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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머무는 카페

오일시장 갈매기식당, Lazy Pump

by 고주

< 5. 7. 일 >

제주도의 비는 옆에서 온다

새도 옆으로 난다

모두 바람을 탄다

바람의 지배를 받는다

한달살이가 절반을 넘어서면서

지난날을 세는 게 아니라

남은 날을 세게 된다

슬퍼진다

꼭 보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어느 정도 마쳤다

이제 복습해야 할 일들을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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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새벽일을 마치고, 다시 누워 늦은 잠에 빠져들었다.

여러 날 비로 눅눅한 실내를 데우느라 불을 넣었는지, 더워 뒤척이는 밤은 길게도 늘어졌었다.

바람은 비는 여전하지만, 주눅들 우리가 아니다.


다시 제주도 전통 오일시장.

들어서자마자 떡 버틴 꽃집, 카네이션이 보인다.

요번 어버이날은 전화로만 뵐 수 있는 처지.

죄송하지만 부모님이 용서해주셔야 한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식은 아이다.

새장 앞에선 아이들, 사줄 수 없다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떨군다.

종이컵에 접힌 호떡을 물고 다니는 아주머니들.

천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밀려다닌다.

시장은 바로 이런 맛이다.

소문난 춘향이네를 가르쳐 주는 옷집 사장님.

자신도 아직 못 가봤다며 친절하게도 알려주신다.

시장에 너무나 잘 어울리시는 아저씨, 부자 되세요.

춘향이네 옆 갈매기 식당.

소문대로 기다리는 줄이 삼만리다.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기다리는 것은 딱 질색이다.

자리가 몇 개 남아 있는 갈매기로 가자.

머리 국밥과 해물파전 막걸리를 시켜놓고 둘러본다.

“술이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못된 놈이라는 것을 술이 밝혀준 것이다.”라는 액자의 글귀가 맘에 쏙 든다.

술은 다 핑계여.

파전의 오징어는 쫄깃하고, 국밥도 맛이 깊어 너무 맘에 든다.

볼이 터지려는 배불뚝이 아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음식을 나르는 것이, 뜨거운 국물을 손님 바지에 떨어뜨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흠잡을 데가 없다.

줄을 서서라도 꼭 소문난 집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일단 가격이 싸다.

무엇이든지 맛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자기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정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자리를 기웃거린다.

옆에도 가보셔라, 맛은 다 비슷비슷하답니다.

광주김치집에서 열무김치를 사고 애월로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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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 Pump.

양식장 펌프장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들었다.

앙상한 콘크리트 건물을 흰 페인트로 쓱쓱 대충 칠하고, 전깃줄도 다 보이게 리모델링을 해놓았지만 멋스럽다.

파도가 카페 바로 앞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물개처럼 검은 현무암 바위는 지치지도 않고 물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는다.

어떻게 사람들은 몇 시간씩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가?

쉼이, 머무름이 필요한 시대인가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고 있지만,

육지로 나가는 순간 꼭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하겠다 다짐한다.

내게서 나가는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숙성되고, 새끼를 치면서 불어나고, 더 감당하기 힘들 때 나오는 것이다.

나쁜 생각을 빨리 버리는 것이 몸에 이롭고,

좋은 생각은 오래오래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불순물을 거르면서 알짜가 될 때까지.


남아 있는 날들이 줄어든다.

미련이 없도록 빠진 것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내일부터는 날씨가 좋아진다니 다행이다.

멀리 광주에서는 전복에 맛있게 막걸리를 마시는 친구들의 밤이 뜨겁게 익어가고 있다.

부럽다.

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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