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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7. 2021

키에르케고어《공포와 전율》'헤겔 비판서'

《공포와 전율》읽기 안내서 4


서문: 이 책은 헤겔 비판서이다.


의심에 도달하는 것은 평생의 과정을 요구하는 과제이다.



《공포와 전율》의 가명 저자는 '침묵의 요하네스(Johannes de Silentio)'이다. 요하네스는 의심과 믿음에 대한 현대 세상의 기사에 대하여 말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의심하기를 멈추려하지 않고, 계속 더 나가려고 한다. 마치 의심 자체를 쉽게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데카르트가 의심에 도달했으나, 그 과정은 수년의 공부를 거친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스 회의주의자들은 의심에 도달하는 것은 평생의 과정을 요구하는 과제라고 보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데카르트가 오직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인 그 의심의 자리에서 시작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서 의심의 자리(회의의 자리)에 도달하려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다. 그 의심의 자리는 평생의 과업이지 이미 획득한 자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신앙에서 멈추기를 꺼려하고 더 나가려고 한다. 마치 신앙은 쉽게 얻어지는 것쯤으로 여긴다. 신앙은 평생에 걸친 과제로 한 때 여겨졌으나,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이미 신앙을 가진 것처럼 여기고, 신앙은 이미 획득한 것이고 거기서 더 나가기를 원한다.


요하네스는 자신은 철학자가 아니라며,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만일 믿음을 개념적인 형태로 표현한다할지라도, 체계는 믿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믿음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가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사치이기 때문에, 그가 쓴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의 사치는 더욱 홀가분한 것이 되고 또 통찰력이 풍부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저자가 자기가 걸어가야 할 운명을 예견하기란 매우 쉽다. 그는 완전히 묵살당할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다. 시기심 많은 비평가들이 어린 학생을 벌주고 매질하듯이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위의 글은 《공포와 전율》 '서문' 12쪽을 인용한 것이다. 실제로 키르케고르는 당대에 무시를 당했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후대에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신앙은 쉽게 설명되고 이해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포와 전율》의 저자의 가명이 '침묵의 요하네스'이다. 신앙은 말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다. 



믿음과 의심에 '정열'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의미할 뿐이다. 헤겔의 체계이론에는 이 '정열'이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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