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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8. 2021

'하숙집'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단편 7

먼저 등장인물, 축약본 본문을 최대한 제공한 후에, <하숙생>에 대한 요약과 분석을 제공하고 우리말 낭독도 첨부한다. 이 블로그의 단편소설은 축약본이지만, 동영상은 민음사에서 출판한 이종일 선생님이 번역한 원문을 다 낭독하고 있다.


무어니 부인 Mrs. Mooney 하숙집을 운영하는 여주인이다. 하숙생 도오란 씨가 자기 딸 폴리를 임신하도록 놔두었다가 딸과 결혼할 수 밖에 없도록 계획한다. 딸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무어니 부인은 의지가 강하고 사람을 조정하는(manipulative) 성격을 가졌다. 


폴리 무어니 Polly Moony 19세의 예쁜 소녀이며, 타이피스트로 잠시 일하다가 엄마 무어니 부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에서 가사일을 돕는다. 30대 중반의 하숙생 도오란과 성관계를 했고, 엄마가 나머지 일을 해결해주도록 기다린다. 


재크 무어니 Jack Mooney 폴리의 오빠인데 성격이 거칠고 술 마시고 싸움질을 하곤 했다. 도오란 씨는 재크를 좀 두려워한다. 


도오란 씨 Mr. Doran 잘나가는 와인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폴리와 자신의 스캔들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잃을까봐 두려웠고, 폴리의 엄마 무어니 부인은 이를 이용하여 '딸 폴리를 책임져라(결혼하라)'고 도오란 씨를 은근히 압박한다. 



   무우니 부인은 푸줏간을 하던 남편이 술주정뱅이에다가 칼로 자신을 위협해서 자식양육권을 받고 이혼을 해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무우니 부인은 당당한 몸집의 거구였다. 원래 푸줏간을 운영하다가, 처분하고 남은 돈을 하아드윗크 가(街)에다가 하숙집을 차리는 데 썼다. 이 집에 오는 손님들은 대개 리버풀이나 맨 섬에서 온 관광객이나, 어쩌다가 음악당에서 온 배우 등 뜨내기손님들이었다. 고정된 하숙인은 시내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었다. 그녀가 집을 다스리는 솜씨는 교묘하고 꿋꿋했으며, 외상을 줄 때와 딱딱하게 굴어야 할 때, 그리고 모르는 체 눈감아 줘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모든 젊은 하숙인들은 그녀를 ‘마담’이라고 불렀다.


    마담의 아들인 재크 무우니는 플리트 가(街)의 어떤 대리판매상 점원으로 근무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건달’이라고 불렀다. 군인들이나 주고받을 법한 음담패설을 들려주기 좋아했고, 대개는 오밤중 한두 시에 집에 돌아왔다. 항상 친구를 만날 때에는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는 위인이었다. 가령 어떤 말이 승산이 있다느니, 어떤 가수가 뜰 거라느니. 그는 또한 권투를 잘했고, 웃기는 노래도 잘 불렀다.


    일요일 밤 무우니 부인의 큰 거실에서는 친목회가 열린다. 하숙인들 가령, 음악당의 배우들도 선뜻 친목회에 참석해주었고, 세리던 씨는 왈츠와 폴카를 즉석에서 연주하여주었다. 마담의 딸인 폴리 무우니는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는 대충 이러했다.


  <나는야 노는 계집애, 뭘 그렇게 빼나요? 뻔할 뻔자인데.>


     폴리의 나이는 열 아홉 살. 날씬한 몸매의 처녀였다. 부드럽고 밝은 머릿결, 작고 통통한 입술의 소유자였다. 연두빛 더하기 회색빛의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남과 이야기할 때 위쪽으로 흘깃 쳐다보는 버릇이 있어서, 그녀는 마치 귀여운 심술꾸러기 마돈나처럼 보였다.


    무우니 부인은 딸 폴리를 처음에 어떤 곡물도매상에 경리로 일을 내보냈다. 그런데, 그놈의 남편이 하루 걸러 가게를 찾아와 <내 딸에게 한 마디만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어머니는 또 다시 딸을 불러들여 집안일을 거들게 했다.


    폴리는 아주 성미가 활발한 처녀이기도 하였지만, 어머니에게도 또한 자기 딸을 자기 하숙인들과 어울리게 해보자는 의중이 있었다. 폴리는 젊은이들과 자주 히히덕거렸다. 그러나 무우니 부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젊은이들은 딸과 그저 심심풀이로 놀고 있었고, 소위 흑심을 품은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딸과 그저 심심풀이로 놀고있었고, 소위 흑심을 품은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서 딸을 다시 타이프 일을 내보낼까 생각하기 시작하던 차에, 드디어 어떤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딸이 어떤 젊은이 하나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무우니 부인은 그들 두 사람을 감시하면서도 혼자만 알고 있었다.


