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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1. 2021

'어떤 만남'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단편 2

《더블린 사람들》에서 유년기를 다룬 세 편의 단편소설 <두 자매(The Sisters)> , <어떤 만남(An Encounter)>, <애러비 상점가(Araby)>가 있다. <어떤  만남>의 화자도 <두 자매>와 동일한 소년이다. 

딜론가(家)에서 놀기. 레오의 형 조(좌), 레오, 소년, 마호니.


소년은 책을 좋아했고 틀에 박힌 현실을 벗어나서 모험을 꿈꾸었다. 주로 친구 레오 딜론(Leo Dillon)의 집에서 총싸움을 하면서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를 하며 격렬하게 놀았다. 레오는 좀 뚱뚱한 편이었다. 총싸움을 하면 레오의 형 조 딜론(Joe Dillon)이 승리의 춤을 추는 것으로 끝이 났다. 딜론네 집 부모는 아침 8시에 천주교 미사에 꼭 다녔다. 그 집에 가면 레오 엄마의 은은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이처럼 개구쟁이였던 레오의 형 조 딜론이 나중에 신학교에 가서 천주교 사제가 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신학교에 가서 주위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있기에 나도 공감이 간다.


아이들은 학교에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가 있는 그리 야하지도 않은 과월호 잡지를 은밀하게 돌려봤다. 한번은 버틀러 신부(교사)에게 마호니(Mahony)가 들켜서, "로마 역사를 공부해야지 이런 것을 보면 되겠니?"하고 혼난 적이 있다. 주인공 소년은 총싸움이나 책을 읽는 것 외에 진짜 모험을 원했다.


진짜 모험은 집에 있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집을 떠나 해외로 가야 한다. 



학교 땡땡이치고 모험 떠나는 두 소년


학교를 땡땡이 칠 계획을 셋이서 세우다


소년과 마호니, 그리고 레오 딜론은 여름방학이 되기 전 6월에 학교를 땡땡이치고(play hooky)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닐 계획을 세웠다. 6펜스씩 챙겨 오고, 내일 아침 다리(bridge)에서 10시까지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10시, 소년이 먼저 약속 장소에 가 있고 이어서 마호니가 나왔다. 주머니에 새총을 넣어서 주머니가 불쑥 나왔다. 모험을  떠나려면 왠지 총이나 칼, 새총 같은 방어장치나 공격장치가 필요하다. 레오가 오지 않아서 둘이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신났다.

아침 10시에 다리에서 만나 학교를 땡땡이치는 소년과 마호니

목적지는 더블린의 전기 발전소가 있는 피전 하우스(Pigeon House)까지 가보는 것이다. 더블린 시내의 북쪽을 돌아다녔다. 더블린에는 4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학교 수업하는 시간에 거리는 시끌벅적하다. 마부가 '길을 비키라!'고 외친다. 부두에 도착하니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서 소년들도 건포도빵과 초콜릿과 음료를 사서 먹는다. 자기들을 '개신교도'(Swandlers! Swanddlers! 개신교를 놀리는 속어)로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은색의 크리켓 배지를 보고 잘못 알고 그렇게 놀리는 거였다. 아일랜드의 기독교 내의 비율은 개신교도 17%, 천주교 83%로 개신교도에 대한 적대감, 피해의식이 있는가 보다. 개신교도가 영국 전체에서 상류층을 차지한다고 한다. 부둣가는 신기한 곳이다. 모험을 꿈꿀 수 있는 곳이다. 어선단과 범선, 크고 작은 배들이 있다. 바다로 떠나는 상상을 한다. 외국 배들도 있다. 색깔이 다른 외국인들의 눈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른 나라 배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 노르웨이 배인 듯한데, 배에 쓰인 글씨를 해독하려다가 실패했다. 외국어는 미지의 세계의 모험을 상징한다. 외국어를 보면 해독하고 싶어 진다.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싶어 진다. 배를 타고 리피 강(the Liffey)을 건넌다. 유대인 한 명과 노동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목적지인 피전 하우스 전기 발전소로 가는 길이다. 배에서 내렸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소년과 마호니


늙은이와의 불편한 만남


모험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지루해질 틈에 소년은 친구 마호니에게 집에 가기 전에 기차도 타보자고 새로운 제안을 한다. 둘은 배에서 내려 큰 벌판에 강둑에 나란히 앉았다. 그때 멀리서 늙고 추레한 나이 든 사람이 걸어왔다. 수염이 회색빛이 나서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자를 쓰고 있었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에는 작대기를 들고서 바닥을 치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는 우리를 지나쳐서 50보 이상 가더니만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우리와 나란히 앉는다. 


