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남들은 나를 빛바랜 솔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 말을 부정한다. 거리에는 많은 남녀들이 정다운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하면서 손을 잡으며 애정을 과시하거나, 남자의 손이 여자의 허리를 감싼 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각자의 생각들이 정신없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먼 미래에 펼쳐질 그들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지금 당장의 타오르는 그들의 심장을 식혀줄 수 있는 행위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생각도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일 것이며, 만약 서로의 생각들이 맞아떨어진다면 즉각적인 반응과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기대도 나에게는 다가오지도 않았고, 무의미하였다. 내가 아직 솔로로 남아있는 것은 먼 미래의 행복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일시적이며, 탐욕적인 감정을 추구하려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다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남들은 빛바랬다고 하지만 솔직히 아직 내 인생에서 그러한 빛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빛바랜 솔로는 아니다.
그녀와 첫 만남은 조카 녀석 때문이었다. 어느 주말에 갑자기 작은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가족이 연휴로 며칠간 일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카 녀석이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간다고 떼를 쓰던 중, 외삼촌에게 맡기고 가자는 제안을 조카 녀석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집안에서 혼자 빈둥거리며 살고 있는 내가 심심할 거라는 생각이 문뜩 든 작은 누나의 주관적인 판단과 심각한 고민 끝에 내 얼굴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로 바뀐 조카 녀석이 빚어낸 그들만의 호흡이 맞은 앙상블이었다. 어느 날 작은누나가 조카 녀석 어릴 적, 많은 짐을 든 채로 아이를 등에 업고 집에 나타나던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서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 많은 짐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커다란 짐 몇 개와 개를 넣은 가방 안에 들은 그녀를 보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까칠한 모습과 째려보는 눈빛이 다른 개와 달라 보였다. 며칠간의 예상되는 악몽이 벌써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두 여자가 의기양양하게 손을 흔들며 수고해달라는 말과 함께 아파트 문을 열고, 신나 보이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그녀는 나를 보며 짖기 시작했다. 주인과의 갑작스럽지만 예상을 했을 단절과 함께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혹시 경비실에서 연락이 올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누나 가족이 일본에서 멋있게 보낼 때쯤, 내가 겪은 연휴는 그들의 즐거움과는 정반대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가끔씩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금방 현실 속에 묻혔다. 알토란 같은 연휴를 그녀와 뒹굴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주인이 아닌 나에게 경계를 하면서 다가서기를 두려워하던 그녀였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영역을 하나씩 확인할 때마다 나는 쫓아다니며 그녀의 흔적을 없앴다. 그녀는 그 짓을 내가 거의 포기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누나가 알려준 그녀의 식성은 나의 레시피를 비난하는 듯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음식을 거의 먹지를 않았다. 흩어진 음식을 주워 담으며, 그녀를 원망도 하고 때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의 인내심이 그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혹시 누나가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몰골을 보고 나를 비난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여름도 아닌데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꼬리 흔들기는 얼마 가지 않아 시작이 되었다. 자다가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아파트 사람들을 즉시 기상시킬 수 있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살아오는 동안 옆에서 누구랑 자본 기억은 어머니가 나를 젖 떼어낼 때까지 라고 추측할 뿐이다. 옆에 온기(溫氣)와 함께 물컹한 물체를 접했을 때 그 느낌은 군대 유격훈련에서 절벽으로 하강하던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몽롱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내가 베풀어 주었던 서툴지만 진지한 보살핌이 그녀에게 깊이 전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여자가 사라졌던 문을 다시 열고, 일본 냄새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내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내가 솔로로 살아가면서 처음 느낀 그런 눈물이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던, 어딘가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홀연히 나타난 감정처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을 쓰라리게 했었다. 그 며칠간이 나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놨던 그녀가 갓 6개월이 지난 새끼였을 때였다.
그녀와 헤어진 후 가끔씩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도 느꼈고, 작은 누나 집에 가서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정신없이 보냈던 그녀와 며칠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을 때쯤, 작은 누나의 목소리가 핸드폰으로 전달이 되었다.
“시간이 되면 집으로 한번 놀러 와라.”
작은 누나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는 부드러웠으나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혼자 있는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무슨 일 있어?”
