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살아오면서 최애(最愛)의 예술 분야는 음악이다. 마음이 힘들거나 피곤할 때 옆에서 위로해 주는 것은 음악이었다. 뭔가 잘 풀리지 않아서 머리가 아플 때 음악은 해결사였다. 여행을 다니면서 멋있는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악은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즐거울 때나, 우울할 때나, 힘들 때나, 무엇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같이 한 음악은 평생의 동반자다.
음악에는 삶이 들어 있다. 그 속에는 스토리가 있고, 다양한 감정이 존재하며, 리듬을 타고 흐르는 선율에는 각양각색의 인생이 살아간다. 음악의 종류에 따라 리듬과 템포가 달라지고, 연주하는 악기가 다르며, 지휘자나 편곡자들의 곡의 분석에 따라 원곡과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음악이 흐르는 세상은 자연과 함께 인간이 숨 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처음 클래식을 접한 곳은 서울 종로 2가에 있던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이었다. 최고의 사운드 시스템을 자랑하고, 최대의 클래식 원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늑한 불빛과 안락한 의자에서 듣던 클래식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양한 클래식 음악 중에도 차이코프스키와 모차르트의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곳은 그곳이 유일했다. 자주는 가지 못했지만, 지금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계기가 된 그곳을 잊지 못한다.
영화 음악에 빠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해외 많은 영화가 들어오면서 영화 음악(OST:Original Sound Track)에 관심이 많아졌다. OST를 들면서 존 윌리엄스(미국), 엔니오 모리코네(이태리), 모리스 자르 & 미셸 르그랑(프랑스) 등 많은 음악가를 접하게 되었다. 오히려 영화 음악이 영화를 더욱 멋있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요즘도 추억의 영화를 보면서 OST에 빠진다.
음악의 성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면서였다. 한국에서 듣기 쉽지 않았던, 생소한 라틴 음악을 가까이하게 된 동기는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보사노바, 스페인의 플라멩코는 춤과 함께 기타 연주가 앙상블을 이룬다. 강렬하고 정열적인 기타의 리듬에 맞춰 추는 무희들의 빛나는 의상과 눈빛은 또 다른 음악의 세계로 다가온다.
가끔 갔던 용산 미 8 군부대에서 들었던 리듬 앤드 블루스(R&B)에 매력을 느끼면서 장르는 다르지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운 리듬의 재즈로 점점 빠지게 된 것 같다. 재즈는 이국적(異國的)이면서 재즈 가수와 호흡을 맞춰가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분위기가 압권이다. 서울에서 유명했던 재즈클럽인 ‘Once in a Blue Moon’이 문을 닫은 이후에는 멋있는 연주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시절을 겪으면서 트로트 경연대회를 통해 한국의 성인 가요인 ‘트로트’의 광풍이 불었다. 과거를 되찾고 싶은 심리적 반향(反響)인지 몰라도, 한국 음악의 축을 바꿔 놓았다. ‘K-POP’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떼창을 넘어 떼춤을 추면서, 한국이 음악의 고향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국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 번역된 가사의 전달과 한국적 리듬이 감정을 사로잡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러시아 출신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은 인간이 현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반어적(反語的)으로 해석하면, 음악을 들을 때에는 현실을 벗어나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현실을 맞기에는 너무 서글퍼진다. 적어도 음악을 듣는 순간만이라도 현재를 벗어나, 과거 또는 미래를 여행해야 한다.
수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나타나면 관심을 가지고 듣지만, 이제는 과거에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가고 있다. 요즈음 다시 듣기 시작한 음악은 모차르트가 1791년에 작곡한 대표적인 미완성 클래식 곡이자, 인류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는 ‘레퀴엠’이다. 그리고 앎 전 고인이 된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듣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영원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하루를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내고 있다. 최애(最愛)의 예술인 음악이 주는 감동과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즐거움을 음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요즈음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