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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Sep 02. 2024

9화. 축구(蹴球)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협회에 등록된 선수로 스포츠 활동한 것은 유일하게 축구였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 키 작은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던 생각이 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가자 욕심을 냈다. 반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친구들과 축구부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체육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자, 교장 선생님과 상의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반응 얻어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한숨이 사라지길 기대하면서 시작한 축구가 갑자기 축구협회에 등록된 축구팀으로 되어버렸다. 여자 교장 선생님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우유와 빵을 사 들고 왔다. 체육 선생님은 감독이었지만, 축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학교 근처 대학 축구선수들을 코치로 초빙을 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훈련을 하는 고달픈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중학교 축구팀은 훈련에만 주력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방침으로 방과 후 그리고 주말에만 연습했다. 어머니는 힘든데 괜찮겠냐면서 걱정을 했지만, 이미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많은 관심과 함께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분위기라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가끔 어머니가 주말에 음식을 만들어 와서 어린 선수들에게 애정 어린 격려를 해주었다.

      

  방학 동안 훈련과 함께 주변의 중학교 축구팀과 친선경기를 통해서 전력 평가를 했다. 감독님은 추계 전국 중등 축구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면서, 선수들에게 더욱 열심히 해주기를 당부했다. 선수들은 피와 땀을 흘린 노력의 대가는 있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했다. 밤에는 코치가 알려 준 전술에 대해서 깨알같이 써 놓은 노트를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시합 전날 축구화의 끈을 깨끗하게 씻어서 단정하게 매어 놓고, 가슴에 껴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머릿속에는 그동안 배운 기술과 감독님이 미리 알려 준 명일 시합에서 사용할 전술이 맴돌았다. 서울시 지역 예선은 5팀이 한 조가 되어 상위 2팀만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 있었다. 창단팀으로 버겁기는 했지만, 3팀을 이겨서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만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첫날부터 강호 팀을 만나 훈련한 대로 열심히 뛰었으나, 상대 팀의 절대적인 실력으로 많은 점수 차이로 패했다. 감독님은 괜찮다고 다음 시합에 더욱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지만, 선수들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버스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진 시합에서 결국 전패로 리그에서 탈락했다. 열심히 운동한, 몇 명의 친구들은 축구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그 이후 축구화를 신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자주 해외 출장을 다녔다. 어느 날, 현지에서 월드컵이 열리는데, 한국 축구팀 경기를 보러 가자는 거래처의 제안을 받았다. 10여 년간 혹시 축구화를 신고 싶을까 봐, 축구는 일부러 멀리했었다. 이제는 신고 싶어도 선수로 뛸 수 없기에 해외에서 한국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축구장으로 들어서면서 한국 축구팀의 명단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중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다시 축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도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시합이 끝나고 라커룸으로 갔다. 그 친구가 나를 알아볼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는 했지만, 풀타임을 뛴 그의 지친 모습을 보면서 같이 뛰던 생각이 났다. 공격수와 미드필드로 발을 맞추면서 그 친구의 패스로 여러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라커룸 앞에서 보안요원에게 명함을 주면서 친구를 불러달라고 했다. 문이 열리면서 그 친구가 반갑게 나를 껴안았다. 서로 잊을 수 없는 오랜 추억을 간직한 친구 아닌가.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이미 축구계에서 은퇴한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결승전을 같이 본다.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날, 그 친구가 그 당시 본선 조별 경기에서 졌던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을 보면서 이국(國)에서 재회했던 날의 기쁨을 되새겼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연달아 10번째 달성했다. 극적으로 16강에 올라 2002년의 영광을 기대했으나, 아쉽게 4년 후 북중미 월드컵을 기약해야 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서 한국 축구선수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해서 차기 월드컵에서는 Again 2002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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