작은 누나는 집에 와서 이야기 하자는 말로 나의 궁금증을 끊어 버렸다. 분명히 작은 누나가 나에게 뭔가를 부탁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여러 번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구걸하다시피 부탁을 했고, 그때마다 나는 여린 마음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작은 누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었다. 그것은 가족의 믿음과 노총각이 혼자 산다는 측은함이었을 것이다. 작은 누나가 여러 번 소개해준 여자들이 번번이 퇴짜를 놓을 때에도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로 위로해주던 그녀였다. 나는 작은 누나를 의지했고, 항상 가족의 소중함을 그녀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며칠 후 작은 누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다른 방에 있다가 나에게로 달려오는 그녀를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그녀가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서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는 제스처를 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자식과 해후(邂逅)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같이 했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녀는 나를 또렷하게 기억을 했고, 짖는 소리가 우렁차기도 했지만 ‘왜 지금 왔어?’라는 애절함도 느껴졌다. 내 주위를 뱅뱅 돌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들어 올리면서 꼭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가슴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내가 보자고 한 것은 매형이 해외로 발령이 나서 가족이 같이 가게 되었어...”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매형은 몇 년 전에도 해외 주재를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발령이 나서 정신이 없구나.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현지 학사일정에 맞추려면 곧 들어가야 하는데 저 놈이 문제네.”
작은 누나는 그녀를 가리키며, 조카가 데려가고 싶다고 하지만 현지 사정이 어떨지 몰라서 한국에 놔두고 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내가 개를 키워본 경험도 없고, 회사 일로 늦게 퇴근도 하고 출장도 다녀서 어려울 것 같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작은누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하는 순간, 내 가슴에 안겨 있던 그녀가 다시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다른 곳에 알아볼게.”
작은 누나는 내 말에 미안했던지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을 돌렸다. 그녀는 우리 대화를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고, 혀로 내 얼굴을 핥으며 내 마음으로 다가왔다. 순간 작은누나와 나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아냐! 내가 데려갈게. 며칠만 시간을 줘.”
나도 모르게 작은 누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꼬리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와의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하나’로 부르게 된 것은 나와 하나가 된 것처럼 항상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이다.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 이후, 애인 만날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시계만 들여다보듯이 눈과 시선을 시계에 고정하고, 창가에 앉아 있는 부장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사무실에서 빠져나온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생각하던 동료들도 어느덧 내게 여자가 생겼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부장과 저녁 술 파트너로 굳어져 있는 나를 부러워하던 그들은 그 자리를 탐내기까지 했었다. 아침에 들려오던 부장의 기분 좋은 목소리는 사무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대신 짜증을 내는 부장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동료들은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그녀를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가끔씩 부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 그 시선을 공중에 날리며 빨리 집으로 갈 생각에만 몰두했다. 어느새 나는 퇴근 시간을 지키라는 회사의 지시를 순종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모범사원이 되어 있었다.
그녀와 산책을 하는 것이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어간다. 산책시간이 되면 그녀는 재촉이라도 하듯이 문 앞에서 나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문을 박박 긁으며 ‘끙끙’ 대기도 했다. 하나는 귀여운 얼굴에 짧지만 곧게 뻗은 단단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산책을 할 때면 하나는 곧게 뻗은 다리를 뽐내듯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자신만만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나는 하나의 다리가 내 심벌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녀의 뒤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감에 도도함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걸을 때 짧은 꼬리의 강렬함은 내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자극으로 다가와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는 하나에게 항상 무한한 존경을 표하였다.
