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꽁트

by 김창수

출근은 언제나 전쟁이었다. 만원버스에서 시달리는 악몽을 꾼 날은 더욱 더 그러했다. 버스에 오르면서 자리를 잡으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복권이라도 사고 싶었다. 앉자마자 보란 듯이 두 눈을 감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꿀맛 같은 쪽잠을 청하였다. 그렇게 시작되는 하루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느낌으로 시작을 하였다. 가끔씩 눈을 슬며시 떠서 차장가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을 보며 내가 탄 버스가 천국으로 갔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서울 근교 위성도시의 아침 풍경은 항상 분주하였다. 나도 어느덧 그 다람쥐가 되어 쳇바퀴 속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몇 곳의 빈 좌석으로 향해 있었다. 나는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앞에 서있던 사람들을 밀치며 버스에 올라탔다.

“앞에 서 계신 분들 좀 안으로 들어가세요!”

버스기사의 익숙한 멘트를 들으면서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던 나는 순간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내가 잠시 멈칫하자 큰소리로 아우성을 쳤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뒷걸음을 치고 싶었지만 앞뒤로 막힌 사람들 속에 나는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제 이야기가 안 들립니까? 안으로 좀 들어가세요!”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마치 모기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손에 든 우산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내 기억은 20여 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집을 나오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머니 심부름을 갔던 나는 단정하게 단발을 하고 집에서 나오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눈이 유난히 까맣고, 얼굴이 해맑은 그녀가 그 집의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곁눈질로 본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는 듯 대문을 열고 뒷모습을 보이며 총총히 사라졌다. 그녀를 본 첫 순간이었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신체의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씩 버스 안에서 만나는 한 여학생을 보면 가슴 울렁증이 생겼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항상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탔다. 그녀가 버스를 타기 두 정거장 전부터 내 가슴은 콩알이 되었다. 나는 창가에 시선을 가져가며 그녀가 그 버스를 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버스를 타지 않은 날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다음날 다시 울렁대는 가슴은 그녀를 향했다. 그 여학생이 버스에 올라타서 내 옆으로 다가올 때에는 나의 온 몸이 후끈거리며 굳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보내며 사춘기의 열병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 그러한 증상은 장맛비에 젖은 옷이 마른 것처럼 말끔히 없어졌다. 그런데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다시 그 증상이 도진 것이다.

어머니는 그 소녀 집에 나를 한 달에 한 번씩 심부름을 보냈다. 두툼한 하얀 봉투를 손에 꼭 쥔 채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은 나에게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그녀의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동화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뺐기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세상이었고, 그곳의 주인공은 그녀와 나뿐이었다.

잠시 회상하며 넋을 잃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앞에 있던 빈자리에 다른 여자가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왼쪽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서 바로 내가 서있는 앞좌석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슬쩍 보았다. 그녀도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파마를 한 모습이 불분명했지만 입술 위에 있는 또렷한 점을 확인하고 10년 전에 헤어졌던 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잠시 눈을 뜨며 내 시선을 의식한 듯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아찔한 정적을 느꼈다. 온몸이 감전이 되어 타들어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마른 침을 소리 없이 삼켰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으나 그녀의 눈동자가 덮인 눈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의 눈 맞춤이었지만 그녀는 나를 알아본 듯했다. 버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숨 막히는 정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여고 때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에 그녀의 이사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녀를 처음 본 지 2년 후였다. 그날도 어머니의 심부름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장대비를 맞으며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교복이 흠뻑 젖어있었다.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에게서 달라진 모습이란 단발머리에서 길게 한 가닥으로 땋은 머리와 얼굴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여드름뿐이었다.

“어서 와!”

그녀는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어머니 심부름 왔는데...”

나는 빨개진 얼굴로 그녀에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알고 있어. 어머니한테 연락 받았어.”

버스가 갑자기 요동을 쳤다. 사람들이 순간 가벼운 소리를 질렀다. 그녀도 놀란 듯 눈을 떴다. 버스가 다시 조용히 움직이자 버스 안에는 다시 새로운 정적이 흘렀다. 왼쪽 손잡이 사이로 그녀를 내려다봤을 때 그녀 역시 살며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옮겨지면서 나의 시선도 그곳으로 따라갔다. 차장 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몇 분이 흘렀을까 그녀의 시선이 서서히 내게로 오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와의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그녀는 새로운 직장 생활이 즐거워 보였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갓 제대해서 복학한 나에게 그녀는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녀는 조금씩 초조해보였다. 주변의 친구들의 결혼과 회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녀를 변화시켰다. 그녀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이 뜸해졌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같이 살 수 있을까?”

“.......”

그녀가 무심히 던진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빨리 결혼하라고 하는데...”

그녀는 오랫동안 내 곁에서 위성처럼 맴돌았고, 나는 그녀가 영원한 나의 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사귄 햇수가 얼마인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왜 하지?”

그녀는 집에서 결혼하라는 독촉을 받고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나랑 같이 했던 지난 세월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지만...”

그녀의 눈에 알 수 없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것이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다.

버스가 서울중심가로 진입하면서 버스 안 사람들이 조금씩 인기척을 내기 시작했다. 정거장에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자리가 비면서 습관적으로 그 자리에 앉을 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색함이 싫었다. 그녀가 다시 그 자리를 떠난다는 것도 싫었다. 그녀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릴 때가지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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