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시장, 국제미용실, 별다방
< 5. 5. 금 >
몇 시간째 듣고 또 보고 있습니다.
좀체 누그러들 기세가 아닙니다.
이제는 좀 질립니다.
생각보다 더 멀리 가버리네요.
끝까지 가보자는 것인데,
그래 내가 미안합니다.
이쯤 해서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진득이처럼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항복해도 소용없다고.
마당 가 팽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는 것이
텃밭 유채가 뽑히지 않는 것이
언덕 위 야자수가 꺾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목줄 없는 개가
어제저녁부터 짖지를 않습니다.
어디에 꼭꼭 숨어 이 비가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겠죠.
살아있기나 한지.
나도 오기가 생깁니다.
막걸리 두 병에 무뎌진 밤이었지만
해가 뜨기 전 맥주잔을 다시 듭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바람도 비와 함께
날 보고 있겠죠.
지독한 놈 있다고.
그래도 내가 고주인데, 갈 데까지 가보게요.
우진해장국은 뒤로 미루잔다.
몸국이나 해장국은 여러 번 먹었으니 오늘은 얼큰한 것이 땅긴단다.
동문시장을 찍는다.
주차장에 빈자리가 많다.
시장 골목이 한산하다.
최고의 연휴인데, 김이 팍 빠지는 상인들의 한숨 소리.
몇 번째인지도 가물가물한 동문시장 내 우리수산. ( T 064 758 4282 )
달착지근한 딱새우회를 사 들고 이층 식당으로 간다.
기본상차림비가 1인 3,000원인데, 갈치조림을 시킨다면서 상차림을 빼달라면 된다.
전라도 맛, 매콤하고 달달한 눈물 나는 그 맛이다.
아내는 지금쯤 찾을 때가 되었다며 내 머리 위에 앉아있다.
그냥 내가 없다고 생각해 주면 좋은데, 불쑥 또 놀라게 한다.
선물 가게에 아내를 놓고 시간을 번다.
국제미용실.
시장 좁은 골목에 꺼질 듯 미용실 불이 돌고 있다.
머릿속 피부가 들떠 각질이 옷에 떨어져 보기에 흉했던 터라, 퇴임하면 꼭 밀어 버리겠다 다짐했었다.
이제 조심해야 할 것도 없지만, 남 눈 의식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다.
자유,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
명예 퇴임, 서울 이사, 제주 한달살이 이제는 삭발까지.
어쩌면 호기를 부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다섯 분의 할머니들이 머리에 캡을 뒤집어쓰고 있다.
빠글빠글 파마하시는 중인가 보다.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 들어오라고 주인보다 더 반긴다.
깨끗이 미는데 앞머리는 조금 남겨놓은 것이 좋겠다는 내 말에,
2mm로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보기에 좋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개만 끄떡끄떡.
서랍에서 기계에 또 기계를 붙이더니 앞이마의 중앙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될 대로 돼라.
근사한 청년이 앉아있다.
처음에는 토끼 눈으로 놀라 하더니, 박수를 치며 5살은 젊어 보인다고 한다.
내 나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난다는 아내.
나는 한다면 하는 사나이야.
모자 집 사장 할머니는 너무 잘 어울린다며 모자를 씌우더니, 26,000원을 달란다.
잠깐만 한눈팔면 코 베가는 세상.
뒤도 보지 않고 나왔다.
나는 나다.
내가 원하는 일은 눈치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나이.
벌떡벌떡 뛰는 심장 소리를 듣는다.
훨훨 나는 갈매기의 꿈.
바다가 보이는 곳, 별다방.
창가 자리는 비어있는 곳이 없다.
꼭 별이어야 하느냐고 항의하지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포인트를 써야 한다나.
사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제주 바람보다 질긴 국제적인 돈 많은 회사들이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주에서 찾아보기 힘든 마트.
좋은 마트.( 제주시 용문로12길 12 (용담이동))
막걸리도 싸다.
자리돔 회 한 접시가 9,800원.
막걸리 두 병이 다 비워지는데도, 바람은 비는 여전하다.
지독하다.
내일은 좀 지치겠지.
날 너무 화나게 하지는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