하나는 입가에 덥수룩하게 난 털 때문에 독일어로 수염이라는 뜻의 ‘슈나우저’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는 라틴어로 ‘땅을 파다’라는 뜻을 가진 테리어 종이다. 그녀는 이름처럼 항상 내 침대를 어슬렁거리며, 낮에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 땅굴을 파듯 발로 바닥을 긁어 자리를 만든 다음 오수를 즐긴다. 그곳은 내가 없을 때 그녀의 안식처로 사용한다. 그녀는 슈나우저답게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녀가 집안을 돌아다닐 때는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해서 내 주인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녀는 장난치기를 좋아해서 주말에 늦잠을 자는 나에게 다가와 코를 들이대며 나를 깨웠다. 집에 온 방문객이나 산책하다 다른 동물을 보면, 사냥개의 본능을 여지없이 드러내 사납게 짖어대며 상대방을 제압하기도 한다. 하나는 털이 잘 빠지지 않는 편이라 특별히 털 관리를 할 필요는 없었으나 나는 그녀의 미용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등을 짧게 밀고 얼굴과 가슴에 난 털은 조금 길러주고, 털이 긴 부분은 뭉치지 않도록 항상 빗질을 해준다. 산책 후에는 반드시 목욕을 시켜 청결하게 해 주면, 그녀는 그런 내게 보답이라도 하듯 짧은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준다.
오늘도 산책을 나온 우리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집 주변을 한 시간 정도 돌고 있는 중이다. 산책로 주변에는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하나는 이 꽃, 저 꽃, 향기를 맡는 일에 정신을 팔기도 하고, 그곳에 주저앉아서 나랑 같이 놀다 가자고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애교에 언제나 약했다. 그녀를 데리고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으로 가면 그곳에는 벤치가 있다. 나무가 많아 그늘져 있어 태양이 강하게 내리쬘 때면 최적의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내가 벤치에 앉아 있으면 하나는 주변에서 코를 끙끙거리고, 냄새를 맡으면서 짧은 꼬리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나는 하나의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묘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하나의 꼬리가 발정 난 남자의 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몸을 움직일 때면 꼬리는 더 강하게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내 기분은 몽롱해지기조차 했다. 꼬리를 흔들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며칠 전 일이 문뜩 떠올랐다.
회사에서 하나 생각을 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선배님! 내일 어때요?”
상윤이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좋은 일 있어?”
회원에게 날자 통보와 함께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와 상윤은 회사 내에 있는 ‘싱글 클럽’의 멤버였다. 그와 벌써 호흡을 맞춘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멤버 가입의 최우선 조건은 애인이 없어야 한다. 회원들의 엄격한 심사는 첫사랑부터 시작이 된다. 첫사랑이 일방적이라면 문제가 없었으나 양방향이라면 부연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애인이 생기면 그날로 자동 탈퇴였다. 재가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순종의 솔로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모임이 있는 날 시간을 지키는 일도 반드시 준수해야 할 중요한 규칙이었다. 해외출장 중이거나 회원들이 인정할 만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참석을 해야 한다. 싱글 클럽 멤버들은 회원의 자격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규칙은 물론이고, 그날의 모임에서 일어 난 일들에 대해서 정신적인 순결을 지켜야만 한다. 이 싱글 클럽은 누가 콜을 하던 항상 의결정족수를 넘어섰다. 그 숫자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생리적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수컷들의 열망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원 수는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클럽에 대한 애정과 솔로의 순수성은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싱글클럽 회장을 맡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전임 회장이 애인이 생기면서 나의 순결함을 인정하면서 회장에 추대되었고,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맡게 된 싱글클럽이다.
오늘은 새 멤버의 환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싱글 클럽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탈퇴를 막기 위해 그동안 여러 번 거사(巨事)를 치르기도 했다. 오늘 모임은 지난 2년 동안 모임을 끌어온 막내 상윤이가 주선을 했다. 멤버들은 항상 처음에는 그랬듯이 오늘 지상 최대의 이벤트를 보게 될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들떠 있었다. 1차로 간 곳은 저녁식사 자리였다. 그 자리는 워밍업에 불과한 것으로 전의(戰意)를 다지며, 오늘의 전투에서 각자가 맡은 파트너와 최선을 다해서 일전을 벌리자는 자리였다. 술이 몇 순배(巡杯)가 돌아갔지만 회원들의 정신은 여전히 또렷했다.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건배를 하면서 ‘싱글클럽! 파이팅!’을 외쳤고, 상윤이의 제안으로 ‘이대로! 영원히!’라는 구호를 합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싱글클럽의 최종 목적은 싱글 탈출이었다. 그동안 많은 선배 회원들이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회원들은 그들의 목표가 가정 안착(安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배님! 오늘을 위해서 제가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상윤이가 큰소리를 쳤다. 싱글 클럽 멤버들은 의기양양한 상윤의 모습을 보면서 기대를 잔뜩 안고 기대를 한 아름 가슴에 품으며 격전지(激戰地)로 향했다.
