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편지(便紙)

나는 스타리 모스트로 달려갔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산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며칠 동안 폭격 소리와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세르비아 민병대가 철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보스니아 정부군이 가두(街頭) 방송을 통해 시민들의 안전 수칙을 지속해서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져서 많이 지쳐 보였다. 동네 사람들의 친절하고 상냥했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몇 개월간의 죽음의 공포와 참혹한 생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놨다.

야스나는 매일 알라에게 다섯 번의 기도를 하면서 원망도 많이 했다. 그녀는 집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브랑코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빼꼼히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궁금한 마음에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 집에 살던 분들을 잘 아시나요?”

아주머니는 옆집과 2대째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에 가족들이 크로아티아로 떠난다고 했어요. 그중에 아들은 이미 이탈리아 친척에게 보냈다고 하던데·····”

크로아티아인들은 증명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야스나는 순간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러 가지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지만. 브랑코가 말 한마디 없이 떠난 것이 몹시 서운하고 야속했다. 한편으로, 이탈리아에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불안한 동거와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서 그들이 차별화되어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의 빈 집을 한참 바라보았다.


브랑코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야스나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로 갔다. 혹시 브랑코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었다. 산에 있는 캠퍼스는 황폐해졌다. 일부 시설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사용했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어질러진 건물 내부를 직원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그들의 막사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브랑코와 공부하던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같은 과 친구가 반가운 얼굴로 뛰어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야스나! 오랜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생사를 겪고 살아 있는 친구가 반가웠다.

“보다시피 살아 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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