그 노인이 앉더니만 단조롭고 저항할 수 없는 어조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자기 어렸을 때보다 날씨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이번 여름은 매우 더울 것이라고 했다. 자기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독서 이야기를 했다. 토마스 모어, 월터 스코트 경, 리튼 경의 책을 읽어봤냐고 묻는다. 마호니는 아니라고 했지만, 소년은 읽어봤다고 했다. 노인네는 주인공과 공감대를 이루려고 '너도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한다. 그런데 리튼 경의 책은 소년들이 읽을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고 말한다. 마호니가 무슨 내용이 읽을 수 없냐고 묻자, 씩 웃기만 하고 알려주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는다. 마호니는 3명 있다고 했고, 소년은 없다고 했다. '한 명은 있어야지'라고 노인은 소년에 말한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걸어가더니만 이상한 짓을 한다. "He's a queer old josser(이상한 늙은 꼰대)." 늙은이가 성적으로 이상한 짓을 했다.  


두 소년은 모험에서 이상하고 불쾌한 만남을 가졌다. 어른들의 성적 세계이다. 순수함이 깨어지는 혼란이 있다. <두 자매>에서도 신부와 소년의 만남이 나중에는 애매한 관계가 되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떤 만남>에서 이 노인은 책도 많이 읽은 듯한데, 이상한 정신병자 같다. 이상한 짓을 하고 다시 소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데, 섬찟하기만 하다. 마호니는 눈에 보이는 고양이를 잡는다며 자리를 떠났고, 그 노인은 단조롭고 저항할 수도 중단시킬 수도 없는 이야기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 단조롭고 반복되는 말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린 소년이 힘으로도, 지력으로도 저항할 수 없으리라. 마치 틀에 박힌 제도권 교육과 문화에 저항할 수 없는 개인을 상징하는 듯하다. 별 효과가 없는 기존의 사회적 틀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그 모습이다.

한 늙은이와의 이상하고 위험하고, 저항할 수 없는 만남의 추억.


제이스 조이스는 이 '어떤 만남'을 단지 소년 때의 그 만남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아일랜드 더블린 사회의 무기력하고, 부패하고, 마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자기가 만난 사람들이 이와 같다는 것을 상징한다. 책도 읽고 아는 것도 있는 듯한데, 부패하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이상하다.



늙은 노인, 매질에 대하여


소년과 노인 단둘이 남았다. 노인은 떠나간 마호니에 대하여 매질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매질을 하느냐고 노인이 묻자, '우리 학교는 그런 것 없다'고 말한다. 노인네는 손바닥을 때리거나 귀싸대기를 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시원하게 뜨뜻하게 매뜸질(nice, warm whipping)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얘들은 매질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때려주겠다고 열을 올린다. 말을 하는 중간에 그 노인네의 눈과 마주쳤다. 끔찍했다. 말하는 그의 입의 이빨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이빨 사이에 틈새가 보였다. 소년은 저항할 수 없이 놀란 채 얼음처럼 앉아 있었다. 그저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마~비~. 소년은 마비(paralysis)를 경험했다. 누렇고 노란 색깔(the colors yellow and brown)은 부패와 마비를 상징하는 조이스의 문학적 장치이다.


집에서 땡땡이친 것을 모르게 하려면 4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 소년은 신발끈을 2~3분 고쳐 매면서 눈치를 본다. '이제는 일어나야겠다'고 노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일어서는데 그 늙은이가 자기 발목을 잡지 않을까 겁이 났다. 소년은 마호니의 별칭인 '머피~'를 부르며 달려간다. 두 번째 부를 때 마호니가 구원해줄 듯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의 독백이 멎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신발끈을 묶는 척하며 일어서서는 노인네의 눈치를 보며 작별인사를 한다. 용감한 척 마호니의 별칭인 '머피~'를 부르자, 그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들판을 가로질러 "나"를 향해 뛰어올 때 "내" 가삼은 얼마나 뛰었던지! 그는 마치 나를 구조라도 하려는 듯이 뛰어왔다. 그래서 나는 뉘우쳤다. 왜냐하면 마음속으로 나는 그를 항상 좀 깔봐왔기 때문이다. <어떤 만남>의 마지막 구절


기대감으로 시작한 모험은 이상하고 위험한 만남의 추억으로 끝났다.


소년은 결국 목적지인 전기 발전소까지 가지는 못했다. 학교를 땡땡이치며 모험을 했는데, 기대한 것과는 달리 위험한 만남을 했다. 이상한 늙은이와의 만남이었다. 소년이 만난 이 이상한 늙은이는 종교적으로 마비되었고, 성적으로 이상하고, 제도적으로 답답한 아일랜드 더블린과 더블린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더블린을 묘사한 것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사랑이고, 다시 한번 비상을 꿈꾸는 소망을 주려는 것이 제임스 조이스의 의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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