상윤이가 안내한 곳은 강남 중심에 있는 주택가 입구였다. 그곳에는 상윤이가 미리 연락해 놓은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첩보작전하듯 수신호에 따라 그 차를 타고, 어두컴컴한 좁은 길을 따라 일반 주택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2층 양옥인 그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이었으나 내부는 요정과 같은 술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그동안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와는 사뭇 달랐다. 전투의 방법도 달라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상윤아! 오늘 느낌이 영 다르네.”
나는 새로운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제가 신입 멤버를 위해서 신경 좀 썼습니다. 다음 모임에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려면 부담스러울 겁니다.”
상윤이는 오늘 이벤트에 성공을 확신한 듯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상윤이가 그곳 종업원과 이야기를 한 후, 우리들을 2층으로 안내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커다란 응접실과 방이 몇 개 있어 보이는 전형적인 가정집 구조였다. 우리 모두 사주경계를 하며 응접실로 올라가자 그곳에는 양주와 안주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국적(異國)인 여자들이 싱글 클럽 멤버 숫자에 맞춰서 앉아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오기를 한참 기다렸던 듯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우리가 나타나자 눈웃음을 치며 반겼다. 여자들은 영어가 서툴었으나 상윤이의 부드러운 영어로 단숨에 압도당했다. 여자들은 하얀 피부의 순박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다녔던 술집에서 보았던 닳고 닳은 그런 여자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디에서 왔어요?”
상윤이가 옆에 앉아 있는 파트너에게 물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습니다.”
젊고 상큼해 보이는 상윤이 파트너가 또렷하게 대답을 했다. 그녀의 영어는 투박한 러시아어 억양이 담겨 있었다. 싱글 클럽의 멤버들 대부분이 해외영업을 하는 회원들이었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외국 여자들과 거리감이 없어서인지 부담감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술잔이 오고 가는 동안 여자들의 행동은 솔로 클럽 멤버들과 자유스러워졌다.
오늘 새로 가입한 신입회원을 위해서 싱글 클럽 멤버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내공을 발휘하였다. 멤버들은 그를 싱글 클럽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파트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신입회원도 어느덧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면서 그녀들도 이국(異國)에서의 긴장감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내 파트너는 파란 눈을 가진 블론드로 전형적인 슬라브족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사 월급이 많지 않아 돈 벌로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러시아에서는 의사, 변호사, 교수 등 한국에서 인정받는 직업이 기술자보다 대우를 못 받는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하얀 피부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 주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면서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멤버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자기 파트너를 데리고 방으로 하나씩 사라졌다. 나도 파트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달아 오른 몸을 식히려는 듯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파트너의 파란 눈이 감기면서 거친 숨결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단정했던 블론드가 흐트러지면서 그녀의 손이 어느새 내게로 다가왔다.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인 동작으로 인해 조금씩 가빠져오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끝없는 시베리아 벌판을 연기 뿜고 달리는 기차가 되어가고 있었다.
"킁, 킁, 킁..."
내가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동안 하나가 심심했던지 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항상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자고 할 때 그랬듯이 짧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하나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개천까지 왔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행동이 더 활달해졌다. 무엇인가 발견을 한 것이다. 맞은편에서 하나와 친하게 지내는 ‘달마시안’ 친구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오작교처럼 하나와 달마시안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달마시안도 하나처럼 운동량이 많은지 자주 산책을 했다. 나는 하나와 달마시안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 산책을 나왔다. 다시 만난 하나와 달마시안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난을 쳤다. 둘이 만나면 누가 수컷이고 암컷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애교를 피우면서 귀여운 짓을 다양하게 했다. 서로 핥아 주기도 하고, 냄새를 맡으면서 서로의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달마시안은 하나의 곁에 다른 개들이 접근하면 마구 덤벼들어 사악한 무리들을 쫓아버렸다. 그럴 때는 달마시안의 표정이 어찌나 사나운지 주위 사람들이 혼비백산할 정도였다. 그들의 애정을 깨트리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달마시안과 그 주인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산책을 나왔을 때 달마시안이 하나에게 갑자기 달려든 것이 시작이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에는 개 끈을 꼭 잡고 다니는 것이 예의죠! “
나는 따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놀래서 한 말이었는데 달마시안 주인은 많이 무안했던 것 같았다.
