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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를 닮은 섬

가파도, 송악산둘레길

by 고주

< 5. 8. 월 >

6일 만의 파란 하늘이다.

일교차가 커 아침은 쌀쌀하고, 너울성 파도를 조심하라는 기상청의 당부다.

어버이날인데, 올해는 전화로 제주에서 나가는 날 가겠다고 용서를 구한다.

옛날에는 무슨 날 정해놓고 효도했다냐.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는 엄마.

서운함보다 아들 걱정이 항상 먼저다.

근데 카톡방이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이여.

내 새끼들은 다 잊고 있는 거 아니여.


제주 해장국 3대장(은희네, 모이세, 미향)중 하나인 미향 모슬포점으로 간다.

마늘 맛이 강하고, 콩나물 조금, 우거지 많이, 파송송, 고기는 설렁탕처럼 쭉쭉 찢어 넣었다.

국물이 진하고 텁텁하다.

매운 것과 순한 것은 선택.

새우를 쓴 깔끔한 김치다.

은희와는 좀 다른 맛이랄까?

이제 모이세의 맛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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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항(운진항)

조금 일찍 왔더니 예약보다 1시간 일찍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10시에 들어가 12시 30분에 나와야 한다.

2시간 30분 간격은 선택할 수 없는 강제 조항.

가파도에서 숙박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바꿔준다나.

너무 불공정하고 상식에 벗어나니, 헌법소원이라도 내야 하나.


항을 벗어나니 파도에 배가 출렁이기를 10분. 가파도다.

마라도와 모슬포항의 사이에 있고, 가오리(제주말로는 가파리)를 닮았다 해서 가파도란다.

최고단이 해발 20m 정도이니 큰 파도이면 다 덮어버리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

면적은 마라도의 2.5배다.

배에서 내려 자전거를 빌린다.

1대에 5,000원.

할아버지 두 분이 돈을 받고 계시는데, 그냥 가져가도 모를 것같이 엉성하시다.

손목에 노란 고무밴드를 풀어 치마 입은 여자들에게 주느라 바쁘다.


15년도 더 되었을까?

스쿠터를 타고 제주 일주하다 들렀을 때는 공사가 한 창이었다.

식당은 춘자네 국수집 하나였고, 그 앞 해변에서는 할머니가 전복을 타고 있었다.

섬 둘레로 도로를 만들고 있었으며, 가운데는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나뉜 밭이었다.

배가 내린 곳의 반대쪽에 몇 채의 집이 있었을 뿐이다.


벽화가 그려진 마을 길, 그 사이의 집들에는.

커피, 공예품, 청보리 막걸리, 파전, 아이스크림, 짬뽕.....

없는 것이 없다.

유치원 5명을 포함해 11명이 다닌다는 가파초등학교 앞까지 가는 길.

청보리는 좀 넘었고, 황보리에 가까운 보리 물결이다.

빨간 동네 집들의 지붕과도, 파란 바다의 색과도 잘 어울리는 사진 맛 풍경.

걷는 사람과 자전거가 위험하게 동행한다.

앞으로는 걸어서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국회에 탄원해야 하나, 아니 용산에.

앓으니 죽자.


추천하는 일정은,

바다를 왼편으로 두고 쉬엄쉬엄 섬을 한 바퀴 돈다, 한 시간이 좀 덜 걸릴 것.

출발점이 보이는 춘자네 옆 골목길로 쭉 걸어서 아랫마을 포구까지 걷는다.

그 사이 청보리밭에서 사진을 찍거나, 예쁜 선물 가게를 구경하거나, 해물파전에 청보리 막걸리 한 사발도 좋겠다.

2시간 30분이면 적당한 시간이겠다 싶다.


청보리 라테는 미숫가루 맛이다.

10분 만에 마신 청보리 막걸리는 보통 수준보다 윗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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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 10코스, 산방산 둘레 해안을 걷는 길.

산방산과 형제섬 사이, 짙게 깔린 안개 위로 한라산 정상만 빼꼼하게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 그 절벽으로 달려드는 파도, 따가울 정도로 강한 햇빛이 함께 걷는 한 시간 정도의 오르고 내리는 길이다.

현금을 차에 두고 와 말을 타는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을 빼면 완벽한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소문난 7코스보다 이곳을 추천한다.

가슴이 뻥 뚫리는 가릴 것 없는 바다가 너무 좋다.

다양한 모양의 절벽과 바위들을 보는 것, 모슬포와 가파도 마라도가 거리를 좁혀가며 다가오는 것은 걷는 내내 눈을 심심치 않게 해서 좋다.

힘이 좀 남으면 송악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도 좋겠으나, 1시간 정도의 둘레길도 산책으로는 적당한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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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포장마차 해녀의 집에서 먹는 홍해삼.

오독오독 씹히는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고 맛.

입안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화한 소주 맛.

형제섬이 자꾸 한 잔 더하라고 술을 따른다.

산방산도 한라산도 뛰어오고 있다.


해가 중천인 오후 4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따가운 햇볕이 짧은 내 뒤통수를 난타하는 테라스에 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손녀의 웃음소리를 동영상으로 보며.

내일은 차귀도 일정이라며 좀 쉬잔다.

대충 큰 일정들이 마무리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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