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집

단편소설

by 김창수

30여 년 다녔던 회사를 퇴직한 후로 요즈음 매사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싫증은 짜증을 동반하면서 뭔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증상일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마음이 답답해지면 나는 집 근처 천변을 산책한다. 걸어가는 길에 제과점을 보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린다.

학창 시절 친구 승렬과 함께 대학로에 있는 가톨릭 회관에서 선배들과 토론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배들이 당분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신신당부를 한 뒤로부터 생긴 일이었다. 신문에는 연일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하여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집단행동을 일절 금지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정부에서 긴급조치 제4호 위반자 180명을 구속, 기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정부 발표는 그들이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국적 민중봉기를 획책하였으며,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하였다는 혐의라고 하였다. 소위 ‘전국 민주화 청년학생 총 연맹(민청학련) 사건의 개요였다. 지난해 말부터 반독재 반체제 운동으로 이어졌다. 전국 대학교와 고등학교로 파급 확대되면서 긴급조치 1.2호를 공포한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독서클럽에 참여했던 대학 선배가 180여 명 구속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모임은 해체되었다. 승렬과 나는 사태를 관망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1년 후 구속자들은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독서클럽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생활에 전념하면서 강원도 바닷가에서 말했던 미래를 향한 포부를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나가고 있었다.


오전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면 나는 교정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나는 말없이 교실 뒷문을 열고 나왔다. 오전 수업의 해방감에 들뜬 친구들의 아우성은 교사를 뒤덮고 있었다.

3월 초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들어섰던 교정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삭막한 분위기였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물은 교사밖에 없었다. 고도(孤島)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빨간 벽돌의 교사 몇 동만이 그 산을 지키는 유일한 건물들이었다. 운동장은 하얀 손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교정 뒷마당에서 산 아래로 펼쳐진 수많은 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에게는 개인 주택들의 다양함과 예쁘게 단장된 정원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있었다. 집집마다 정원에는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고, 정원수들이 집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부자 동네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담장을 타고 넘어온 넝쿨들이 집 담벼락을 감싸고 있었다.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꽃나무들이 정원에 고풍스럽게 잘 어우러졌다. 언젠가는 저 많은 집들 중에 내가 고른 집에서 살고 싶었다.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나는 넓은 교정으로 자주 나갔다. 그곳은 산에 있어서 멀리 북한산까지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승렬과 교정 뒤에 있는 나만의 아지트로 갔다. 산 아래로 내가 보아왔던 집들이 있었다. 나는 손으로 많은 집들을 가리키며 승렬에게 물어봤다.

“승렬아! 저 아래 보이는 많은 집들 중 어느 집이 제일 마음에 드니?”

그는 여러 집들을 천천히 눈으로 둘러보더니, 언덕 바로 아래 길가 옆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순간 내가 숨겨 놓은 보물을 들킨 기분이었다. 이젠 내 집처럼 전혀 낯설지 않은 하얀 집이었다.

“저 하얀 집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어?”

나는 승렬에게 내 집을 빼앗긴 듯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얀 집이라서 눈에 금방 띄네. 검은 기와지붕과 잘 어울려서 좋아 보이기도 하고...”

나도 승렬과 같은 생각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선명하게 보이는 집이었다.

“그런데 저 하얀 집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금방 싫증이 날 것 같아.”

친구는 깨끗함이 싫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명제를 달았다. 그 명제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싫증이라는 말이 왠지 그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승렬이가 언젠가는 하얀 집이 깨끗해서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승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입학식을 마치고 며칠 뒤 치러진 반장선거를 하던 날이었다. 아직은 서로 낯설고 어색하던 때였다. 몇몇 반장 후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천을 받아 교단 앞으로 나왔다. 후보자들은 간단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다녔던 학교들이 달랐고, 살아온 환경도 다양했기에 사고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나도 그들과 교단 앞에 서있었다.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켰다. 승렬이의 발표 차례가 되었다. 그는 많은 친구들을 하나씩 침착하게 둘러보는 여유가 있었다.