    어느날 폴리의 태도가 다소 이상해지고, 젊은이에게서 동요(動搖)의 태도가 엿보였다. 무우니 부인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판단을 내리고, 간섭을 결정했다. 그녀는 마치 푸줏간의 큰 칼이 고기를 턱턱~ 썰어내듯이 이들의 윤리(倫理)적 문제에 개입하였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모종(某種)의 작심(作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하숙집에서는 아침 식사가 끝나고, 식탁 위에는 베이컨 비게며 베이컨 껍질, 달걀 노른자위 자국이 남아 있는 접시가 흩어져 있었다. 무우니 부인은 안락의자에 앉아, 하녀 메어리가 상을 치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딸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다시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사태는 그녀가 예측한 그대로였다. 그녀는 까놓고 물었고, 폴리도 터놓고 대답했다. 물론 쌍방이 어색하긴 했었다. 어머니가 일부러 어색해했던 건, 그간의 소식을 너무 대범하게 받아들일 경우, 자신이 내막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해서였고, 딸 폴리가 어색해했던 이유는 자신의 영리함으로 인하여 어머니의 관용(寬容) 뒤에 숨어 있었던 의도를 이미 자기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우니 부인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사회 여론은 우리 편에 서 있다. 나는 짓밟힌 어머니이다. 내가 그 사람을 한 지붕 아래 살게 했던 건, 그 사람의 점잖음을 믿어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남의 호의를 이렇게 짓밟아 버리다니! 나이도 벌써 서른 넷인가? 젊어서 그랬다는 말도 안 통한다. 또 세상 물정도 어느 정도 알 만한 사람이니, 철이 없어서 그랬다는 변명도 못하리라. 우리 폴리의 어리고 순진하고 철이 없음을 노린 것이다. 이제 뻔한 노릇이다. 문제는 오로지 하나!  <그가 어떤 보상을 해야 하느냐>, 어떻게 수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마땅히 이런 경우에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남자 쪽이야 아무런 상관은 없다. 재미를 본 후이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딱 시치미를 떼고 싶을 것이다. 어떤 어머니는 돈푼이나 받고 사건을 어물어물 무마하려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경우를 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이미 금 가버린 우리 딸의 정조를 보상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결혼!


    그녀는 메어리를 도오런 씨의 방으로 보내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전하기 전에 다시 한번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이길 수 있다! 도오런 씨가 아닌 다른 젊은이였다면  일이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소문을 두려워한다. 집안의 모든 하숙인들도 이번 일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꾸며내어 아예 소설 하나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천주교 신자의 큰 주류 도매상에서 13년간이나 일해 왔으므로, 이 일이 세상에 탄로가 나는 날에는 십중팔구 직장을 잃는다. 그러나 그가 ‘결혼’만 동의해 준다면 만사는 문제 없다. 우선 무우니 부인은 도오런 씨의 수입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상당한 저축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요일 오전 11시 20분. 그녀는 벽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커다랗고 혈기 좋은 얼굴에 서려있는 ‘단호함’은 자신이 보기에도 흡족(洽足)하였다. 그리고 자기 주변의, 딸들을 시집보내지 못해 애태우는 몇몇 어머니들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도오런씨는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일요일 아침, 마음이 불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수염을 깎으려고 두 번이나 면도질을 시도해 보았지만, 손이 하도 떨려서 단념하여야 했다. 사흘 동안이나 깎지 못한 수염은 턱 가장자리에 까슬까슬하게 자라 있었고, 그리고 2, 3초마다 안경에 김이 서려, 그것을 벗어 들고 손수건으로 닦아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돌이켜 볼 때, 그에게 어젯밤의 고해(告解)는 도리어 극심한 고통의 씨앗이 되었다. 신부는 이번 사건의 대수롭지 않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밝혀 내어, 결국에 가서는 그를 엄청난 범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나마 구원의 길이 주어진 데 대하여 신부에게 감사를 느낄 정도였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여자와 결혼하거나 도망치는 것 외에 무슨 길이 있겠는가? 그냥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다니자니 못할 짓이다. 머지않아 이 사건은 크게 소문이 날 것이며, 이 작은 도시 더블린의 모든 사람들이 죄다 알게 될 것이다. 레나아드 노인이 <도오런 군 좀 이리 오라고 해!>라고 호령하는 소리가 잔뜩 흥분된 머릿속으로 들릴 듯하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후끈하게 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이제까지 쌓아 올린 꿈이 허사로 돌아가는구나! 그렇게 근검 노력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구나! 젊었을 때 방탕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선술집에서 친구들을 상대로 어른들의  관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다 지난 일. 아직도 매주 <레이놀드>를 사보지만 성당의 예배에도 잘 나가고, 일 년의 10분의 9는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내 집안 식구들이 이 여자를 깔볼 것이다. 평판(評判)이 좋지 못한 그녀의 아버지도 문제고,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대해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이거 된통 걸렸구나>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친구들이 이 일을 수군거리고 비웃고 있을 모습이 떠오른다. 여자는 말씨도 천하다. <*라>, <*발>을 예사로 말한다. 하지만 내가 그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어휘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녀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해서 그녀를 좋아해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물론 나도 같은 짓을 했지. 본능은 <결혼하지 말고 이대로 시치미를 딱 떼고 있으라>고 우겨댄다. <결혼하는 날에는 모든 일이 끝이야> 하고 말한다.


