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골프를 시작한 지 3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골프를 배우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중동국가에 근무할 때 운동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열악한 기후도 그렇지만, 땀을 흘린다는 것 자체가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나라에서 골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골프를 가르쳐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지하실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연습하면 힘들지 않다고 하면서, 쓰던 골프백에 골프채를 가득 넣어왔다. 한번 읽어 보라고 골프 관련 책도 주었다. 내일 새벽에 골프장 갈 준비 하고,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말만 남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
선배가 가르쳐 준 대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왔다. 골프채를 정리하고, 골프책을 보다가 홀딱 밤을 새웠다. 대충 씻고 있는데.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부랴부랴 골프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앞 좌석에 올라탔다. 선배는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 운전하면서도 물어보지 않은 말을 계속했다.
날이 밝아지자, 우리는 순서대로 공을 치고, 굶주린 사막의 여우처럼 먹잇감을 쫓아서 달려 나갔다. 사막에서 골프 칠 때 필요한 것이 원형의 플라스틱 매트다. 골프공을 땅바닥에 놓고 칠 수 없어 매트를 들고 다녔다. 그린은 폐유 등을 섞어서 만들었고, 페널티 구역(오비, 해저드, 벙커 등)은 작은 돌로 경계선을 구분했다.
바람이 불면서 모래가 온몸을 덮었고, 친 골프공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헤매기도 했다. 로스트 볼은 동네 아이들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공을 가져오면 한 개에 10펜스(150원)를 줬다. 새벽부터 동네 아이들은 공을 자주 잃어버리는 장소에 진을 치고 있다가 다음 홀에 가면 밝은 웃음을 띠며 이미 주운 공을 내밀었다.
골프를 친건지 골프채가 나를 데리고 다닌 건지, 18홀을 정신없이 갈지자로 돌았다. 그동안 옆에서 같이 라운딩 해준 선배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고생했다면서 씨익 웃었다. 18홀 끝나는 지점에 가게가 보였다. 선배가 목마르다고 사다 준, 생전 먹지도 않는 콜라를 다섯 병이나 순식간에 들이켰다.
골프 예약이 잡히면 항상 마음이 설레면서 분주해진다. 잠시 쉬었던 골프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예약 하루 전에 골프채를 닦고, 골프공, 장갑 그리고 입고 갈 의상 등을 챙긴다. 친구는 하루 전에 골프공을 가슴에 품고 잔다. 그래야 잘 맞는다고 한다. 골프는 많은 이유로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다.
골프장에 들어서면 몸의 유연성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드라이버 연습하는 사람 옆에 가서 드라이버는 쇼라고 하면서, 퍼팅 연습만 하는 사람도 있다. 속칭 ‘설거지’라고 하는 쇼트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어프로치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기량에 따라 ‘쇼’를 할 건지 아니면 ‘설거지’에 집중할 건지가 결정된다. 물론 둘 다 잘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골프는 항상 공정하다. 적어도 한 가지는 잘 되지를 않는다. 모두 잘 되는 날을 ‘그분이 오신 날’이라고 하지만, 그분도 짓궂게 굴 때가 많다.
오늘은 힘을 빼고 쳐야지 하면서도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가 공은 좌우로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옆에 동반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퍼팅한 공이 홀에서 돌아 나오면, 옆에 있던 친구가 순간 몸을 쓴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스코어카드를 보면서 고개를 숙이는 날이 많아질수록 연습장 가는 날은 더욱 빈번해진다. 골프가 뭐라고 숫자에 목숨을 거는 걸까. 골프는 나와 싸움이라고 하지만, 결국 상대와의 치열한 경쟁이다. 모두 즐겁게 하는 명랑골프는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오늘은 또 어떤 스코어가 기다릴지 궁금증만 더해간다.
골프를 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들, 사업과 관련된 분들, 그리고 해외여행 중 모르는 현지인들과 조인하는 분들 등이다. 몇 시간을 동반자들과 골프를 치면서 배웠던 골프의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 매너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동반자에게 골프의 매너를 배운다. 그것은 배려와 여유로움이다. 그들의 골프 실력은 그 매너를 월등히 넘어선다.
나이는 골프의 비거리와 반비례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골프를 배우면서부터 힘을 빼라고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더 이상 뺄 힘도 없어 요즘 드라이버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드라이버는 쇼라고 하지만, ‘The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드라이버의 거리와 방향성은 살아온 인생을 보여준다’라는 선배의 이야기가 골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