“제가 반장이 되려는 것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꿈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한마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와 미래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함께 멋있는 미래를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조용하면서도 저음인 그의 목소리는 친구들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승렬이의 연설 내용은 짧았지만 분명했다. 많은 친구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투표 결과 승렬이가 반장에 선출되었다. 승렬은 함께 일할 임원들을 지명하였고, 나도 그와 함께했다.

승렬의 제안으로 임원진 단합을 위해서 1박 2일로 강원도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나는 그동안은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해방감을 느껴서인지 마음이 몹시 들떠있었다. 굽이굽이 대관령 고갯길을 내려가는 시외버스에는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버스가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바다 풍경에 푹 빠져있었다. 버스 안의 복잡함도 잊은 듯 푸른 바다를 보며 얼굴들이 환했다. 친구들은 손짓으로 바다를 가리키면서 즐거워했다. 3월의 동해 바람은 차가웠지만 뜨거운 우리들의 젊은 열정을 막지 못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민박에 짐을 풀자마자 해변으로 달려갔다. 넓은 백사장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바다에서 출렁이며 떠다니는 고깃배의 자유로움이 멋진 낭만으로 다가왔다.

“정말 여기 오기를 잘한 것 같네. 저 넓은 바다를 봐!”

승렬이가 상기된 얼굴로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마음을 나눌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해.”

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서로의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일 일찍 일어나 동해의 일출을 보면서 각자의 소망을 빌기로 했다. 친구들도 나의 제안에 찬성했다.

그날 저녁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앞으로 이끌어나갈 설계를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밤늦도록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싶어.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보다는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려고 해.”

승렬은 조금은 비장해 보이는 얼굴로 친구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약한 사람들이 억압받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삶의 질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싶다.”

친구들은 승렬이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말들이었다. 아직은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은 그다음에 판단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승렬은 그날 저녁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 ‘탄압’, ‘독재’라는 무거운 단어였다. 나는 승렬의 말에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단호한 그의 모습이 몹시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한 단어들은 당장에라도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큰 노력과 희생의 대가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처음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은 낯선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들과 공부를 하면서 넓은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해야 할 폭이 좀 더 넓어질수록 보는 시야도 달라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매시간 새로운 수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진지함은 선생님들을 긴장하게 했다. 4월이 되면서 꽃향기가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교실의 분위기는 봄 햇살로 나른해지면서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높아져 갔지만 우린 익숙해진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교실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친구들의 각기 다른 성격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창 너머로 가끔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구호를 외치며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질수록 경찰의 최루탄 쏘는 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렸다. 그럴 때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꽃향기 대신 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들어왔다. 수업 중에 친구들은 최루탄 냄새로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면서 잦은 기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수업하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동요를 막으려 창문을 닫으라고 하면서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면서 우리는 그 상황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가끔 시국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정부에 대해서 비판하는 단호함보다는 조심스러움을 택했다. 그런 선생님들을 친구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단호함을 선택한 선생님들이 교장실에 불려 가 호통을 당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에서 다른 사상을 가지고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과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였다. 입시의 부담으로 ‘공부’라는 단어가 머리에 가득 차 있을 시기였기에 ‘사상’과 ‘노동자’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친구들과 강원도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승렬이가 방과 후 학교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학교를 마치고 우리는 교정 뒤에서 봐 왔던 하얀 집을 지나 천변 옆 큰길 사거리에 있는 제과점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은 내리막길로 약간 가팔랐지만 내려오는 속도를 맞춰가며 우리는 발걸음을 같이 했다.

“이 집이 우리가 보던 그 하얀 집 같은데 보기보다 상당히 크네. 집안에 정원도 있고, 정말 멋있는 집이야!”

승렬은 그 하얀 집이 좋아 보였던지 담장 너머로 그 집안을 기웃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는 그렇게 하얗게 보이지는 않네. 하기야 하얀 집은 청소를 자주 하지 않으면 더러워 보일 수도 있어.”

나는 지난번 승렬이가 했던 하얀색이 싫증을 유발한다는 말이 떠오르자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던진 말이었다.