    셔츠와 바지를 입고 침대가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폴리가 가만히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전부 말씀드렸다고, 그리고 오늘 자기 어머니가 당신과 만나 할 얘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며 그의 목을 감쌌다. “ 아~ 보브, 보브! 난 어떻게 하면 좋죠?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차라리 자살하고 싶어요!>라고도 한다. 도오런은 <울지 말아요>라고 폴리를 타이르며, <문제없으니 걱정할 것 없어요>라고 약한 목소리로 여자를 달랬다. 셔츠 너머로 여자의 가슴이 동요(動搖)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반드시 그의 탈만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찬 독신자의 끈질긴 기억력에 의하면, 우연히 맨 처음 그녀와 근접해 있을 때, 그녀의 옷과 숨결과 손가락이 그에게 준 감촉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밤늦게 그가 잠자리에 들려고 옷을 벗고 있는데, 그녀가 그의 문을 머뭇머뭇 두드렸다. <바람이 세어서 자기 촛불이 꺼졌는데, 그의 촛불로부터 불 좀 얻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은 그녀가 목욕한 날 밤이었다. 그녀가 걸친 프린트 무늬의 화장용 옷은 프란넬 천의 가슴께가 헐겁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모피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새하얀 발등이 빛나고, 향수를 뿌린 피부 아래에서는 따뜻한 핏줄이 타오르고 있었다. 초에 불을 붙이려는데, 촛대를 꼿꼿이 받쳐들고 있는 그녀의 손과 손목에서는 야릇한 향수 냄새를 풍겼다.    


    그가 밤늦게 돌아오는 날, 그의 저녁 식사를 따뜻하게 덥혀주는 사람은 무우니 부인이 아니었다. 모두들 잠든 집안에서, 그녀를 자기 혼자만의 곁에서 느끼면서 식사를 할 때, 그는 자기가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다정한 마음씨란! 밤이 어쩌다 쌀쌀하다거나, 축축하다거나, 바람이 셀 때에는 반드시 조그만 잔에 펀치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둘이 같이 살게 되면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황홀한 상태도 이제는 지나갔다. 그녀가 한 말을 자기 자신에게 견주어 보면서 그것을 되뇌어 보았다. <난 어떡하면 좋지?> 독신자의 본능은 <어서 늦기 전에 꽁무니를 빼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저지른 죄를 피할 길은 없다. 그의 염치심마저도 <이런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타이르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침대가에 앉아 있는데, 하녀 메어리가 문간에 나타나, <마님께서 응접실에서 뵙자고 합니다> 하고 전했다. 그는 일어서서 아까보다 더 힘없이 저고리와 조끼를 입었다. 옷을 입고 나자 그녀를 달래기 위하여 그녀 앞으로 바싹 갔다. 문제없어, 겁내지 마! 그녀가 침대 위에서 그냥 울며 나직이 <아! 괴로워!>하고 신음하는 것을 내버려 둔 채 그는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올 때 안경에 어찌나 김이 서리는지, 그는 안경을 벗어 닦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붕을 뚫고 하늘로 솟아 올라, 다시는 이렇게 귀찮지 않을 먼 나라로 날아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떤 힘이 한 걸음 한 걸음 계단 아래로 내리밀었다. 자기 가게의 사장과 이 집 마담의 무자비한 얼굴이 어리둥절한 그의 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단 마지막 참에서 도오런 씨는, 배스 맥주 두 병을 안고 부엌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재크 무우니(이집 아들)를 지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차디찬 인사를 나누었다. 이 사랑에 빠진 사나이의 시선은 상대의 투박한 불독과 같은 얼굴과, 두툼하고 짧은 두 팔에 멈췄다. 계단 아래를 지날 때 언뜻 위를 쳐다보았다가, 그는 모퉁이 방에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재크 무우니의 눈과 마주쳤다.


