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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19. 2024

18화. 몬트리올 공항(空港)의 눈물

공항이야기 / 에세이

  성장한 아이들과 여행은 어릴 적과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어릴 적에는 세수하는 것부터 잘 때까지 잠자리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했다. 성장한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만 이야기하면 알아서 여행 계획을 잡아준다. 두 다리만 있으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이 편안함은 그동안 부어 놓은 적금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본격적인 공부를 하면서 몇 년간 여행을 못 했는데, 이번에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길 바랐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공부하는 애들 여름 방학과 회사의 휴가 기간을 조정하여 캐나다의 동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몇 개의 여행 일정표를 만들어 메일로 보냈다. 뷔페식당에서 뭘 먹을까 걱정하는 호사스러운 선택을 만끽하면서 결정 못 하고 고민하다가 머릿속만 뒤집혔다. 아이들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백기를 들면서 여행 일정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여름은 물이다.’라는 대명제를 정한 뒤, 메일 답장에는 천 섬(Thousand island)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적어 보냈다. 메일 교신은 작은딸과 이루어졌고, 큰딸은 둘째를 ‘몬트리올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 계획은 완벽했으며, 아이들을 따라만 다니면 될 것 같았다. 이제 비행기표와 숙소만 확정이 되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같은 대학을 들어가고 처음 가보는 몬트리올이었다. 카이로에서 몬트리올까지는 대서양을 건너는 긴 여정이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속 썩이지 않고 자라줬고, 부모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이겨낸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흐르면서 비행기는 하강하면서 곧 랜딩기어 소리가 크게 들렸다. 몬트리올 공항의 입국장으로 나오자,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별한 가족이 상봉하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들을 끌어안았다. 둘째가 하이스쿨 다닐 때, 공항에서 만나 포옹을 하니. ‘캐나다에서 이러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하던 말이 떠올랐다. 문화적인 쇼크가 아니라 조크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섭섭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긴 언덕을 무거운 가방을 끌고 올라가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아이들이 추천한 멋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했다. 얼마 만에 가족 식사인가. 이제는 성인들이 되어서 와인도 곁들인 우아한 디너였다. 그동안 공부했던 과정을 들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인생 선배로서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웨이터가 문 닫을 시간이라는 눈짓을 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과 함께 몬트리올 시티투어를 했다. 아이들이 처음 기거했던 학교 기숙사부터 강의실, 도서관, 식당 등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200년이 넘은 대학의 위용과 규모를 볼 수 있었다. 방학인데도 많은 학생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대학에서 유일하게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해 줬다.

  오후에는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몬트리올 날씨로 시내의 빌딩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하 쇼핑가를 구경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줄 테니 좋은 것으로 선택하라는 말에 눈치 빠른 둘째는 안경을 사달라고 했고, 큰애는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고 했다. 큰애의 남루해 보이는 신발을 보면서 ‘운동화 사줄까?’ 하는데, 갑자기 울컥해졌다. 큰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이아가라로 출발했다. 천 섬과 토론토를 포함하는 1박 2일 일정이다. 큰애는 졸업 논문 준비로 둘째가 동행해 주기로 했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시간을 내준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 순간을 아낌없이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섬을 관광하고, 토론토를 거쳐 나이아가라에 밤늦게 도착했다. 종일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둘째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캐나다로 유학 와서 적응하는 과정, 한 번씩은 겪어야 하는 사춘기, 정체성 문제도 잘 이겨낸 것 같았다. 어릴 적 아이들에게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사는 나라가 자기 나라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외국 학교에 다녀서인지 현지화가 되어 있었다.

  새벽에 스카이론타워(나이아가라 폭포 전망대)를 올라갔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순간, 빨간 태양에서 나오는 광선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줄기를 비추면서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이 열리는 장관을 이루었다. 조금 지나면서 물보라가 일어나고, 주변이 밝은 빛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곧 폭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알아서 성장한다고 했다. 다산다사(多産多死) 시절에는 그 말을 믿었다. ‘그냥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하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커가는 아이들과 오랫동안 해외 근무 및 유학 생활로 떨어져 있으면서 점 점으로 끊어져서 보이지 않는 점선들이 많았다. 점들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서 형체가 되는 것인데, 아이들과의 완전하지 못한 형체를 보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여행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끝이 났다. 어른스러운 아이들과 같이 한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속절없이 빨리 달린다. 몬트리올 공항이 다가오면서 올 때의 설렘은 사라지고, 야속함과 아쉬움이 요동을 치고 있다. 출국장에서 이번에는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절대 울컥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이들의 모습이 눈물로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손 흔드는 아이들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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