“글쎄! 까만 기와지붕과 잘 어울려서 그런지 하얀 집이 깨끗해 보이네.”

그는 하얀 집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승렬과 마주 앉은 제과점의 탁자가 조금 흔들거렸다. 순간 나는 흔들리는 물 컵을 한 손으로 잡았다. 탁자 다리의 높이가 조금 차이 나 보였다. 승렬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하였다. 지난번 바닷가에서 승렬이가 했던 말들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오늘 보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선배들이 얼마 전에 독서클럽에 가입하라는 권유가 있어서 너와 같이 가입하면 어떨까 싶은데...”

그와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가볍게 말할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혜화동 가톨릭 회관에서 독서토론을 하는데, 대학 선배들도 같이 참여한다고 했어. 여러 가지로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서 너랑 같이 다니고 싶네.”

그의 말은 권유였지만 필연으로 들렸다. 승렬이도 어렵게 말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겠다는 정도의 답변은 거절로 받아들여서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같이 한번 가보고 결정할게. 이번 주에 같이 가자.”

나는 확답을 하지 않았지만, 승렬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금요일만 되면 다음 날이 주말이라 마음이 가벼웠다.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승렬과 같이 독서클럽에 참석했다.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선배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면서 나는 입회원서를 제출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토론했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혹시 도움이 될 책을 찾기 위해 누나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 책꽂이의 많은 책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었다. 얇지만 일반 서적보다 길어 보였고, 바탕이 빨간색으로 상당히 강렬해 보였다. 책을 꺼내서 보니 시인의 자화상이 있는 표지에는 ‘거대한 뿌리’라고 세로로 적혀 있는 시집이었다. ‘김수영’ 시집이었다. 나는 처음 접해보는 시집이라 목차에 나오는 시 제목들을 보다가 ‘풀’이라는 제목을 발견하였다. 그 페이지를 펼쳐서 시를 읽어보았다.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나도 모르게 첫 연을 읊조렸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서정적인 시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 시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풀뿌리’라는 의미가 궁금해졌다. ‘풀’과 ‘바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떠나질 않았다. 시집을 다시 놓여있던 책꽂이에 꽂아 놨다. 혹시 누나가 책을 만졌다고 야단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읽으며 더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2층 창밖으로 멀리 빈 땅에 누군가가 심어놓은 옥수수들이 어느새 자라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아직 강남이 개발 초기라 집 사이로 군데군데 빈 땅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는 많은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아침부터 식구들이 외출한 집은 조용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가끔 들라는 벌레 소리가 유일하게 내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집안의 정적을 깬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1층 응접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오늘따라 짧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이다. 오늘 시간이 되면 집으로 놀러 가도 될까?”

수화기 너머로 승렬이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독서클럽 다니면서 집에 많은 책들이 있으니 구경 오라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안 그래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지냈니?”

승렬의 집이 강북에 있어 그의 집에서 오기에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반가움이 거리를 좁힐 듯했다.

“자전거 타고 가면 1시간 정도 걸리겠지?"

강남에 많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길도 넓어져 그가 자전거를 타고 오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그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독서클럽을 같이 다녔던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독서토론을 하면서 가끔 이견 때문에 언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우정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독서클럽은 선배들이 사전에 정해준 독서 리스트에 있는 책을 읽고, 내용에 관한 토론 후 대학에 다니는 선배가 총평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김구, 안창호 선생 등 독립 운동가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다. 독서클럽 이름은 ‘대동회’(대한 민족 동지회)였다. 선배들은 민족의 주체성을 인식해서 앞으로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배우자고 했다. 거창한 클럽 명칭과 선배들의 구호에 나는 처음에 어리둥절하였다. 선배들의 너무 거대한 목표의식 앞에 중압감과 거부감을 느꼈다. 승렬이가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독서클럽은 다니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외부의 커다란 사건으로 모임이 중단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동안 승렬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기회가 되면 그와 누나가 소장하고 있는 서적들을 보며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했다. 우리가 토론을 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그런 내용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누나의 책꽂이에 많이 있었다.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박사 논문이 ‘동학혁명’에 관한 것이라 그 친구가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이 많았다.

