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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하면서, 씨앗에게 배우는 침묵

2025년 4월 26일

by 오르 Ohr




2025년 봄농사 준비


텃밭에 8개의 이랑을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거름을 뿌린 후 독기가 날아가도록 1주일 내외의 시간을 놔두어야 한다. 내가 7개를 관리한다. 운동하다 무리하여 허리디스크 통증이 발생했다. 며칠간 허리를 안정시킨 후 혼자서 하루에 한 이랑씩 비닐을 덮었다. 이를 멀칭(Mulching, 땅을 덮는 작업)이라고 한다.



심는 순서, 고추는 일찍 심으면 안된다


무엇을 먼저 심을까? 순서가 있다. 감자와 토란을 심는다. 뿌리로 나는 작물이라야 꽃샘추위를 견딜 수 있다. 파주의 4월은 눈도 오기도 하고 춥다. 만일 4월 중순 이전에 곡식을 심으면 감자, 대파, 토란이 아닌 외부로 결실이 나오는 고추, 가지, 토마토는 얼어버리거나 죽고 만다.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5월 초가 되어야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등을 안심하고 심을 수 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감자, 토란, 대파와 상추를 심고, 고수와 조선파 씨앗을 뿌려두었다.



나의 농사 사부님


4월 초에 나의 농사 사부님이 오셔서 감자와 토란 씨앗을 주셨다. 사부님은 80이 넘으신 동네 어르신으로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이시다. 4월 26일 오늘 오셔서 옥수수 30개 모종을 주셔서 심었고, 추가로 토란을 심어주시고, 감자 줄기를 쏙아주셨다. 울타리를 만들어서 풀이 밭의 경계 안으로 못 들어오도록 관리하라고 알려주셨다. 지난해에 풀밭인지 텃밭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을 이번에는 보완하지가 부드럽고 친절하게 사부님이 안내해 주셨다. 이제 열심히 이 울타리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잡초와 씨름하리라 다짐했다.



삶의 바운더리(울타리)가 중요하다. 내가 남을 통제할 수는 없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남이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인생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토란을 해먹을 줄 몰라서 별로 심고 싶지 않았는데, 사부님이 토란을 '밭의 계란'으로 매우 좋다고 설명해주셨다. 줄기는 육개장을 끊여 먹고, 토란 뿌리는 토란국을 해먹는다. 다이어트에도 좋다. 이어서 감자의 순을 쏙아주었다. 가장 건강한 순 1-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뽑아낸다. 그래야 감자가 알차게 자란다. 삶의 가지치기가 중요하다.


삶의 가치치기가 필요하다. 삶의 가지차기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distraction)을 극복하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이나 사람들의 기대와 평가, 칭찬과 비난에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비교나, 미디어 중독이나 소문에 휩쓸려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나를 사정없이 흔든다. 쉬면 게으르다고 하고 몰입하면 너무 한곳에 빠진다고 하고 도대체 장단을 맞출 수가 없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씨앗에게 침묵을 배우다


우리 집 밑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가로등 불을 꺼달라고 하신다. 토마토를 비롯한 곡식이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로등은 시에서 설치해 준 것이라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곡식은 어둠이 있어야 쉼을 누리고 또 성장한다. 우리 인생도 빛만 받아가지고는 성장할 수 없다. 씨앗처럼 침묵하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묵묵히 나의 씨앗을 싹 틔워야 한다. 오히려 알아주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조용한 것이 좋다. 오히려 고독한 것이 좋다. 능력은 빛 가운데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과 고독 속에서 자란다. 씨앗이 그렇듯이.


씨앗처럼 침묵하자. 묵묵히 압력과 어두움을 견디고 땅을 뚫고 나오자.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마다 모두를 놀라게 한다. 씨앗이 온통 자신에 집중하여 자신의 열매를 맺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듯이, 지금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묵묵히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내 할 일에 정진함으로써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오히려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오히려 고독한 것이 좋다. 오히려 환경이 어둡고 막막한 것이 능력을 키우고 역량을 키우는데 좋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처럼 내 인생을 책임있게 가꾸자. 지금 하는 일을 묵묵히 진행하고, 또 부족한 것은 보완하여서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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