   이때 별안간 어느 날 밤의 일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날 밤 키가 작달막하고, 음악당 배우인 금발의 런던 남자가 폴리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빈정댄 일이 있었다. 그날 밤의 친목회는 재크의 폭력으로 난장(亂場)이 되고 말았다. 모두들 재크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 배우는 여느 때보다도 더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계속 미소를 지으며 <무슨 악의(惡意)가 있어서 그런 소릴 한 건 아니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재크는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만일 어떤 놈이라도 그런 종류의 장난을 자기 여동생에게 하는 날에는 그 놈의 <목을 물어 뜯어> 놓을 테니 그리 알라고 호통을 쳤다.


    폴리는 잠시 동안 울면서 침대가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닦고서 거울 앞으로 갔다. 수건 끝을 물병에 담가 찬물로 눈자위를 닦았다. 얼굴을 옆으로 비춰보고, 귀 위 머리에 핀을 다시 꽂았다. 그리고 나서 침대로 돌아와 아랫목에 앉았다. 한참 동안 베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남모를 정다운 회상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목덜미를 싸늘한 쇠침대 살대에 얹고 공상에 잠겼다. 얼굴에는 이미 불안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끈기 있게 거의 유쾌한 마음으로 시름을 잊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날의 추억은 차츰 사라지고, 대신 미래의 환상과  희망이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그 희망과 환상이 어찌나 착잡했던지, 물끄러미 보고 있는 흰 베개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을 정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부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폴리! 폴리!”


     “네. 엄마”


    “애~, 내려오너라. 도오런 씨가 너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구나”


    그때서야 폴리는 자기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신을 차렸다.



요약과 분석


무어니 부인은 술주정뱅이 남편이 정육점 칼로 죽이려고 위협했을 때, 폭력적인 남편과 헤어져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하숙집은 음악 연주자, 여행객, 젊은 더블린 사무원들이 묶고 있었다. 그녀의 딸 폴리는 타이피스트로 잠시 일하다가 지금은 엄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서 가사일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엄마는 은근히 하숙집의 젊은이 가운데 하나가 걸려들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다가 폴리는 34~5세쯤 되는 직장인 도오란 씨와 가까워진 것을 알았지만, 무어니 부인은 '결정적인 때가 되기까지' 그대로 놔두었다.


무어니 부인은 딸과 도오란 씨의 염문이 다른 하숙생들도 알게 될 때까지 그대로 놔두었다가, 결정적인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도오란 씨에게 자기 딸을 책임져라(결혼하라)고 주장한다. 도오란 씨는 죄책감을 느꼈다. 지난밤에 사제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도 한 모양이다. 그리고 스캔들이 나서 좋은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또한 폴리가 찾아와 '이제 난 어떻하냐?'며 자살하겠다고 암시한 것도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폴리의 난폭한 오빠 재크가 화를 내는 것이 두려웠다. 


도오란은 폴리를 진정 사랑하지는 않고 있고, 게다가 자기 집안-비교적 좋은 집안임-도 이런 폴리 집안과의 결혼을 무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도오란은 마지못해 폴리와 결혼하기로 동의한다.


<이블린>은 프랭크가 구혼을 하고 같이 떠나자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했다. 반면, <하숙집>에서는 도오란이 폴리와 결혼하지 않으면 평판도 나빠지고 직장도 잃을까 두려워하여서 결혼을 한다. 이블린과 도오란 모두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둘 다 종교나,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에 묶여서 불행한 미래를 선택한다


폴리가 파이피스트로 일하다가 엄마가 운영하는 하숙집으로 돌아온 것도 하나의 좌절이다. 지배욕이 강한 엄마로부터 독립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30대 중반의 도오란 씨도 지금 괜찮은 직장에 다니기는 하지만 무우니 부인의 사위가 되어서 더 이상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도오란 씨는 직장을 잃을 두려움, 재크에게 공격받을까 하는 두려움에 마비가 되 버렸다. 폴리도, 어머니 무우니 부인도, 도오란 씨도 모두 마비(paralyzed)된 인물을 상징한다. 


남편과 이혼하여 하숙집을 운영하는 주인 무우니 부인은 젊은 딸 폴리를 이용하여 젊은 하숙생들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보니, 영적으로 죽어있고 부패하게 된 것을 보여준다. <하숙집>에 언급되는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도 아일랜드 사회를 마비시킨 원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도오란 씨가 폴리와 결혼하는데 동의하기 전에 전날 토요일 밤에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는데, 사제는 '배상할 구멍이 있음에 감사하라'고 말하며, 도오란 씨의 죄를 확대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도오란 씨가 마비되어 불행한 미래를 선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작가는 암시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조국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가톨릭에 대하여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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