승렬은 책장을 둘러보더니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내가 얼마 전 누나의 책꽂이에 다시 꽂아뒀던 김수영 시집이었다. 그는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김수영 시인은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에서도 당당하게 일어서서 현실참여를 해야 한다고 외쳤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었지.”

승렬은 약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현실참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페이지를 넘기던 승렬이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시의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거대한 뿌리’였다. 처음에는 나직한 소리로 읽어 나가던 승렬은 점점 거칠어지는 목소리로 외치듯 낭송하였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천팔백구십삼(一八九三) 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그의 입에서는 듣기 거북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어들이 뛰어나왔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구토를 느꼈다.


내 마음속에 간직했던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정 아래 보아왔던 하얀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하얀 집이 주는 편안함과 깨끗함이 좋았다. 그때는 그랬다. 가끔 차를 타고 학교 근처에 있는 그 집을 지나칠 때면 만감이 교차했다. 방황했던 사춘기 시절, 친구 승렬과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 집을 장만했다. 고교 시절 꿈에 그리던 하얀 집으로 이사를 하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주말에는 정원을 가꾸며 온 정성을 쏟았다. 어릴 적 보아왔던 하얀 집이 더 이상 빛바랜 집으로 변하기 전에 그리고 내 희망이 사라지기 전에 더욱 멋있는 하얀 집을 만들기로 했다. 학창 시절 그렇게 꿈꾸던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세월의 흔적들을 지우듯이 아름답던 주변의 많은 집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높은 울타리가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잘 보일 수 있도록 울타리를 걷어냈다. 그렇게 손질을 하면서 내가 오래도록 그려왔던 집으로 만들어갔다. 주변의 개발로 점점 누추해지는 하얀 집을 보면서 승렬과 했던 이야기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얀 집이 눈에는 금방 띌 수 있지만, 오랫동안 보면 싫증이 날 것 같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졸업 후 우연히 길에서 승렬을 보았다. 그는 긴 머리에 까맣게 그은 얼굴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짧지 않은 세월을 느꼈다.

“승렬아! 정말 오랜만이네. 그동안 연락도 없이 어떻게 지냈니?”

먼저 알아본 내가 승렬에게 반갑게 다가가서 포옹하며 악수를 했다.

“그동안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일하면서 공부하려니 정말 정신이 없었어.”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야간에는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와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길지 않았던 독서클럽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읽었던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승렬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다. 술이 여러 순배 돌아가자 그는 갑자기 기억이 났는지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또박또박 암송하기 시작했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승렬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비숍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에서 동학혁명, 갑오개혁 등 1894년부터 1897년까지 한국의 근대사를 기록했지.”

그의 눈망울은 뭔가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느꼈던 혐오감이 한국을 떠나면서 거의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고 했어.”

승렬은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의 낡은 전통을 갈아엎고자 했지만, 그것은 부정이 아니라 깊은 애정이었어. 그런데 외국인인 비숍이 우리의 전통을 부정하고 비하하자 그에게 강한 반동이 작동했을 거야. 그는 비숍의 인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지식인의 패배의식에 침을 뱉었지. 그가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이 결여되었다면 그의 모더니티는 얼마나 피상적이고 천박했겠어.”

그는 취기가 오르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동안 사회혁명은 어느 순간 필요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부터 지속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깊은 반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 자신이 이 현실 속에 던져진 나약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는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삶의 질을 바꿔버렸어.”

그는 자신과 싸움에서 결과를 볼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커다란 장벽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현실과 이상이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듯이 나 또한 현실 속에 던져진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내가 지금 사는 여의도의 아파트에는 실내수영장과 커다란 마트가 있다. 그곳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승렬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구로동의 봉제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여직공들의 머릿속에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는 가족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삶의 괴리감을 그에게 말하는 것은 이중적 사회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승렬과 헤어지면서 나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혼란한 사회에서 방황과 갈등을 겪으며 내가 정당하게 도피할 방법을 택한 것이다. 정권의 유지를 위한 군대인지 국가를 위한 군대인지 알 수는 없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택한 나의 합리화가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그가 내게 쥐여준 연락처를 받아 들면서 우리의 희망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멀리 승렬이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김 상병님! 위병소에서 면회 연락이 왔습니다.”

