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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ug 02. 2024

20화. 벤구리온 공항의 흉상(胸像)

공항 이야기 / 에세이

  비행기 창가 너머로 저 멀리 동지중해의 중심인 텔아비브 시내가 구름 속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파도가 해안가에 다다르면서 일어나는 하얀 포말들이 연이어서 커다란 띠를 만들고 있었다. 이스라엘로 발령이 나면서 처음 입국한 벤구리온 공항은 주변부터 숨 막힐 정도였다. 

  일반 비행기들은 보딩 브리지를 통해서 건물로 이동하지만, 내가 타고 온 카이로발 비정기선은 특별구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였다. 사복을 입고 중무장한 채 선글라스를 낀 보안요원들이 건물 요소요소에서 승객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중동국가에서 들어오는 비행기들은 통상적으로 보안을 강화했다. 

  입국 승객 통로를 지나서 긴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타고 내려왔다. 입구에는 많은 사람이 입국 수속을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내국인 입국심사대에서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은 유대인인 듯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시민권을 부여했다. 

  국토가 협소한 이스라엘은 인구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건국 전후부터 이곳의 수원(水源) 개발 및 농지 개척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 총리 겸 국방, 장관인 벤구리온은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멀리 떨어진 갈릴리호(湖)에서 송수관으로 물을 끌어들여, 사막 남쪽에 비옥한 농지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농촌 공동체인 키부츠가 시작되었다.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왔다.      


  이스라엘을 알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본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이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유대인들의 투쟁을 그린 내용이었다. 역사에서 버려졌던 사람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견뎌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전전하다 다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보았다.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겪었던 이들의 고된 역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든 이스라엘이었다. 

  유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탈무드’라는 책을 접하면서였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신앙과 민족정신의 원천이며, 그들의 탁월한 교육과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 준 바탕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이산민족' (Diaspora)으로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유가 바로 탈무드에 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지난 세월의 고통도, 중동국가들 틈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도, 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 대학살)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선민의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산·離散)이라는 뜻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2천 년 전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로마군에 의해서 쫓겨난 후,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나라도 없이 살았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된 직후, 전 세계에 이산 되어 있던 상당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옛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1948년 그곳에 나라를 세우며 ‘디아스포라여 안녕!’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대로(大路)는 철통 같은 보안 태세였고, 헌병대가 텔아비브의 미술관 전당에 있는 모든 이들을 샅샅이 검사했다. 다비드 벤구리온이 미술관에 들어와 국가 하티크바(Hatikvah)를 부른 뒤, 그는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의원들이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제 이스라엘은 공식 국가로 탄생하였으며, 벤구리온이 초대 총리가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한다.”     

                                     -다비드 벤구리온-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수립하고자 1차 세계 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을 손에 넣은 영국이 처음 공표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들과 그들의 동맹국들에 대한 염려에서 제한 없는 유대인 이주를 거부하였다. 

  UN이 권고한 영토 분할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거부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건국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리(地理)는 전쟁으로 결정됐으며,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이후 수십 년간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게 된다.     

  이스라엘 체류 기간에 팔레스타인에서 쏘아대는 미사일에 대공미사일로 요격하는 장면을 봤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던 무장한 군인들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나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위치 하는 모습을 보았다. 삼엄한 벤구리온 국제공항 입구에 있는 벤구리온 흉상에 적혀있는 글을 읽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국민이 만든다고 생각했다. 공항 벽 정면에는 대형 이스라엘 국기인 ‘다윗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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