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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여왕, 높고뫼

노꼬메오름, 자매식당, 도두봉

by 고주

< 5. 6. 토 >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바람. 비가 잠잠하다.

그러면 그렇지, 저도 몇 날 잠을 못 잤으니 힘들겠지.

서두르자, 저놈들이 언제 눈을 부릅뜰지 모르니.

산록도로로 오르는 길은 걱정했는데 말짱하다.

비 온 뒤는 대나무 순이라 했는데, 여기는 고사리다.

밝은 옷 착용, 핸드폰 소지, 일행을 동반하지 않으면 실종 사고가 많은 지역이라는 경찰서장님의 주의 말씀이 현수막에 적혀있다.

말이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아니 독이 있어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누구든지 고사리는 채취하시되 살아서 돌아오시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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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꼬메 오름(높은 산)

목장을 가로질러 놓인 길, 말똥이 널려있다.

조심스럽게 땅만 보고 가야 한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구름이 늦잠을 잤는지 올라가지 못하고 정상이 흐릿하다.

경사진 오르막을 다리가 퍽퍽하게 용을 쓰며 걷는다.

난이도 상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850m가 동네 마실 갈 수준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한라산 등반만큼이구나 싶을 때, 능선이 나온다.

백록담을 가장 깨끗하게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라 했는데, 늦잠 잔 구름이 훼방을 놓는다.

족은 노꼬메, 궷물 오름이 근방에 있지만 큰형님을 보았으니 족하다.

날씨가 화창한 날 다시 오리라.

빠르게 달렸지만 1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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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널려있는 한식뷔페를 가겠단다.

함덕 근방의 식당이 검색되어 달리고 있는데, 토요일은 정기휴일이란다.

다시 제주시의 자매식당을 찾아 방향을 튼다.

제일 손님이 많을 토요일에 쉬겠다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런 곳이 한둘이 아니다.

깊게 파고 들어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눈에 익은 ‘행복밀’ 근방의 골목.

출장뷔페 집들이 돌잔치 각종 행사까지 책임진다는 제주도식 밥상, 자매정식(제주시 서사로 19길 21)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만 문을 연다.

주로 동네 분들이 이용하는 곳인지, 가벼운 복장으로 와서 식사만 하고 바로 나가신다.

상추 톳나물 묵 수정과 고기볶음까지 다양한 반찬의 향연이고,

김치찌개와 잘 삶아 꼬독꼬독한 돼지고기가 특히 맛있다.

비싼 돔베고기보다, 원하면 언제든지 더 주는 푸짐한 인심까지 마음에 쏙 든다.

1인에 8,000원이니 비싼 제주 물가에 반기를 든 용기에 박수까지 보낸다.


이가자헤어비스(제주시 연삼로 305)

베트남에 분점까지 두고 있다는 글로벌 미용실.

몇 군데 검색하고, 리뷰를 보고, 전화로 예약한다.

남은 시간 3시간은 주택가 한가한 천변 옆 카페에서 보낸다.

좀이 쑤셔 앉아있지 못하던 내가, 나이 들면서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겼나 몇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10년 넘게 한 미용실을 이용한 아내.

시크한 짧은 머리가 특색있어 아무에게 맡기기 어렵기도 하지만, 본인이 편안한 것을 바꾸고 싶지 않은 성향이기도 하다.

30분이 조금 넘었나, 매우 흡족한 모습으로 나오는 아내.

빠른 손놀림으로 완벽하게 재연해놓은 머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한 시간을 뭉개던 광주의 고 녀석은 한 방에 정리되었다.

낯선 곳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를 나도, 아내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냈다.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 멋지게 사진이 찍히는 장소가 있다며 공항 근처로 간다.

사진 속 장소를 찾아 같은 포즈를 취하고 기다리는데, 비행기가 파리보다 작게 나온다.

안개가 많이 끼어 고도를 빨리 높여서 그런가 보다.

날 맑을 때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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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해안도로 중간쯤, 넓은 주차장에 있는 연돈볼카츠(제주시 도두동 836-8)

서귀포의 그 유명한 연돈은 너무 기다리는 줄이 길어 엄두도 못 냈는데, 이곳도 평이 좋다.

조금 기다리기는 하지만 연하고 육즙이 살아있어 꼭 다시 올 곳으로 찜한다.

서귀포 연돈은 얼마나 맛있을까, 시도를 해봐야 할 듯.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도두봉.

제일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오름이다.

바닷가를 끼고 돌다 계단 몇을 오르면 많이 떠돌아다니는 나무 동굴 속에서 밖으로 찍는 사진 맛뷰.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한다.

공항 활주로가 바로 아래여서, 이착륙 비행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이나 노인들과 함께 와도 부담스럽지 않은 편하고 눈이 즐거운 코스다.


같은 날 함께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한 후배는 서귀포에서 원 없이 비를 보아서 좋았단다.

힘들게 혈액암과 싸우고 있는 나날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성의 성당 분들과 함께 어제 제주에 들어왔다는 도연 샘.

두 시간 빨리 아침 7시에 배가 출발했다나.

다 삼킬 것 같은 바람, 비를 본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지만,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나 보다.

잠깐이라도 만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씩은 나누고 싶은데, 제주대 근방의 숙소로 들어간다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일곡동만 되었어도 옹기종기로 바로 달려가는데, 아쉽다 짠한 우리 동생.


하루 늦게 제주에 왔다는 지권이는 내일 저녁 초대를 한다.

오후 5시 이후에는 음식 섭취를 하지 않는 아내 때문에 나만 가겠다고 했더니, 다음 주에 준홍이가 들어온다며 그때 함께 하잔다.

일정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부지런한 선생님 챙기느라 머리 다 빠지겠다, 내 사랑하는 제자들이여.


내일은 또 비가 온다는데.

빗속의 일정을 잘 짜봐야겠다.

멈출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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