평일 이른 아침에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위병소로 달려갔다.

“승렬이가 어제저녁에 병원에서….”

승렬과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나를 보는 순간, 울먹이기 시작하면서 힘들게 한 말이었다. 면회실 옆에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퍼드덕거리며 날아갔다. 몇 개의 잎새가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잔인한 5월이었다. 얼마 전 휴가 때 만났던 승렬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걱정하지 마.”

술에 취한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면서 눈동자가 몽롱해 보이던 승렬이가 무심코 던진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눈동자는 무엇을 응시하며 고정되어 있었다. 예전에 볼 수 없던 불안감이 느껴졌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하자 부대의 상황은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문에는 연일 광주사태 기사로 도배하고 있었다. 나는 부대에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면회 및 외박이 금지된 채, 폭동진압훈련에 주력하고 있었다. TV 시청도 금지하여 국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폭동진압 장비를 갖추고 출동준비를 하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봄꽃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면회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승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승렬이가 다니던 공장에는 광주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연일 가족들의 소식들을 들으면서 불안한 마음에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광주로 내려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소식도 끊기기 시작했다. 승렬과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광주로 내려가서 소식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그는 그곳으로 갔다. 먼저 갔던 친구들은 이미 현지에서 광주시민군에 참가하고 있었다. 승렬도 그들과 연락이 되면서 합세했다. 광주시민군은 정부 당국이 야간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시민들을 연행하는데 항의하는 시민들을 무차별 발포를 했다고 주장했다. 계엄 당국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든 시민군들을 폭도로 몰아가고 있었다. 승렬은 시민군 진압과정에서 계엄군에 의해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승렬의 묘소였다. 승렬의 부고를 받은 그날, 부대에서 급하게 외출 허가증을 받아 그의 관을 친구들과 들고 올라갔던 곳이었다. 나는 그날 그의 관을 묻으면서 한없이 울었다. 그의 죽음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3년간 같은 반에서 함께 보내던 친구였다. 남다른 우정을 쌓았던 친구였기에 내 마음의 충격과 상처가 컸다. 그가 추구했던 삶의 질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세대에서 바뀔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느꼈을 벽은 그가 생각한 이상으로 높았을 것이다. 비록 짧은 생을 마감한 승렬은 나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집 근처 천변을 걷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산 위에 있는 승렬과 다니던 고등학교로 향했다. 주변에 있던 집들은 세월의 흔적만큼 이미 아파트로 변해 있었다. 언덕길이라 숨이 찼다. 교문 입구의 학교 명판은 그대로였다. 교문을 지나 강당 앞에 ‘교복 단정’이라는 구호가 있던 큰 거울도 세월이 흘렀으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거울로 비치는 40여 년이 지난 내 모습은 이제 초로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올라온 교정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푸른 초원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후배들이 공을 차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교정 모퉁이를 돌아 동네 집들이 보이는 교사 뒤로 갔다. 아래에 보이던 그 많은 집은 자취를 감추고 몇 개의 집만 남아 있었다. 내 시선이 머문 곳은 지금 사는 그 하얀 집이었다. 처음 친구와 본 그대로의 모습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담장이 없어진 것이다. 주변에 높은 빌라와 빌딩으로 둘러싸인 하얀 집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승렬이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감싸며 내게 물어보는 듯했다.

“아직도 하얀 집이 좋으니?”.

나는 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 하얀 집이 싫증이 나기 시작하네.”

그에게 물어봤다.

“너는 아직도 비숍 여사가 그리워?”

가까이 보이던 승렬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면서 하얀 집이 눈물 속에 가려져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솔로 탈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