“제가 끈을 놓친 것은 실수였지만 개들도 감정이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달마시안 주인은 당황한 듯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달마시안의 주인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나와 달마시안 주인은 여러 번 그곳에서 부딪혔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나를 외면했다. 달마시안 주인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표정이 근엄해 보이기는 했으나 노처녀의 히스테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복장은 주로 하얀 짧은 바지에 검은 티셔츠였다. 멀리서 그녀가 달마시안을 데리고 올 때에는 누가 주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나와 달마시안과는 달리 주인들은 몇 번 눈인사는 했지만 말없이 항상 끈을 꼭 잡은 채로 다른 곳을 보거나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달마시안 주인이 나와 말을 트기 시작한 것은 달마시안이 하나와 본격적으로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나는 산책을 할 때 딸을 단속하는 매서운 아버지가 되어 하나를 끈으로 단단히 묶고 다녔다. 내가 ‘개들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달마시안 주인의 말을 들은 후부터는 달마시안을 만날 때면 종종 줄을 풀어주었다. 가끔은 달마시안을 만나도 하나를 풀어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달마시안 주인이 내게 다가와 움켜쥐고 있는 끈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끈을 그녀의 손에 넌지시 넘겨주었다.
이제는 상황이 여전히 되어 하나와 달마시안이 우리를 데리고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달마시안 주인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부장의 시선은 이제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바람난 개가 집을 나가듯 보고 있었다. 하나도 내가 산책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가 만나는 곳은 어김없는 그 벤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져온 과일과 음료를 펼쳐 놓고 기다렸다. 달마시안 주인도 학교 수업을 끝내고, 학생이 학교 종소리와 함께 가방을 들고 운동장을 달여 나오듯 이곳으로 왔다. 그녀는 첫인상과 달리 순수하였다. 내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얼마 전 돌아가시고 외로움에 달마시안을 분양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이제는 자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가슴에 뭉쳐 있던 응어리 같은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뻔했다. 아마도 솔로들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아직 내 인생에서 원하는 빛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 빛바랜 솔로는 아니다.’라는 말을 잊기로 했다.
오늘도 하나를 보고 어김없이 달마시안이 달려왔다. 요즘 하나는 발정기였기 때문에 나는 끈을 풀어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하나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달마티안 주인은 나의 완고한 뿌리침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서 하나를 묶고 있는 줄을 빼앗다시피 낚아채 버렸다.
“애들을 풀어주고 우리도 같이 따라가죠. 어때요?”
달마시안 주인은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나의 줄을 풀어버렸다. 하나와 달마시안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벤치가 있는 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나와 달마시안 주인도 벤치가 있는 쪽으로 그들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우리가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벤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달마시안은 하나를 기다란 혀로 얼굴을 핥아주고 있었다. 하나도 내가 뒤에서 보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 짧은 꼬리를 달마시안을 항해 정신없이 흔들어 댔다. 그때 달마시안이 하나 등 뒤로 올라탔다. 너무 순간적이라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달마시안 주인은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들의 행위는 내가 겪었던 어떤 경험보다 더 가슴을 뛰게 했다. 하나와 그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쌓아 왔던 애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다. 내가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하나가 이제 솔로를 탈출하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달마시안 주인은 벤치에 앉아 그들의 격정적인 행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나와 달마시안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달마시안 주인도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얼마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다. 그 따뜻함은 어머니가 나를 젖 떼어낸 이후 처음이라 추측할 뿐이다.
"우리 정식으로 사귈래요? 하나도 내 자식처럼 키워볼게요."
달마시안 주인이 귀엣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마음에 보답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나를 평상시보다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목욕시켰다. 그녀가 오늘 평생 잊지 못할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샴푸를 풀어 하나의 몸을 문지르면서 나는 내일 출근하면 싱글 클럽 회장직을 사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달마시안을 내 자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