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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26. 2024

19화. 엔테베 공항(空港)의 향기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흙의 색깔과 냄새였다. 다른 지역의 나라에서는 도시화가 잘 되어서인지 기후 탓인지 모르겠지만, 흙에는 관심이 없었다. 처음 아프리카 대륙을 밟았을 때 흙의 색깔이 유난히 빨간색을 띠어 놀랐고,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 냄새는 고향의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흠뻑 들이쉬면 가슴 깊이 들어와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왜 그랬는지 잘 몰랐다.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할 때면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와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입맞춤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스팔트 사이로 스며드는 흙냄새를 맡으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공항 직원이 내 행위를 유심히 쳐다보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웃음으로 답을 했다. 그들에게 돌아온 미소가 검은 피부색이어서 유난히 밝아 보였다. 주변의 승객들도 내 모습을 보면서 종교적인 행위로 여길 것이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루안다를 시발점으로 킨샤사와 캄팔라를 거쳐 나이로비까지 횡단을 한 것이다. 배낭여행이 아니라 해외 출장이었다. 아프리카의 서쪽은 남대서양의 해안가를 따라서 프랑스 식민지국들이 분포되어 있고, 동쪽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영국 식민지국들이 있다. 서쪽에는 나일강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긴 4,700km의 콩고강이 내륙에서 시작해서 적도를 따라 대서양으로 흐르고 있고, 동쪽에는 해발고도 1,134m, 호안선 길이가 3,440km로 아프리카 제1의 호수인 빅토리아호가 있다.

  긴 여정 끝에 빅토리아호의 북쪽에 있는 우간다의 국제공항인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뜨거운 바람과 함께 진한 흙냄새가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트랩에서 내려 손에 들었던 가방을 내려놓고 자세를 낮춰서 땅바닥에 입맞춤했다. 다른 승객들이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걸어서 게이트로 들어가자 공항 내부는 크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깨끗했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정부 초청으로 간 일정으로 현지 의전관의 도움으로 입국수속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 양옆에는 비닐하우스들이 있었고, 그 사이로 보이는 빨간색의 땅에는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감자와 망고, 바나나 등의 농작물과 가끔 가축들의 축사가 보였다. 1시간 정도 달려서 캄팔라에 도착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캄팔라는 적도에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호수의 1,000m가 넘는 해발고도의 고산지대여서 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여행 오기 전에 카디건이나 바람막이를 꼭 챙기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간다는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와 국방을 강화했다. 미국에서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로 지원을 많이 했으나, 그때마다 독재자들의 부침이 가져온 산물인 강력한 군대는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경제의 중심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중간관리자로 데려온 인도인들이 있었다. 국가 기반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의 시스템으로 이뤄졌으나, 여느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족 문제에 기인하는 장기 독재와 빈번한 쿠데타로 빈부의 격차가 심했다.


  저녁에 우간다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저녁 만찬에 참석했다. 시내에 좋은 식당을 예상하고 갔으나, 차는 캄팔라 외곽을 벗어나 산속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길을 따라 한참 오르다 보니,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우간다 상공회의소 회장의 별장이었다. 처음에는 어둠이 깊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동공이 확장되면서,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는 광채로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캄팔라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만찬에 참석한 우간다 정·재계 인사들의 격식 차린 의상으로 영국 신사 숙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 속에서, 독재체제로 인한 세계의 단절에서 벗어나 선진국들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로 영국에서 공부한 그들에게는 경제의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생각이었다.

  내가 옆에 앉아있던 외교통상부 대외협력국장에게 이곳의 흙냄새는 왜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다르게 느껴지는지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우간다에는 수많은 종족이 있고,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서 살아왔다. 종족 간의 분쟁과 함께 외세에 대한 투쟁으로 그들의 땅을 지켜왔다. 그 흙냄새는 바로 그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얼룩져있는 결정체라고 했다.

  내가 기대했던 토양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순간 조금 당황했다. 혹시 질문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한번 물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한 우간다의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상식적인 답을 줄 거라 믿었지만, 그는 부드러우면서 확고한 어조에 변화가 없었다. 그의 말은 아프리카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당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고향의 흙냄새를 제대로 음미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캄팔라 여행은 가슴 깊이 편견과 오만이 가득했던 내게 잃어버린 고향의 흙냄새를 만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어떠했는지도 생각해 봤다. 의전관이 동행해서 엔테베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어제 외교부 직원이 한 말과 같이 ‘우간다의 흙냄새를 잊지 말라.’는 말을 했다. 엔테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 땅에 입맞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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