준 딸아이의 손은 따뜻했다.
다른 해외 지사로 발령을 받아 젖을 뗀, 둘째를 데리고 가족이 같이 현지로 갔다. R은 어느덧, 유아원을 갈 나이가 되었다. 현지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던 날, R이 이제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첫 교육을 영어로 시작하는 R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으나, 친구들과 사귀며 재미있게 다녔다.
”유아원 아이들과 잘 지내니? “
부모 품에서 벗어난 R은 처음에 낯설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워했다. 아내도 둘째로 정신없었지만, 학교에서 내준 과제물을 열심히 챙겨줬다. 학교 '오프닝데이‘에 가서 궁금했던 사항을 선생님과 의논하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에 안심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한 반에서 어울리며, 선생님이 그들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육하는 모습에 걱정이 사라졌다.
“아빠! 나 외국으로 유학 보내줄 수 있어?”
아이들이 외국에서 학교를 오래 다니다 보니 정체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회사의 반대도 있었으나, 아이들을 한국 교육의 고아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해외 유학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시대의 조류를 역행한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보! 애가 광화문에 간다는데 좀 말려봐요.”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 관련 문제로 시위를 한다는 뉴스를 봤을 때, 많은 실망을 했다. 오죽하면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거리로 나가겠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정부의 교육 행정과 사교육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래. 유학 보내줄 테니, 대신 1년 내 적응 못 하면 다시 돌아와라.”
“조금 힘들지만, 아버지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R의 전화 목소리는 밝다 못해 대견스러웠다. R은 현지 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춰서 여러 방면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조용하게 한발 한발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원하는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동안 R의 말 없는 고생 때문인지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면 어때?”
R이 졸업을 앞두고 혹시 그곳에 계속 있을 것 같아 한국 회사의 인턴 과정을 소개해주었다. 내가 해외에 주재하고 있어, 그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인턴십 결과 리포트를 보니 만족스러웠다. R이 졸업 후 한국 회사 근무 결정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현지에서 취직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얼마 전에 취직했어요. 첫 월급 타면 아버지 선물 뭐 사줄까요?”
R의 전화를 받고, 축하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애와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서로 멀리서 떨어져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겠지.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 R에게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도 곧 듣겠지. 그리고 결혼 이야기도 나올 것이고·····
R이 곧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고 만감이 교차했다. R이 결혼하면 전해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그녀가 유아원 다닐 때 수녀원에 놀러 가 하얀 옷을 입은 수녀들에게 둘러싸여서 찍은 사진을 봤다. 지금은 은퇴해서 고향인 발레타에서 살고 있을 B 수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R과의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 속의 딸아이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수많은 추억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