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처음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해외에서 주재하면서 큰아이가 미국 학교를 들어갔을 때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온 아이가 갑자기 핼러윈 데이에서 입을 옷을 사달라고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던 아이는 학교에서 보낸 안내장을 건네줬다. 간략하게 핼러윈에 대한 정보와 필요한 준비물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핼러윈의 유래]
켈트족은 음식을 차려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영혼이 평온하기를 기원하고, 악한 존재가 심술을 부리거나 산 자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빌었다. 사람들은 악령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음식물만 먹고 떠나도록 문 앞에 음식과 술을 놓아뒀다. 이와 더불어 악령이 사람들을 그들의 일부로 여기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잭오랜턴(Jack-O’-Lantern)]
잭오랜턴은 핼러윈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커다란 주황색 호박의 속을 파내고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눈, 코, 입을 도려낸 뒤 속에 초를 고정시킨 것이다. 핼러윈에 인간 세상을 떠도는 영혼들의 길잡이이자 핼러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10월 31일 저녁이 되면 유령이나 해골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때 외치는 말이 ‘트릭 오어 트릿’이다. 아이들을 맞이한 집에서는 이들의 요구대로 사탕이나 과자 등을 안겨준다.
[분장과 가장무도회]
핼러윈이 되면 신기하고 기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핼러윈에 분장을 하는 것은 고대 켈트 족이 한 해의 마지막인 10월 31일 밤, 인간 세상에 찾아오는 악령과 악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기이한 모습으로 변장한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준비물]
아이가 좋아하는 핼러윈 복장과 그에 맞는 분장, 아이들이 방문했을 때 줄 사탕이나 과자 그리고 가능하면 집에 잭오랜턴을 켜주세요. -교장-
어릴 적, 정월 대보름이면 쥐불놀이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 논두렁에다 근처에 있는 짚을 모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웠다. 불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서 장관을 이루었다. 불꽃들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친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날이 밝아서 가보면 시커멓게 변해버린 논두렁을 보며 뭔가 잘못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봄에 그곳이 다시 파랗게 변해가면서 그동안 찜찜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때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외국 문화는 잘 몰랐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가끔 이태원을 다녔다. 대로에서 조금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면 왼쪽 2층에 있는 재즈 바였다. 외국인들과 혼성으로 구성된 연주팀은 재즈 싱어와 눈빛을 교환하면서 홀을 감미롭게 만들었다. 와인을 마시면서 취하고, 흐르는 재즈에 취했다. 이태원에는 클럽도 많이 있었지만, 시끄럽기도 하고 취향에 맞지도 않아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많지 않았던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던 이태원에서 외국 문화를 접했다. 그때까지도 핼러윈에 대해서는 들어 보지 못했다. 솔직히 외국 문화에 대해서 크리스마스, 부활절 외에는 잘 몰랐다.
저녁 늦은 시간에 핼러윈 특집 프로그램이 끝나고, TV 채널을 돌리면서 갑자기 세상이 바뀐 것을 느꼈다. TV에는 아비규환의 장면이 방영되면서 아나운서와 기자가 흥분과 분주함으로 목소리가 엉켜있었다. 여자 경찰관이 넘어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가려는 모습, 남자 소방관이 사람들 속에 끼어있는 부상자를 온 힘을 다해 끌어내려는 장면, 여자 구급대원이 옮겨지는 환자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상황들이 연이어 바뀌었다. 생방송은 긴급한 상황으로 24시간 이어졌다. 이태원에서 핼러윈으로 벌어진 참상으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켈트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평온을 빌고, 중세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베풀었던 것처럼 나보다 남을 생각하며 가까운 이웃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해 식품과 의료품을 지원하는 뜻깊은 핼러윈의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 단절된 채 지내던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지역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핼러윈 데이에는 평소에 죽음이나 불운을 떠올리게 하는 유령, 박쥐와 검은 고양이마저 즐거움의 상징이 되며, 남녀노소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축제를 만끽했으면 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예년처럼 거리로 나올 것이다. 아이들도 우리의 명절처럼 즐거워하고, 연인들은 카드와 선물을 교환할 것이다. 거리에는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눈이 내린다면 멋있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그날은 ‘O Holy Night’을 들으며, 이태원에서 젊음으로 마감한 넋들을 기리며, 환생할 수 있기를 기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