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사진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아버지의 카메라 때문이었다. 오래전 한국에 3대 정도밖에 없었던 최신형 카메라를 메고 아버지는 사진 찍기에 몰두했다. 카메라 덕분에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를 다니면서, 가족이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 근처에 있는 고궁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가끔 아버지의 조수로 따라다니며, 사진 찍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아버지를 사진에 빠지게 한 카메라는 라이카(Leica) M3다. 1953년 쾰른에서 열린 사진 기자재전시회인 포토키나에 처음으로 등장해 카메라 시장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품이다. M3는 과거의 카메라보다 몇 세대는 진일보한 혁신적 모델이란 평가를 받았다. M3는 베이어닛(bayonet) 방식을 채택해 렌즈를 카메라 렌즈 마운트 홈에 맞춰 반 바퀴만 돌리면 견고하게 장착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사진반에 가입했다. 아버지의 카메라 열정이 사라짐과 동시에 물려받은 구식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론부터 암실 작업, 출사(出寫)를 통해서 사진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익혀갔다. 처음에는 풍경 사진부터 시작해서 동체 사진, 인물 사진 등을 배워나갔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카메라 셔터 속도와 조리개 조절이었다.
옛날 사진관 간판에 DP&E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필름의 현상(developing), 인화(printing), 확대(enlarging)의 첫 글자로 암실 작업을 하는 사진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진을 배우면서 가장 어려웠고, 흥미로웠던 것이 암실 작업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현상액에 넣은 인화지에 조금씩 형태가 나타날 때였다. 그리고 인화지를 걸어서 말린 후 크기에 맞게 자르면 사진이 완성된다.
카메라 찍는 기술의 ABC는 Angle(각도), Background(배경), Contrast(대비)를 말한다. Angle은 카메라의 찍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오래전에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찍으면 새로운 세상이 보였는데, 최근 미대 교수 친구에게 가장 낮은 자세에서 위로 찍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배웠다. Background는 피사체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따라 바뀐다. Contrast는 흑백 사진을 찍을 때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칼라로 찍을 때는 색상대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출사(出寫)에서 가장 어렵고, 많이 찍는 것이 산 정상에서 일출 촬영이다. 밤을 새우다시피 해야 하고,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필름 카메라 시대를 거쳐서 요즘은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었고, 핸드폰 내 사진기 기능의 내장으로 사진 찍기가 쉬워졌다. 전문 사진은 빛을 찍는 것이 가장 어렵다. 카메라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삼각대는 필수이고, 렌즈에 사용하는 필터도 필요하다.
처음 일출을 찍은 곳은 홍해였다.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해가 뜨기 전까지 필요한 장비와 도구를 준비했다. 온몸을 휘감는 전율의 순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여명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잠시 후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셔터에 가 있는 검지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빨간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몰려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홍해의 일출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풍경 사진이 좋았고, 컬러 사진이 멋있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진 보정 기술도 카메라 기술 못지않게 좋아져서 멋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사진에 내용이 없이 찍으면 사진기사에 머무르고, 사진 속에 스며드는 여운이나 감정이 느껴지면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신문에서 볼 수 있는 현장에서 전쟁, 폭동, 가뭄, 기아 등의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울림을 준다. 순간 포착 기술이 필요하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방문했던 곳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동아 국제사진 살롱전’이다. 해외에서도 많은 작품이 출품되어 사진 공모전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었다. 수많은 작품을 봤지만, 오래전 금상을 받은 외국 신부의 흑백 인물 사진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금상을 준 이유를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이유를 알았다. 평범 속에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그의 눈은 지금도 나를 응시(凝視)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관에는 가족 기념사진, 웨딩 사진, 돌 사진 등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걸렸다. 가끔 한복이나 정장을 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진도 볼 수 있다. 그들은 밝은 옷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눈가에는 웃음보다는 애수(哀愁)가 서려 있다. 그들의 사진에서 외국 신부의 인상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