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어릴 적 집에 비자나무로 만든 외조부(外祖父)가 쓰던 바둑판이 있었다. 부모님이 집의 가보(家寶)로 여길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바둑을 잘 뒀던 외조부가 지방의 유지(有志)라 전국에서 바둑 고수들이 방문해서 문지방이 거덜 났다. 그중에 한 분이 조부(祖父)였다. 조부와 외조부가 근처에서 바둑 고수로 상호 초청 형식의 바둑을 자주 두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사돈을 맺은 것이다.
그런 분들 밑에서 자란 아들이나 손자들은 바둑을 두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이 없었다. 그 바둑판을 가지고 지방의 사투리로 '팅가먹기'(바둑알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알을 까는 놀이. 알까기)나 했으니, 하늘에 계신 조부들이 봤으면 혀를 차다 깨물었을 것이다. 바둑 두는 조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부모가 얼마나 지겨웠으면 바둑판을 왜 다른 용도로 사용했는지 이해가 간다.
처음 바둑을 두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였다. 친구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표정이 어른스러웠다.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바둑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오목을 두자고 했다. 오목과 바둑의 차이는 착수(着手)이다. 일반적으로 오목은 중앙에서, 바둑은 화점(花點)에서 시작한다. 게임 방식은 틀리나 사활(死活)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둑은 결국 죽이고, 사는 집 싸움이다.
회사생활에서 첫 해외 근무지가 러시아였다. 러시아 개방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정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언어,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러시아 직원들은 대국의 국민으로 갖춰야 할 인격과 품위를 지녔다. 슬라브 민족이 정서적으로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도 느꼈다. 문학과 음악 등에 조예(造詣)가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러웠다.
하루는 현지 남자 직원이 ‘고(Go)’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더니 한국말로 ‘바둑’이라고 또렷하게 말하면서, 둘 줄 안다고 했다. 바둑판과 알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집에서 내일 가져오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으나, 다른 것도 아닌 ‘바둑’이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점심시간에 빠른 식사를 하고 그가 가져온 바둑판을 테이블에 놓았다. 어느 정도 두냐고 하니, 2단이라고 했다. 속으로 2급이면 잘 두겠다고 생각하고, 기력이 낮아 보여 그에게 정선(定先)으로 두자고 제안하고, 그가 흑돌을 잡고 시작했다. 그는 포석(布石)에 대한 정석(定石)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중반으로 가면서 공격적인 바둑에 대항에서 패(劫)를 써가며, 집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패했다.
그가 말한 2단이 맞는 것 같았다. 기본기가 충실한 그에게 이기는 방법은 기력(棋力)을 늘리거나 접바둑(돌을 하수가 몇 점 깔고 두는 것)을 두는 것이다. 그는 바둑을 집 근처에 사는 고려인에게 배웠다며, 기력은 약 5년 정도 된다고 했다. 가끔 바둑을 두면서 그 직원이 차분하고, 집중력이 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둑은 활력소가 되었다.
"나는 바둑을 빨리 배웠어.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근데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당하며, 서로를 발가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 거지."
얼마 전 봤던 드라마의 한 대사다. 복수의 대상들을 하나씩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무너뜨리는 내용이었다. 바둑 두는 장면에서 옆에서 훈수 없이 조용히 구경하듯 보거나, 공원에서 바둑을 두는 여러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심신이 피곤하다. 저녁이 되면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바둑 한판 같이 둔다. 바둑을 두다 보면 그곳에 빠져들면서, 잡념이 사라진다. 자만심이 생기면 바둑은 무너지고, 겸손하게 두면 튼튼한 집이 생겨 이긴다. 그래서 바둑은 정수(正手)를 두려고 노력한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인생도 정수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